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통제하고 사실이 죄가 됐던 시기 안타깝게 느껴”
“광복 80년, 아픈 기억은 상처가 아닌 우리가 지켜낼 미래”

"위안부 소문 실형 판결은 자기 딸을 지키려고 한 어머니를 오히려 죄인이 된 사건입니다. 단순한 개인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의 입을 막고 두려움 속에 살게 만든 정치적 폭력 이었습니다. 이런 삶에서 해방을 시키려 노력한 독립운동가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제 시대 당시 조선에 행했던 행위들이 많은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당시의 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일본도 독일처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11일 영암군에서 위안부 징발 관련 소문을 퍼트렸다는 이유로 1927년과 1928년에 실형을 살았던 영암군민에 대한 자료가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영암군의 노력 덕분에 광복 80년을 앞둔 시점에서 뒤늦게 나마 당시의 심각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른바 '위안부 실형' 자료 조사와 공개를 주도한 사람이 송태갑 영암군 문화유산팀장.
송 팀장은 영암군 의병 관련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박광섭 순국선열 및 독립운동가 선향사업회장에게서 몇가지 자료를 건네받으면서 알게 됐다.
송 팀장은 "처음에는 흔히 알고 있는, 위안부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은 내용인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일본 육군 헌법 위반 관련 것이었다"며 "위안부와 군형법이 무슨 관련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판결문을 보게 됐는데, 자료 보다는 사료에 가까웠다"고 밝혔다.
그는 "판결문을 확인하고 제일 먼저 했던 일이 후손을 찾는 일이었다. 다행히 송명심씨 후손이 영암군 덕진면에 생존해 계셨다"며 "찾아 뵙고 관련 자료 일체를 드렸는데, 후손들은 '할머니 생전에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며 전혀 모르고 있는 상황이라 놀랐다"고 밝혔다.
송 팀장은 "국가기록원은 원본과 번역본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상태여서 판결문 확인에 많은 시간은 필요 없었다"며 "이번 사료의 발굴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좀더 일찍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지금까지도 일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 많은 사료가 발굴돼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행위를 인정하고, 독일처럼 사죄해 함께 미래를 향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영암군는 지난해 의병사를 정리해 내년에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수형인명부를 통해 영암출신 의병 15명을 추가 발굴하고 있다. 밝혀진 의병에 대한 자료 발굴과 추가 연구를 통해 서훈 신청을 통한 선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는 건 단순히 나라를 빼앗긴 상황이 아니라, 일상이 어떻게든 통제당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죄가 되는 시기였다"며 "광복 80주년는 올해의 기림의 날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위안부 피해자와 후손, 그리고 독립을 위해 애쓴 모든 분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기억은 상처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낼 미래다"고 밝혔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전남광주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