영혼의 순수와 평안 그린 잠언시
깊이 스며든 신앙심 시의 자양분
더 넓고 깊은 사랑하고 싶은 염원
봄은 정겹고 따스하다. 그 온기는 계절을 누리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
봄처럼 순수와 안식을 담아낸 시집이 나왔다.
화순 출신 이명덕 시인이 제5시집 '당신에게 봄'(문학의전당刊)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은 물질 욕망이 비등하는 삶을 당연시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복원해야 할 영혼과 정신의 세계를 제시하면서 내세보다는 현세의 삶을 성찰한 시편들이 담겨 있다. 그의 언어는 하루의 생계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현실을 대면하는 자세, 그러면서 영혼의 순수성과 평안을 잠언시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는 인간의 신비를 참혹하게 벗겨내는 과학주의가 주도하는 이 시대에 휴머니즘을 사유한다.
그는 시를 통해 우리가 어느새 잃어버린 인간성을 일깨우고 절대 진리와 파토스(서사적 예술장르에서 사용되는 의사소통 기교) 간 모순이 필연인데도 시문학과 신앙을 일체화했다.
다시 말해 이번 시집은 신앙 시집이기도 하다.
시인은 신과의 만남을 갈망하면서 묵상과 기도의 언어로 화자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이는 물질 욕망을 당연시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복원해야 할 영혼과 정신의 세계를 제시하면서 내세의 삶보다는 현세의 삶을 성찰한다는 의미다.
시들은 화자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기도의 언어다.
시편과 잠언의 상징·비유법은 서양 문학 뿐 아니라 현대시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미학적 운용방식이기도 하다.
"기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느 밤 폭풍우에 바닥을 치고/ 메타세쿼이아 그늘 웅크린 잠 속에/ 아름다운 기도가 있나요// 고난은 축복의 통로라 했나요/ 당신은 고난 끝에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대답을 놓아줍니다// 사랑은 겸손하면서도 오만한 것이어서/ 두 손끝에 고귀함 두고/ 고개 숙이게 하나니/ 고통도 신도 기도도 모두/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 아래 모은 두 손에 있나니// 기도는/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껴안는 일입니다"('기도의 힘' 전문)
시인은 구도의 기도자인 동시에 자신을 찾으러 거울 속 창문을 열고 살아서 죽음을 회상하는 탐색의 순례자이다. 또한 오래된 대장간에서 쇠가 말랑해지는 걸 지켜보며 남루한 이웃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 하는 생활 속의 시인이다.
이해인 수녀(시인)는 "시인에게 깊이 스며든 신앙심은 시의 자양분임에 분명하고, 낮은 곳을 향한 사랑의 원천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며 "양손 저울질을 배우며 열두 색 크레파스를 청해 더 넓고 깊은 사랑을 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이 앞으로의 시작에서도 열매 맺길 기원하면서 이 아름다운 시집의 출간을 함께 기뻐하는 세상 모든 '당신에게 봄'이 되기를 바란다"고 평했다.
김효숙 문학평론가는 "이명덕의 시는 인간 삶의 문제를 신앙의 구경에서 사유하고 실천하는 방식을 다룬다"며 "하루를 묵상과 기도로 시작하는 데에는 새로운 날들을 허락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명덕 시인은 화순에서 태어나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도다리는 오후에 죽는다' '그 여자 구름과 자고 있네' '스펑나무 신전' '사당동 블루스' 등이 있다. 현재 한국시서울 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제주의 사람과 풍경 글과 그림에 담았어요" 384 시인에게 시는 밥줄이자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과 1권의 첫 시화집을 출간, 왕성한 창작활동과 필력으로 자신만의 시탑(詩塔)을 쌓아가고 있다.박노식 시인이 자신의 대학동문인 이민 화가와 두번째 시화집 '제주에봄'(스타북스刊)을 펴냈다.이번 시화집에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문화유적, 박물관, 카페 등을 여행하며 두 사람이 쓰고 그린 100편의 글과 100편의 그림이 실려 있다.각각의 글과 그림은 제주의 숨겨진 풍경과 매력을 새롭고 다채롭게 펼쳐냈다.지금은 국내 최고의 휴양지이지만 제주는 눈부신 풍광 속에 4·3이라 불리는 역사적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슬픔의 땅이자 사람과 자연, 바다가 치유와 행복을 건네는 '천국'이다.박노식 시인과 이민 화가는 책머리에서 책에 담고자 하는 뜻을 전한다."오직, 시만 쓰고 오직, 그림만 그리는 순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세상에 하나뿐인 아름다운 책을 낳았습니다. 제주는 슬픔의 섬이고 예술적 상상력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픈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곳의 아포리즘과 그림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었다면 당신과 우리는 한 수평선에 누워서 낮의 흰 구름과 밤의 푸른 별을 함께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첫 장 이민 작가의 작품 '밤 11시30분 솔동산로'에 입힌 박노식 시인의 글을 보자."홀로 밤길을 걷는 사람은/ 가로등 아래에서 어떤 슬픔을 찾으며/ 누군가를 오래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익숙한 길이건 낯선 거리건 우리는 어두운 밤 홀로 걸을 때 누군가를 만났던 장면과 감정을 떠올린다.생각은 기억을 부르고 그 기억은 흘러버린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며 그 때의 그 장면들을 되새기게 한다.그것은 때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혹은 추억과 후회로 가슴을 후벼파기도 한다.박 시인은 이민 작가와 함께 제주 곳곳의 공간과 풍경을 포착한 순간과 그림에 담긴 모습을 오버랩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느낌과 서정, 서사를 입혔다.그는 비 내리는 서귀포 명동거리에서 먹먹한 가슴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자신과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기억의 고통을 감내한 인내로 내일을 기약하기도 한다.'신서귀포 메밀꽃밥'에서는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듯 피어난 꽃을 보며 상처도 삶의 일부임을 말한다.그의 시선은 계속 이어진다. 간밤의 고통을 이겨내고 떠오른 아침햇살을 보며 이별의 아픔도 영원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붙들지 않고 놓아주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면 이 또한 자기의 전부였음을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보여준다.이렇듯 각각의 글과 그림에는 사실적 풍경 속에 담긴 화폭에 입힌 작가의 손길과 시인의 눈으로 건져올린 그림 속 언어들이 슬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와 희망을 건네준다.박노식 시인은 "보석 같은 제주도 곳곳의 풍경과 공간들을 담백한 필치와 색채가 어우러진 이 민 작가의 그림을 매개로 그때 그때의 느낌의 단상들을 간결한 시적 언어로 고백하듯 써 냈다"며 "고단한 삶 속에서 잠시나마 하늘과 구름, 별을 보듯 쉬어가는 마음으로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박노식 시인은 어느 봄날, 꿈속의 그에게 불현듯 나타난 또 다른 그가 했던 말 "한 권 시집도 없이 위로 올라오지 마라!" 그는 이 현몽을 얻고 생업을 접었다. 독한 마음으로 화순군 한천면 가천마을에 둥지를 틀고 오직 시만 썼다.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고 등단,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이민 화가는 조선대학교 미대 회화과와 일본 동경 다미미술대학 판화과 석사학위 취득 후 국립현대미술관 아카데미와 국내 여러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작가는 자신만의 '판타블로 : 판(판화)+타블로(서양화)'라는 특수한 기법을 고안, 9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제주도 그림만 1천점을 목표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사진=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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