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목련꽃을 바라보며 느끼는 삶의 풍경들

입력 2022.06.23. 14:45 최민석 기자
조용환 시인 '목련 그늘' 출간
신생의 세계 향한 시적 감흥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 기록
팬데믹 상황 삶의 의미 승화

전 세계를 엄습한 팬데믹의 충격과 두려움 속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비롯한 각종 방역 조치는 일상의 풍경과 리듬을 깨뜨렸다. 지금까지 아무런 불편 없이 누려왔고 유지했던 낯익은 사회적 관계들에 심각한 균열과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회적 형식의 관계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기존 관계들을 보완하고, 심지어 대체하려는 움직임들마저 보이고 있다.

조용환의 시인이 신작 시집 '목련 그늘'(푸른사상刊)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시적 주체 자신에 대한 부정을 바탕으로 한 세계에 대한 전면적 쇄신을 향한 자기 존재와 신생의 세계를 향한 시적 감흥을 담은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목련 그늘'은 절창이다. 하얗게 핀 목련꽃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생명이 소멸해가는 절명의 슬픔 일변도로 노래하지 않는다. 생의 빛나는 순간이 시나브로 꺼져들어감으로써 죽어가는 것이 지닌 생의 공허함에 초점을 맞추는 비장미를 환기시키지 않는다. 대신 시인은 목련꽃이 피어 있을 때 목련꽃과 관계를 맺었던 '강물', '참새 떼', '소나기 치던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목련 그늘'에서 형상화했다.

지는 목련꽃이 우주적 소멸의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 신생의 환희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고, 그래서 '초록'으로 표상되는 새 생명을 만끽할 수 있다는 뭇 존재가 지닌 생의 비의적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감지한다. 그러므로 조용환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신생과 갱신 그 자체가 아니라, 신생과 갱신에 이르는 매 순간의 경이로운 '과정'의 신비다.

시인은 하얀 꽃을 피워냈다가 까맣게 저무는 목련의 그늘에서 삶의 의미를 사유하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상황에 마스크가 필수품이 된 일상을 힘들게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투와 몸부림을 외면하지 않는다.

"세 살, 그 어린/ 망각을 끝내 지켰어야 했다/ 못에 찔려 피가 터지고 속살이 뜨겁게 드러났지만/ 나는 야무지게 울음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달려야 했다/ 물려받은 건 오직 건각(健脚)뿐/ 멈춰 서서, 왜 달려야 했는지 물을 틈도 없이/ 결국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은행보다 희망적으로/ 기차보다 빠르고 정확히……// 회의(懷疑)하는 순간,/ 모가지를 덥석 물어 뜯어버릴지도 모를/ 모퉁이들 사이로/ 숲속 동화를 찾아가는 몽상의 아스팔트를/꿈꾸듯 달려야 했다"('복숭아뼈를 위하여' 중 일부"

맹문재 시인은 "조용환의 시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스산한 기에 떨어진 마스크를 밟으며 발꿈치를 달구는 걸음으로 상징되는 일상을 담아냈다"며 "사랑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여기고 기꺼이 나아가는 삶을 자신만의 언어로 승화했다"고 평했다.

조용환 시인은 1998년 '시와사람'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뿌리 깊은 몸' '숲으로 돌아가는 마네킹' '냉장고 속의 풀밭' 등이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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