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없앤 자리에 공원···사람들 머무니 상권 '활짝'

입력 2025.12.19. 14:28 이삼섭 기자
공존의 거리 - 자동차 지배를 넘어 ⑦바르셀로나 '슈퍼블록' 효과
바르셀로나 슈퍼블록 프로젝트가 도입된 에이샴플레 지구의 만사나(블럭 단위·Manzana) 내부 모습. 인도 가운데에 나무와 벤치가 조성돼 있다.

9개 블록 '만사나'로 묶어 관리…차도 줄여 보행·녹지 공간으로

2030년까지 503개 블록 완성하고 도로 3곳 중 1곳 '녹지축' 조성

교통정책 넘어 생활방식 변화…인도 늘자 사람들 체류시간 증가

상인들 "차량 못 들어와서 손해? 오히려 매출 늘었다" 긍정 반응


"차도 대신 인도를 넓히니 거리에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어요. 벤치는 휴식 공간이 되고, 자연스럽게 이웃 간 대화도 생깁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에이샴플레 지구에서 타파스바를 운영 중인 알레한드로(Alejandro·38) 씨는 가게 앞 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르셀로나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슈퍼블록'(Superblock) 프로젝트에 따라 바뀐 거리다. 차량이 쉴새없이 지나며 쾌쾌한 매연을 뿜던 거리는 이제 보행자와 자전거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생활 공간으로 변했다. 넓은 도로가 보행로로, 공원으로 바뀌니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자연스럽게 상점가가 살아났다.

바르셀로나 슈퍼블록 프로젝트가 도입된 에이샴플레 지구의 도로 모습. 넓은 인도에 벤치와 놀이터가 마련돼 있다.

주정차가 가능한 구역에서 식재료를 가져오는 정도의 불편은 "불편도 아니"라는 게 알레한드로 씨의 말이다. 차량으로 접근이 안 되니 손님이 불만을 품을 것이란 생각에도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알레한드로 씨는 "바르셀로나는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로가 잘 마련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손님들에게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권한다"며 "저와 제 직원들도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과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말했다.

알레한드로 씨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특정 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르셀로나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차도를 줄이거나 없애 보행·녹지공간으로 재편하는 방식이다. 바로 슈퍼블록(Superilla Barcelona)이다. '길을 차에서 사람에게 돌려주겠다'는 바르셀로나의 도시 전환 선언이다. 차량 중심으로 발전해온 전세계 도시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서 바르셀로나의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슈퍼블록 프로젝트가 도입된 에이샴플레 지구의 도로 모습. 자전거 전용도로와 차도, 인도가 구분된 모습이다. 인도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車 줄어든 자리에 보행·공원·쉼터

슈퍼블록은 바르셀로나시가 도로 공간을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추진해 온 도시 공간 혁신 모델이다. 격자형 도로망을 이루는 도시 구조 속에서 여러 블록을 하나의 생활 단위로 묶고, 블록 내부에는 통과 교통을 제한하는 대신 보행과 휴식을 우선하는 구조를 만든다. 9개의 블록(3x3)을 하나의 거대 단위(만사나·Manzana)로 묶어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16년 포블레노우 지구에 처음으로 시범 도입됐다. 현재는 오르타, 산 안토니오, 에이샴플레 등으로 적용 지역이 넓어졌다. 바르셀로나시는 오는 2030년까지 503개 교차로를 슈퍼블록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도로 3개 중 1개를 보행자 중심의 '녹색축'(Green Axes)으로 전환한다. 모든 교차로에 광장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23㏊가량의 공공 공간을 되돌려줄 방침이다.

슈퍼블록의 일차적 목표는 '공간의 민주적 배분'이다. 그동안 자동차가 점유해온 도심 공간을 보행자와 주민의 휴식 공간으로 재분배 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블록 내부에는 거주자와 물류 차량 등 필수 차량만 진입을 허용한다. 일반 차량은 블록 외곽 간선도로로 우회시키며 주행 속도는 시속 10~20km 이내로 제한해 안전을 확보했다.

슈퍼블록 프로젝트가 적용된 에이샴플레 지구는 과거 바르셀로나에서 대기·소음 공해 수준이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천지개벽이다. 이곳의 자동차 이동자는 전체 교통량의 20%에 불과했지만 도로 면적의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녹지공간도 주민 1인당 2㎡에 불과했다. 하지만 슈퍼블록 프로젝트를 도입하면서 교통의 흐름이 재편됐다. 도로 3곳 중 1곳은 차량 통행을 금지해 차량이 직선으로 순환할 수 없는 녹지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지난 2020년부터 3년간 1단계 사업을 통해 11만㎡ 규모 공간이 탈바꿈돼 보행자 공간이 5만8천㎡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녹지 1만1천㎡에 나무 400그루가 추가돼 여름철 평균 기온이 5도 낮아져 쾌적해졌고 교통량이 17% 감소했다. 현재는 총 33km의 가로와 21개의 광장을 포함한 21개의 녹지거리가 조성됐다.

바르셀로나 슈퍼블록 프로젝트가 도입된 에이샴플레 지구의 도로 모습. 자전거 전용도로와 차도, 인도가 구분된 모습이다

◆되찾은 건강…상권 활성화에 함박웃음

차도가 사라진 자리에 조성된 풍성한 녹지는 도시를 쾌적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슈퍼블록의 녹색거리는 교통량 감소 조치가 시행되고 휴식 공간과 녹지가 풍부하게 조성돼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이러한 녹색 거리의 교차로에는 새로운 도시 광장이 생겨나고 있다. 녹색거리는 아스팔트를 걷어낸 자리에 가로수를 대거 심고 투수성 포장을 적용해 도심 열섬 현상을 완화했다. 실제 바르셀로나시의 분석에 따르면, 슈퍼블록 조성 이후 해당 지역의 이산화질소 농도는 최대 25%까지 감소했다. 소음 수치 또한 현저히 낮아졌다. 이는 주민들의 호흡기 질환 예반과 정신 건강 증진이라는 실질적 효과로 이어졌다.

경제적 파급 효과도 뚜렷했다. 보행 인구가 늘어나면서 길거리 상권은 오히려 활력을 되찾았다. 슈퍼블록 도입 초기에는 '차량 진입 제한'이 매출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며 상인들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유럽 교통 기구와 바르셀로나시청이 조사한 결과, 슈퍼블록 조성 이후 해당 구역 내 상업 활동이 이전보다 3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차량 중심 도로에서는 운전자가 상점을 스쳐 지나가기 바빴으나, 보행로가 넓어지면서 시민들의 체류시간이 길어지며 소비로 연결된 영향이다.

바르셀로나 슈퍼블록 프로젝트가 도입된 에이샴플레 지구의 도로 모습. 차량을 통제한 대신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아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주민·상인들 '엄지 척'…경제적 효과 ↑

취재진이 직접 에이샴플레 지구 곳곳에 있는 슈퍼블록 현장을 찾아보니 다른 구역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다. 까딸루냐 광장에서 이어지는 녹색축을 따라 바르셀로나 대학교 인근에 위치한 슈퍼블록을 찾아가자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과거 차로였던 교차로는 '도심 속 공원'처럼 변모한 모습이다. 과거 차도가 흡수되면서 확 넓어진 인도는 보행자간 혼선을 줄이고 안정감을 줬다. 유모차를 끄는 부모와 보행자, 자전거를 끌고 이동하는 시민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여유 있게 이동했다.

상가 1층에는 주로 편의점, 식당, 카페 등 소규모 상점들이 입점해있었는데 이들이 내놓은 테이블이 인도 가장자리를 장식했다.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거리의 활력을 더하기도 했다. 또 인도와 상점 입구가 연결된 만큼 발걸음을 멈추고 가게 안을 들여다보거나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어 상점 이용과 체류시간 증가로 이어졌다.

베이커리카페를 2년째 운영 중인 한 사장은 "더운 여름철에는 거리를 오다가 들어와서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고, 빵을 포장해가는 손님들도 있다"며 "가까운 녹지공간에 마련된 벤치는 시민과 직원들의 휴식공간이 돼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나무와 벤치로 가득한 교차로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중년 여성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고, 일부는 휴대폰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작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자동차 소음이 크지 않다 보니 대화를 나누는 데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쉬고 있던 한 중년 여성은 "파리에서 살다가 스페인에 온지 11년됐다. 스페인에 와서 대중교통이 잘 돼 있다고 생각했다. 배차 간격이 짧아서 차가 필요 없는 것"이라며 "녹지공간도 좋은 점 중에 하나다. 벤치가 모여있으니 쉬고 있다보면 말거는 주민이 있어 자연스럽게 대화가 된다.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순간이 늘었다"고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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