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언어로 그려낸 삶과 사랑의 향연

입력 2024.02.14. 18:52 최민석 기자
남길순 시집 '한밤의 트램펄린' 출간
현대인의 삶 다양한 측면 포착
소통 부재 속 불화하는 존재들
비애의 순간 직설적 표현 승화

시인은 자신의 언어로 삶과 사랑을 그려낸다.

첫 시집에서 "뭇 생명들의 실상"을 탐색하며 탄생과 성장의 서사를 전개했던 남길순 시인이 신작 시집 '한밤의 트램펄린'(창비刊)을 펴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성장 이면의 세상으로 서사를 확장시키며 "몸-삶의 흐름이 끊기고 성장이 정지된 세계"의 실상과 "고통스러운 죽음과 소멸"에 직면한 현대인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포착한다.

지난 시절의 "모든/기억은 와르르" "잊어버리는 게 생존의 기술"이 되어버린 냉혹한 자본사회의 인간을 시인은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홀로,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트램펄린을 뛰는 사람들"에 비유한다.

그러나 비상과 추락을 반복하며 도달하는 곳은 결국 제자리일 뿐, 시인은 이러한 제자리걸음을 어느 날 불편한 자세로 물을 먹다가 사자에게 심장을 바치고 난 후 숨을 멈추고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긴 '기린'의 생(生)과 다름없음을 직시하고,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된 소통 부재의 현실과 불화하는 존재들의 고통을 정밀하게 투시한다.

시인은 뭇 생명들이 서로에게 고통 혹은 죽음으로 전이되는 비애의 순간을 감각적인 이미지와 직설적인 표현으로 그려낸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에 대한 통찰과 냉철한 역사 인식 또한 시집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순천 출신인 시인에게 '여순사건'에 관한 시편들은 각별하다.

시인은 온 천지에 사람이 울고 개구리가 울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던 그날, "포승에 엮인/청년 여섯이/총부리 앞에 서 있"던 현장을 좀처럼 떠나지 못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곧잘 묵직한 어떤 사건이 떠오르고 어디서 스무발이나 서른발쯤 총소리가 들려오는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때 시인은 과거의 '몸'에 자신을 대입해 상황을 적확하게 묘사하는 한편, 동시에 현실의 '몸'으로 각성해 상처를 보듬어 안는 독특한 문법을 구사한다. 예컨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의 비극적 현장을 돌아보면서 아버지 가슴에 총알이 파고드는 것을 보고 있는 소년이 되어 한마디 변명도 자비를 바라는 중얼거림도 없는 침묵 속에서 스러져간 무고한 죽음들의 넋을 기리는 해원의 노래를 부르며 고통과 함께 하는 치유의 노래를 들려준다.

시인은 삶의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 수 있는 세계를 궁리하며 여전히 나는 기다리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아마 뭇 생명들이 공존하는 상생의 나라, 생명과 사랑이 흐르는, 흘러야 하는 세상 아닐까 싶다.

장철문 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시인)는 "그는 한낮의 풀밭에 무방비로 엎드려 그 삼킨 것들을 삭인다. 어불성설, 그것은, 무모하게도, 그 검고 또 검은 것들을 땅굴처럼 검은 배 속에 품기이다"며 "소화와 배태가 착종된 그의 쓰기는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엄마와 나는 발가벗고 기다랗게 누워 발을 맞대고 한 몸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렇게 누워에서 보듯 타자와 자기를 감고 한 몸으로 낳으려 한다"고 평했다.

남길순 시인은 순천에서 태어나 지난 2012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분홍의 시작', 합동시집 '시골시인-Q' 등이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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