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근로자 영 잔투씨 "고향사람들과 향수 달랠 것"

입력 2024.09.12. 16:32 선정태 기자
■ 외국인 노동자 추석 분위기
최근 비자 획득, 걱정없이 일해
아내 출산 임박, 남다른 명절
고향에 토지 매입 '코리안 드림'
곡성에서 생활하고 있는 캄보디아인 영 잔투씨는 명절에 고향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F2R 비자 획득…갱신 걱정없이 일할 수 있어 행복

열심히 일해 고향에 토지 매입…'코리안 드림' 달성

일과후 국밥에 소주가 최고지만, 명절에는 고향 음식

부모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타국으로 넘어온 외국인 유학생과 근로자에게 명절은 더 큰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같은 유교권인 동남아시아에서 온 외국인들에게 타향에서 보내는 추석은 더 애틋하다. 일부는 깊어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향을 찾기도 하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한국에서 명절을 맞는 이들도 많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을 찾은 여러 나라의 유학생·근로자를 만나 명절과 타향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캄보디아에도 추석과 같은 명절이 있습니다. 형도 만나고 고향사람들과 음식 나눠 먹으며 향수 달래려 합니다."

한국에서 10년째 머무는 영 잔투(Yoeung Chanthou·33·캄보디아)씨에게 올 추석은 어느 해보다 특별한 연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낯설고 고단한 타향살이지만, 몇 년 전 결혼해 임신한 아내가 추석 전후로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타케오시에서 나고 자란 영씨는 지난 2015년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경북 경주시에 머물며 용접공 일을 하던 영씨는 2년마다 비자 심사를 받는 것이 힘들고 번거로웠던 영씨는 한국에서 일한 지 4년 10개월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받기 위해 한국어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에 다시 들어온 영씨는 2년 이상 길게 체류할 수 있는 비자 취득을 위해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에 참여해 2019년부터 곡성에서 직장을 얻으며 조선대에서 공부를 병행했다.

비자를 갱신할 때는 일정 수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기에, 2년 6개월 동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해야 했다.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에는 조선대에서 공부해야 했다.

곡성에서 생활하고 있는 캄보디아인 영 잔투씨는 명절에 고향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추석에는 전주를 방문해 한복을 입어보기도 했다. 그가 지난해 추석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영씨는 "단 하루도 쉬지 못해 몸도 힘들고 마음도 피폐해졌다"며 "당시 너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 노력 덕분인지 그는 인구 감소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일할 수 있는 F2R 비자를 취득했다.

평소 아내가 차려주는 고향 음식을 먹지만, 영씨의 최애 음식은 국밥과 순대다. 힘든 일과를 마친 후 동료들과 먹는 국밥과 순대, 소주 한잔은 최고의 피로 회복제다.

그는 캄보디아의 추석인 '쁘춤번'에 대해 설명했다. 쁘춤번은 가족이 한데 모여 조상께 정성 담은 음식을 바치는 날이다. 쁘춤번 때 객지로 나가 있는 가족과 친지들이 한데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돌아가신 조상들을 기린다는 점에서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점이 많다. 쁘춤번은 쫄츠남 새해 첫날과 본옴뚝으로 알려진 물 축제와 더불어 캄보디아 3대 명절로 불린다.

영씨는 "실외에서 용접하기 힘든 겨울에 한달 정도 휴가를 내고 고향을 방문한다"며 "돈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매년 가지는 못하고, 2년에 한번 정도 간다"고 말했다.

곡성에서 생활하고 있는 캄보디아인 영 잔투씨는 명절에 고향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고향에 싼 땅에 세워진 공장을 보여주고 있다.

매년 추석 때 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형을 찾아 함께 명절을 보냈지만, 올해는 출산이 임박한 아내가 있어 형이 내려오기로 했다.

그는 "업무가 많을 때는 야근에 특근까지 하며 쉬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덕분에 돈을 많이 모았다"며 "고향에 넓은 땅을 구입해 공장 부지로 임대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리안 드림'을 제대로 실현한 덕에 고향에서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어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운 후. 나이들어 캄보디아에 돌아가 과수원을 하고 싶다"며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모으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영씨는 "저에게 일자리를 준 곡성군이 저와 가족의 희망이자 터전이다"며 "3명의 자녀를 낳아 한국의 구성원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일할 계획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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