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의 일생

입력 2024.02.01. 16:09 최민석 기자
허준 평전
김호 지음/ 민음사/ 280쪽

허준(1539~1615)은 사대부 자제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사서삼경 등 유교 경전을 섭렵했으며, 노장과 불교의 서책까지 두루 읽었다. 당대 조선의 사상계는 성리학이 중심이었지만 도가를 지향하거나 실증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들 덕분에 다양한 풍경을 보이고 있었다. 유불선 삼교를 아우르면서도 성리학의 통치 기획에 부합하는 의서가 필요했다.

인간의 생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만큼 농업과 의술은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 선정을 베푸는 데 필수적인 지식이자 기술이다. 조선을 '장수하는 땅'으로 만들고자 한 선조는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하며 병들기 전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조선의 약재(향약재)를 활용하여 많은 백성들에게 혜택이 미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최근 나온 '허준 평전'은 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의 일생을 다룬 책이다.

조선 사람의 질병은 조선의 환경과 이곳에서 나고 자란 다양한 향약재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 바탕에 조선의 유구한 향약 전통과 인간의 심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 기질(氣)의 차이를 알려면 인간의 보편성(理)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조선 사람은 보편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조선인의 기질에 따라 특별했다. 허준의 동의(東醫)는 중국의 남의?북의에 비해 동쪽 사람들의 기질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인간다움을 갖춘 보편적인 사람을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이었다.

'동의보감'의 보편적 인간관은 근본적으로 성리학의 수양론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자연을 모사한 소우주로 설명하고 성리학자들이 원하는 도덕적 삶, 즉 당위(사람다움)의 근거를 자연에 두었다. 인간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함은 그것이 본성(자연)이기 때문이다.

동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허준의 업적은 조선 의료의 오랜 전통 지식을 속방(俗方)으로 집대성한 것이다. 또한 허준은 민간에서 널리 쓰이던 향약 전통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속방의 이름으로 수록했다. 향약재의 명칭과 함께 약재를 채취하고 말리는 방법, 약재를 제조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기록하여 향촌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었다. 고려 말 이후 수백 년 동안 전래된 전통 의약 지식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던 것에는 허준의 노고가 큰 역할을 했다.

허준은 젊은 시절 경학과 사서를 읽어 여느 선비들과 다르지 않은 학식을 갖추었지만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선조 대의 대표적인 호남 사림 중 한 사람인 미암 유희춘은 사서삼경과 의서에 밝고 경향에 이미 의술로 이름을 떨치던 허준을 잘 알고 있었다. 주요 관직을 역임한 유희춘의 천거로 30대에 내의원에 들어간 허준은 당대 최고의 명의 양예수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 허준은 사망할 때까지 내의원 어의로 활동했다. 그만큼 내의원 의관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다. 한 사람의 몸을 치료하듯 한 나라의 병을 치료하는 의국(醫國)의 정신으로 충만했다.

의술이 더욱 원숙해진 허준은 50대 이후 전쟁 중에 사라진 구급용 의서의 집필에 전념했다. 말년까지 감염병 연구에 매진한 허준은 1615년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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