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로 토해낸 세월호·용산·이태원의 슬픔

입력 2024.01.24. 19:28 최민석 기자
김귀례 시인 '꽃들은 묻지 않는다' 출간
개인·가족·사회 속 슬픔의 스펙트럼
시대의 복판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
희망의 정수리에 옮겨놓은 깨달음

슬픔은 인간에게 원초적 감정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탈 수 없을 때 슬픔이 돋아난다.

자신의 모든 시에 슬픔을 읊은 시인이 있다

김귀례 시인이 신작 시집 '꽃들은 묻지 않는다'(시와사람刊)를 펴냈다.

곽재구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 한 사람이 어둠 속을 걸어간다. 한 손에 횃불,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인간과 세계의 골목길을 헤쳐가며 그는 인간의 마음 속 고통을 확인하고 그들이 지닌 슬픔을 계측한다. 그것을 외면할 자유가 우리에겐 없을 것이다. 그것들의 아픔 앞에서 시인의 시는 예민하고 진지하다"고 평했다.

세르비아 국경 검문소의 등 뒤에서 웅크린 걸음을 멈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국경검문소의 무심한 얼굴 앞에서 국경 통과 심사를 받는 동안 고물 승용차에서 내려진 이불 보따리 프라이팬 밀가루가 두 팔을 든 채 바닥에 엎드려 줄을 서기 시작한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두 눈이 커져있는 아기 엄마는 지중해에서 잠든 남편의 목소리를 떠올려 본다

자비와 평화가 불임인 시대에 태어난 쌍둥이의 이름은 난민이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채울 수 없는 결핍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인간은 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끝없는 욕망의 충족을 통해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 슬픔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이 더욱 확대되고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 충족 수단이 상품의 형태로 무한히 확대되는 것은 지금 이 시대가 그만큼 더 슬픔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귀례의 시들은 이 슬픔을 다루고 있다. 그가 다루는 슬픔은 한 개인의 내면의 슬픔에서부터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슬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이같은 맥락에서 그의 시들에 나타난 슬픔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오지 않는 사람들은 소금꽃으로 피어난다// 하얀 결정으로 부신 사연들이/ 침몰하거나 수장되거나 부유하다가/ 이곳/ 아직도에 도달한다//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 저녁만 있는 삶이 모여드는 섬/ 고통 없는 섬이 존재하지 않듯이/ 아픔 없는 배는 정박하지 않는 섬/ 아직도// 오십 년이/ 다시 하얀 기다림으로 부서지고/ 갈등을 구워야하는 오늘이 닳아가고/ 박음질 당하는 기다림은 잠을 잊는다// 텅 빈 우편함은 먼지바람이 오가고/ 소금꽃이 된 아들을 기다리는/ 등 굽은 제주도 할망/ 밀려오는 파도에 하얗게 부서진다// 희망버스는 아직도에 아직 오지 않고/ 서해 끝/ 격렬비열도가 울음을 운다."('아직도' 전문)

'아직도'는 채우지 못한 욕망을 강조해주는 부사어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연기되는 욕망 충족을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아직도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도 가야 할 곳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직도'이다. 과거의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한 '희망버스'마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그곳이 또한 '아직도'이다.

정윤천 시인은 "여전히 시대의 복판을 직시하고 복무하는 열혈청년의 시편들이 이채롭고 아프다. 천수천안의 몸짓으로 자신의 시를 태어나게 하는 내외의 비극 현장을 검색하며 놓치지 않고 있다"며 "한편으로 시인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5월의 광주에 몸을 담고 이어진 세월호와 용산과 이태원의 참사들에서 자행되고 있는 자본과 국가폭력들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커다랗게 내고 있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김귀례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교육대학원을 나와 국어교사로 퇴직했다. 계간 '시와 사람'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빚기와 진선미 동인,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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