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복원'을 넘어 진본성과 방문객 관점에 기초해야

입력 2023.10.30. 17:58 조덕진 기자
②이동기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폴란드 그단스크의 유럽연대센터 내부 전시장. 1980년 광주와 함께 세계 민주화운동의 거점이었던 현장에 2014년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유럽연대센터는 민주주의 운동 기념과 기억의 미래를 열고 있다.?

[무등일보 특별기획] 옛 전남도청(박물관) 지속가능성을 위한 전문가 제언 ②이동기 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옛 전남도청 채워질 전시콘텐츠

80년5월18일-27일 10일에 가둬

이는 역사축소이자 광주의 모순

5·18은 80년대 내내 그 이후에도

한국 사회 전역에서 살아 숨쉬어"

"원형복원 논쟁 극복 지름길은

'예술의 도시, 광주'서 벗어나야"

"옛전남도청의 '복원'과 '전시'를 포함한 모든 기억화 작업의 요체는 방문객이 '5·18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연대의 결의와 자유의 헌신은 삶과 공동체에 관한 질문과 토론, 고민과 소통의 결과였지 전제가 아니었다. 방문객들 사이에 그런 질문과 토론, 숙고와 소통이 오간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이고 이미 문화다."

지난 8월 23일 오후 폴란드 북부 항구 도시 그단스크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나는 자주 입술을 붙이고 구부렸다. 하지만 한숨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단스크에 소재한 민주화운동 기념관의 화려한 위용이 광주 5.18 기념관 건립의 지난함과 비교되었기 때문이었다. 2014년 8월 말 개관한 그단스크의 '유럽연대센터'(European Solidarity Center)는 민주화운동 주제로는 세계 최고의 기념관으로 꼽힌다. 1980년 5월 광주가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봉화를 올렸던 바로 그때, 그단스크도 동유럽 민주화운동의 등대로 빛나기 시작했다. 둘은 모두 같은 시기 권력의 탄압으로 무참했지만, 곧 봉화와 등대는 자국을 넘어 세계를 비췄고 시간을 넘어 역사가 되었다.

폴란드 그단스크의 유럽연대센터 건물 정면. 1980년 광주와 함께 세계 민주화운동의 거점이었던 현장에 2014년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유럽연대센터는 민주주의 운동 기념과 기억의 미래를 열고 있다.

레흐 바웬사를 중심으로 한 폴란드 연대노조는 1989년 동유럽 평화혁명의 진원지가 되었다. 바로 그 역사 현장인 부두에 건립된 유럽연대센터는 2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진 상설 전시관을 갖추었다. 상설 전시관은 2천 개의 전시 물품으로 연대노조의 투쟁과 동유럽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전시한다. 유럽연대센터는 기획전시관은 말할 것도 없고 10만 권이 넘는 책과 문서를 소장한 도서관과 다양한 세미나실로 만들어진 교육관과 정보실을 따로 보유하고 있다. 2021년 그 박물관은 유럽연합 문화유산 상을 받아 국제 명성을 더욱 높였고, 2023년 8월에도 방문객이 넘쳤다. 광주가 그단스크를 늦게나마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원형복원' 논쟁과 용어를 넘어서는 것이 출발이다. 애초 '원형복원' 주장은 정당했고 불가피했다. '열흘간의 나비떼'는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 기념의 세계사에 길이 남을 참담한 사건이었다. 역사의 진본성(authenticity: 사실성)을 침해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기념과 기억도 불가능하다. 국가폭력과 민주주의의 현장을 파괴하고 변조한 채 기괴한 창작물을 비치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야만이었다. 해외에서도 그런 예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폭력사의 장소와 공간, 사물과 건물은 그 차제로 이미 말을 한다. 그 말을 살리는 것이 기념의 시작이다. 창작과 가공이 역사의 사실성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기억문화의 중심에 설 수는 없다. '원형복원' 논쟁을 극복하는 지름길은 '예술의 도시, 광주'라는 말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가공과 창작으로 역사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버리는 것에서 생겨난다.

사실 '원형복원'은 성립할 수 없는 기괴한 개념이다. 사건 당시의 현장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억과 교육이라는 기념관의 취지와도 모순된다. 방문객은 주체적 수용자이기에 고유한 판타지와 인식 관심, 감정의 동요로 역사를 체험한다. 방문객들이 역사로 진입할 수 있게 역사 현장을 고치고 가꾸는 것이 오히려 적극 필요하다. 더구나 교육과 공공서비스를 위해서라면 도청 건물 안의 일부를 꽤 바꾸어야 한다. 그러니 '원형복원'의 참 의미를 살리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제 '역사현장의 보존'이라고 부르자.

사실 그런 혼란과 갈등은 광주만의 것이 아니었다. 기념관 건립과 운영을 둘러싼 혼란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 '국제 반인도성 공공범죄희생자 기념관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for Memorial Museums for Public

Crimes against Humanity: ICMEMO)는 2012년 '국제기념관 10개 조 헌장'을 발표했다. 그 헌장도 기념관의 일차적 과제는 '역사현장의 보존'('원형복원'이 아니라!)이라고 밝혔다.

한편, 그 10개 조 선언에 기초하면, 민주주의 기억문화는 다음의 세 원칙에서 출발한다. 먼저, 다원적 소통이다. 민주화운동을 기념한다면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건립 과정과 운영 구조를 가질 수는 없다. 그것은 자가당착이다.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소통 과정은 단순히 단발적인 간담회나 워크숍 개최로 축소될 수 없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일방 주도나 행정 절차의 압박을 극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들의 독점이나 방해도 단호히 넘어서야 한다. 기념관 건립과 운영 주체 기관 안에 최소한 학술자문위원회와 시민사회위원회를 두어 "비위계적이고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토론"과 소통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때 고루한 중장년 남성들의 독점을 피하고 세대와 성별도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월동 5.18 민주묘지의 '무장항쟁'과 '대동세상' 조형물 같은 역사 왜곡이 되풀이될 것이다.

학술자문위원회의 중요성은 기념관 건립과 운영이 학문적 전문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두 번째 원칙과 직접 연결된다. 기념관은 유물 자료의 수집과 보관, 전시 자료의 선정과 분류, 공공역사와 역사 재현 방식, 시각문화와 디지털화, 추모지 교육과 민주시민교육, 집단기억과 소통문화 등에 대해 모두 학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인력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전시는 학문적 전문성에 충실히 의거해야 한다. 단발의 연구용역을 거쳐 전시업체의 아마추어들이 마구잡이로 전시 내용을 짜도록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전시관은 최근 박물관학에서 특히 강조하는 '방문객 관점'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이를테면, 전시 공간과 실내 장치도 방문객의 이동과 관람 편의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건물 구조와 내장을 바꾸는 것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교통약자와 사회적 소수자의 접근과 이동 편의를 보장하지 못하면서 '민주주의 성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기념관의 모든 활동은 더 많은 방문객이 오고, 한번 다녀간 방문객이 다음에 또 오고, 혼자 온 방문객이 무리를 지어 다음에 또 오는 곳이 되도록 맞추어져야 한다.

전시와 관련해서는 두 관점이 중요하다. 먼저,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사이의 10일로 가두는 것은 역사 축소이고 광주의 자기모순이다.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진압 작전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1980년대 내내 그리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한국 사회 전역의 주민들에게 살아 숨 쉬었던 역사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그것 자체가 1980년 5월 26일 밤과 27일 새벽 전남도청 역사의 중요한 일부다. '그후의 역사' 또는 '제2의 역사'를 통해서 비로소 '그날의 역사' 또는 '제1의 역사'의 의미가 확인되고 그 무게를 감지할 수 있다.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광주 이외의 전국 또는 심지어 세계 전역에서 올 방문객들에게 말을 거는 적극적 방식이다.

5.18국립묘지의 무장투쟁과 대동세상 조형물. 여성 인물상이 각기 한명과 세명 뿐이다. 여성의 참여를 이렇게 무시하는 형상화는 역사왜곡이다.

둘째, 행위자와 생애사 관점을 전면에 올려야 한다. 5.18민주화운동을 직접 겪거나 그것을 통해 정치적 사회화를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항쟁의 날과 시간이 모두 스틸컷으로 이어져 숨 막히지만, 그것을 '동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뒷세대들에게 그것은 대개 하나의 사건 뭉텅이로 보인다. 그 틈을 메우려면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야 한다. 전시는 역사 교과서를 펼쳐 놓는 방식이어서도 안 되고 긴 설명문으로 방문객을 질리게 해서도 안 된다.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행위자들의 선택과 결정, 헌신과 책임, 결집과 연대, 의도와 계획, 이익과 피해의 과정이었다. 이를테면, 전시는 신군부와 계엄군의 주요 책임자나 군인들의 생애사도 포괄해야 한다. 가해자 없는 국가폭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항과 연대의 주체들을 집단 유형과 범주별로 나누어 전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행위 동기와 맥락, 실천 양상과 지향들은 다양했고 풍성했다. 그것이 전시로 드러날 때 방문객들은 비로소 5.18민주화운동과 제 삶의 연관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사실 옛전남도청의 '복원'과 '전시'를 포함한 모든 기억화 작업의 요체는 방문객이 '5.18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이다. 질문과 숙고, 타진과 소통의 열린 공간이 되려면 더 많은 행위자들의 생애사를 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연대의 결의와 자유의 헌신은 삶과 공동체에 관한 질문과 토론, 고민과 소통의 결과였지 전제가 아니었다. 그단스크와 광주에서 모두 그랬다. 1980년 5월처럼 지금도 그렇다. 방문객들 사이에 그런 질문과 토론, 숙고와 소통이 오간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이고 이미 문화다.

이동기

강원대 대학원 평화학과 교수.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 독일 예나대학에서 독일통일과 평화정치를 주제로 박사를 취득했다. 평화이론과 사상, 과거사정리와 공공역사, 냉전과 평화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사 몽타주: 발견과 전복의 역사', '비밀과 역설: 10개의 키워드로 읽는 독일통일과 평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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