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의 세계 향한 시적 감흥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 기록
팬데믹 상황 삶의 의미 승화
전 세계를 엄습한 팬데믹의 충격과 두려움 속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비롯한 각종 방역 조치는 일상의 풍경과 리듬을 깨뜨렸다. 지금까지 아무런 불편 없이 누려왔고 유지했던 낯익은 사회적 관계들에 심각한 균열과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회적 형식의 관계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기존 관계들을 보완하고, 심지어 대체하려는 움직임들마저 보이고 있다.
조용환의 시인이 신작 시집 '목련 그늘'(푸른사상刊)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시적 주체 자신에 대한 부정을 바탕으로 한 세계에 대한 전면적 쇄신을 향한 자기 존재와 신생의 세계를 향한 시적 감흥을 담은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목련 그늘'은 절창이다. 하얗게 핀 목련꽃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생명이 소멸해가는 절명의 슬픔 일변도로 노래하지 않는다. 생의 빛나는 순간이 시나브로 꺼져들어감으로써 죽어가는 것이 지닌 생의 공허함에 초점을 맞추는 비장미를 환기시키지 않는다. 대신 시인은 목련꽃이 피어 있을 때 목련꽃과 관계를 맺었던 '강물', '참새 떼', '소나기 치던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목련 그늘'에서 형상화했다.
지는 목련꽃이 우주적 소멸의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 신생의 환희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고, 그래서 '초록'으로 표상되는 새 생명을 만끽할 수 있다는 뭇 존재가 지닌 생의 비의적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감지한다. 그러므로 조용환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신생과 갱신 그 자체가 아니라, 신생과 갱신에 이르는 매 순간의 경이로운 '과정'의 신비다.
시인은 하얀 꽃을 피워냈다가 까맣게 저무는 목련의 그늘에서 삶의 의미를 사유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상황에 마스크가 필수품이 된 일상을 힘들게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투와 몸부림을 외면하지 않는다.
"세 살, 그 어린/ 망각을 끝내 지켰어야 했다/ 못에 찔려 피가 터지고 속살이 뜨겁게 드러났지만/ 나는 야무지게 울음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달려야 했다/ 물려받은 건 오직 건각(健脚)뿐/ 멈춰 서서, 왜 달려야 했는지 물을 틈도 없이/ 결국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은행보다 희망적으로/ 기차보다 빠르고 정확히……// 회의(懷疑)하는 순간,/ 모가지를 덥석 물어 뜯어버릴지도 모를/ 모퉁이들 사이로/ 숲속 동화를 찾아가는 몽상의 아스팔트를/꿈꾸듯 달려야 했다"('복숭아뼈를 위하여' 중 일부"
맹문재 시인은 "조용환의 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스산한 기에 떨어진 마스크를 밟으며 발꿈치를 달구는 걸음으로 상징되는 일상을 담아냈다"며 "사랑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기꺼이 나아가는 삶을 자신만의 언어로 승화했다"고 평했다.
조용환 시인은 1998년 '시와사람'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뿌리 깊은 몸' '숲으로 돌아가는 마네킹' '냉장고 속의 풀밭' 등이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 문학축전·시인지 복간···다시 보는 조태일 시인 시로서 저항을 노래하던 죽형(竹兄) 조태일 시인(1941~1999)의 타계 25주기를 맞아 시인의 삶을 돌아보고 시 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자리가 마련된다.이번 25주기에는 시인의 삶을 조명하는 문학축전 행사와 함께 생전에 주간으로 활동했던 '시인'지가 복간돼 의미를 더한다.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와 곡성군은 오는 19일 '제6회 조태일문학상 시상식'과 '2024 죽형 조태일 25주기 문학축전'을 진행한다.곡성조태일시문학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석곡지역아동센터 오케스트라가 선물하는 클래식 선율을 시작으로 싱어송라이터 서혁신이 '일어나', '조율' 등을, 바리톤 이형기가 '오 솔레미오', '베사메 무초' 등을 노래한다. 이어 정원도, 류경, 박두규, 한종근 시인들의 시 낭송이 진행된다.이날 행사에는 조태일 시인 육성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된다. 또한 조태일 시인의 가족도 함께 자리를 빛낼 예정이다. 부대 행사로는 죽형 조태일 시인 25주기 추모 시화전 '고여 있는 시, 움직이는 시'도 함께 펼쳐진다.앞서 지난 8월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와 곡성군이 주최한 제6회 조태일문학상에는 박석준 시인의 시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니(푸른사상)'가 선정됐다. 1958년 광주에서 출생한 당선자 박석준 시인은 시집을 통해 한국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갖은 고통을 겪었던 개인의 가족사를 비롯, 음울한 도시의 풍경과 소시민의 삶을 형상화했다.조태일 시인특히 죽형조태일기념사업회는 조태일 시인이 주간으로 활동했던 '시인'지를 연간시지로 복간해 눈길을 끈다.1969년 8월 월간지로 창간한 '시인'지는 1970년 11월까지 총 16호 나왔으며, 이후 1983년 5월 무크지 형태로 복간돼 1986년 8월까지 4권이 더 나왔고, '시인'지로 등단한 이도윤 시인이 2003년 9월 재복간해 21권을 냈으나 2019년 9월 다시 중단됐다. 이후 2015년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가 조태일 시인 25주기를 맞아 통권 42호로 명맥을 잇게 됐다.이번 호에는 조태일 시인 25주기를 조명하는 다양한 특집을 비롯해 한국 문단의 굵직한 현안을 다루고 있어 눈길을 끈다.'특집 1-조태일의 삶과 시'에서는 구중서 문학평론가가 조태일 시인의 위상과 성격을, '특집 2-시인, 시의 새 시대를 열다'에서는 '시인'지로 등단한 고원, 고광헌, 박남준, 양성우, 정원도 등 시인들의 신작 시를 비롯해 엄동섭 근대서시학자의 '조태일의 시(단)사적 위치와 '시인'의 서지 비정(批正)'을 실었다.조태일 시인또 제6회 조태일문학상을 받게 된 박석준 시인의 신작 시와 시인이 직접 고른 애착 시, 백애송 시인과의 대담이 실렸다.한편 조태일 시인은 1941년 전남 곡성에서 출생,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 선박'으로 등단, 이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노래하고 방해 요소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시를 펴냈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시인'지의 주간(主幹)을 지내기도 했으며, 1999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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