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 없는 자신의 삶과 시대에 관한 질문들

입력 2022.12.13. 11:10 최민석 기자
해남 출신 유종 시집 '푸른 독을 품는 시간' 출간
현실에 대한 응전·내면과의 대화
죽음을 향해 이뤄지는 노동 비판
자신의 노동 체험 속에서 삶 노래

철도원으로 평생 일하다 은퇴한 시인이 자신의 삶과 체험을 다룬 시집을 펴냈다.

유종 시인이 첫 시집 '푸른 독을 품는 시간'(도서출판 b刊)을 출간했다.

그는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은퇴를 한 뒤 문학에 몰두하며 첫 시집을 내놓았다. 시집에는 총 4부에 57편을 담았다. 제1부에서는 시인의 생활 속에서의 정서가 담긴 시들을, 제2부에서는 오랫동안 철도노동자로 살아오는 과정의 체험들이, 제3부에서는 현실에 대한 시적 사유들을 담고, 제4부에서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삶으로서의 응전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면서 내면과의 근원적인 대화를 시도하는 시편들로 각각 채워졌다.

그 가운데 특히 시인 자신의 노동 체험 속에서의 삶을 노래한 시들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안개 자욱한 철길 / 철야 작업 끝 쓴 입맛 다시던 / 무개차 위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 두꺼운 밤의 겉옷 한 꺼풀씩 벗겨내면 / 새벽이 오고, 또 새벽이 오고 / 그리고 또 허기진 새벽 / 아내와 어린아이들 뒤로하고 / 안개에 묻혀버린 젊은 철도원 눈동자 / 밤은 고요하고 거룩"('고요한 밤 거룩한 밤' 중 일부)

시인은 죽음을 향해 이루어지는 노동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시인에게 혹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아버지를 둔 유가족에게 어떤 삶의 위로를 전해야 하는지 되묻는다.

철야를 마치고 퇴근을 하는 길에 파출소 앞에서 불심검문을 당하며 기름때와 땀내에 전 작업복 가방을 강제로 열어 보이면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수치심과 그로 인한 서러운 회억을 토로한다.

그런데 삶에서의 이러한 슬픔이나 고통, 수치심 등을 드러내면서도 시인은 감정이 고조되거나 불필요한 목청을 돋우지 않고 차분한 애도와 성찰을 통해서 시를 단단히 영글게 만든다. 젊은 여자가 기관차에 부닥쳐 죽은 사태에 즈음하여 크나큰 정신적 충격 속에서도 기관사나 동료들의 반응을 철도노동자의 즉자적 반응이나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한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떤 편견이나 왜곡에 기초한 신념이나 이념, 상투적인 인식이나 상상에 의거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간 삶의 심오함과 세계의 심원함 그 자체로 인식하려는 내재성의 태도를 일관되게 고집하고 있다.

시인 임동확은 "어떤 집단의식과 같은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자립적 개인성의 촉수에 따라 한 여자의 비극적 종말과 그와 관련된 기관사의 실종 사태를 다루고 있다"며 "이번 시집은 지난 시대 자신의 삶과 시에 대한 곡진한 이별과 동시에 내일을 미리 당겨 쓰고자 하는 욕망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출사표"라고 평했다.

유종 시인은 해남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난 2005년 광주전남 '작가' 신인 추천 및 '시평' 여름호를 통해 등단,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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