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동·첨단지구 등 대부분서 도로 불평등 심각해
'눈치 보고, 피하고' 보행자·자전거 이용 환경 열악
보행 사망자 크게 증가…"체감 있는 정책 보여줘야"

광주 북구 신용동에 거주하는 박미경(가명·48) 씨는 전동형 휠체어를 타고 집 밖 거리에 나섰다. 곧게 뻗은 왕복 6차선 도로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박 씨가 이동하는 공간은 겨우 차로 하나 남짓한 폭의 보행로였다. 그것마저 자전거와 함께 쓰는 겸용 도로다. 휠체어를 타고 집 밖에 나서는 순간부터 눈치가 따라붙었다. 좁은 보행로에서 다른 보행자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어느새 진이 다 빠진다. 자전거가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갈 땐 위협감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울퉁불퉁한 노면은 작은 바퀴를 흔들어댔다.
"휠체어가 아무래도 걸어 다니는 거보다는 빠르잖아요. 그렇다고 다른 보행자에게 빵빵거리며 비키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냥 뒤에서 따라가다가 틈이 생기면 슬쩍 피해서 지나가요."
'자동차 타기 편한 도시' 광주의 도로 불평등 현실이다. 자동차에 도로 대부분을 배분한 것과 달리 보행과 자전거와 같은 이동수단에게는 적은 좁은 길만 허락한 모습이 그것이다.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 구조 속에서 보행자와 자전거, 이동약자층의 안전과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도로 대부분 자동차에…버스·자전거 '미비'
지난해 12월 말을 기준으로 광주 도로 길이는 249만9천328㎞다. 면적으로는 3천470만3천834㎡이다. 도로 길이는 지구 둘레(약 4만㎞)를 62바퀴를 돌 수 있는 길이고, 서울과 부산(약 325㎞)을 7천600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도로 면적은 축구장(7천140㎡ 기준) 약 4천860개에 해당하는 크기다. 광주 면적(501㎢) 15분의 1가량(6.9%)이 도로로 덮여 있는 셈이다.
도로는 도시 내 이용자들이 통행을 위해 사용하는 길이다. 도로를 통해 도시는 강한 유기체처럼 유지될 수 있다. 도로는 자동차가 다니는 차로, 보행자가 다니는 보도, 자전거도로 등으로 구성된다. 또 때론 주차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처럼 도로는 애초부터 다양한 이동수단이 공존한다.
그러나 지금 광주의 도로는 '자동차 독점'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차로는 넓고 길게 뻗어 있는 반면 보행 공간은 좁다. 자전거도로는 가뜩이나 좁은 보행로에 겸용으로 설치됐다. 버스전용차선조차 미비하다.
8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광주 자전거도로는 669.4㎞다. 이 중 526.59㎞가 보행로 위에 자리잡은 '겸용 도로'다. 전용도로는 123.57㎞, 우선도로는 11.1㎞에 불과하다. 버스전용차선은 2025년 4월 기준으로 67.4㎞다. 보행자가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는 '보행자 우선도로'는 1913송정역시장 내 430m가 전부다.

◆편도 3차선 도로에 보행로 '겨우 3m'
도로 공간의 불평등한 배분의 실상은 어떨까. 취재팀은 최근 비교적 신시가지인 첨단2지구(신용동)를 비롯해 구도심인 동구 동명동·충장로 일대와 극심한 보행 위험을 안고 있는 전남대 상대 상권 등을 찾았다.
2010년대 조성된 첨단2지구는 광주에서 주거여건이 뛰어난 곳으로 알려졌다. 실제 취재팀이 찾은 신용동 일대는 왕복 6~8차선 도로가 널찍하게 택지지구를 가로질러 있었다. 넓은 도로에는 듬성듬성 차가 지나는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보행 환경은 열악했다. 3m에 불과한 보행로에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가 엉키는 모습도 보였다. 가뜩이나 좁은데 가로수에 버스정류장과 같은 시설물까지 있다보니 답답함마저 느껴졌다.
인근 학교에 다닌다는 김하늘(17) 군은 "걷기에도 좁고 불편한데 평소에 자전거나 전동킥보드를 타고 다닐 때는 자전거도로에서 다녀도 눈치 보여서 타고 다니기 힘들다"며 "자전거도로가 없는 곳에서 차로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여러번 운전자에게 욕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후론 잘 타지 않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차로가 이렇게 넓게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보행로나 자전거도로를 넓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동형 휠체어로 이동하는 박미경 씨 또한 "보행로가 조금만 더 넓었다면 덜 눈치보면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체감 안 되는 '대자보'
광주 구도심의 보행 환경은 더 심각하다. 차로와 인도가 명확히 구별돼 있지 않다 보니 차량들과 각종 적치물이 뒤엉켜 통행을 방해하는 게 일상적 풍경이다. 가장 인기 있는 상권인 동구 동명동이나 구시청, 충장로 인근 또한 말할 것도 없었다. 동명동은 비교적 보행환경개선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곳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동명동을 자주 찾는 하문정 씨(27)는 "사람이 보행할 수 있는 길이 너무 좁은 것 같다. 사람만 다니기에도 좁은데 차까지 들어와 버리니깐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며 "차도와 인도가 명확히 나뉘어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그게 어렵다면 차 없는 거리로 만들었으면 한다"고 의견을 냈다. 이어 하 씨는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겠지만 길가에 차들이 빼곡하게 불법주차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전남대 상대 뒷길'로 잘 알려진 북구 용봉동 일대는 보행 위협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일대가 온통 이면주차로 최소한의 보행로가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어린이들이 안심하고 걸어다닐 수 있도록 만든 보행로인 '그린로드'조차도 주차된 차들로 가득했다.
박요한(25) 씨는 "사람들이 흰색 선이거나 선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온통 갓길주차를 해 댄다"며 "그러는 와중에 본인들 가게에는 못 대게 하는 등 이기주의의 끝판왕인 모습을 보여주니 한숨만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최도영(24·여) 씨는 "갓길 불법주차가 만연한 것이 단순히 교통 위험만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이 차 사이에 숨어 있다가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며 "특히 이곳 용봉동 상대 지역은 치안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저녁이 무서워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보행자 사고 건수는 1천127건이다. 이 중 사망자 수는 21건으로, 전년보다 5건(31.2%) 증가했다. 지난해 7월 한 달 동안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로만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광주시는 대자보(대중교통·자전거·보행자) 정책을 역점적으로 추진 중이지만, 시민들의 일상에는 닿지 못하는 모습이다.
박필순 광주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은 "시민들의 이동 편의성을 높이는 건 도로를 새롭게 까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도로에 교통수단을 잘 배분하고 운영하느냐에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자전거와 보행이 편리한 정책들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희철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장은 "광주시가 대자보 선언만 하고 세부 시행계획이 없는데, 그러면 행정의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중교통이나 자전거, 보행으로 이동하는 게 자가용만큼이나 편리하다는 걸 체감 있는 정책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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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와 다르게 자전거가 일상된 세종시, 비결은 이것에?
세종시 이응다리 앞에 자전거와 개인형이동장치(PM) 주차장이 함께 있는 모습. 자전거와 PM 이용자들이 많은 세종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차는 없고 주로 자전거 타고 다녀요. 직장 때문에 세종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자전거 타기 편한 도시라고 느낍니다."정아랑(33·가명) 씨는 세종시로 이사 온 뒤부터 자전거 예찬론자가 됐다. 차가 없이도 세종시 공영자전거인 '어울링' 하나면 세종시 어디든 쉽고 편리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퇴근할 때도 어울링을 타고, 쉬는 날에도 금강수변공원 등에서 자전거로 여가를 즐긴다. 정 씨는 "서울과 비교했을 때 자전거도로가 많다는 점이 자전거를 주로 이용하는 이유"라면서 "공영자전거인 경우에도 가까운 자전거 주차장에서 빌리고 반납할 수 있어서 이용이 편리하다"고 말했다.세종시 도심에서는 자녀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가족,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는 청소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층의 자전거 이용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전거가 이 도시에서는 일부의 여가가 아닌, 일상적인 이동수단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실제 세종시의 자전거 이동수단 분담률은 전국 평균보다 두 배가 높다. 세종시가 '자전거 천국'이 된 비결은 뭘까?세종시 보람동 세종시청사 인근 도로에서 청소년들이 '자전거 무리'를 이루고 있다. 자전거도로가 잘 갖춰진 덕분에 보행자와 충돌이 최소화되는 모습이다.◆세종시민들 "자전거 타기에 도로가 잘 돼 있다"세종시는 수도권 과밀을 완화하고 중앙행정 기능을 분산하기 위해 설계된 계획도시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은 도시 구상 단계에서부터 친환경도시를 표방하며 계획도시의 이점을 활용해 체계적으로 자전거도로망을 구축해왔다. 주거지와 공공청사, 상업·문화시설을 생활권으로 묶고 자전거도로망을 연결했다.무등일보 취재진은 최근 세종시 도심 곳곳을 방문해 세종시의 자전거도로와 이용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우선 세종시 보람동 시청사 일대에서는 자전거를 타고다니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자전거가 줄지어 행렬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시민들은 "세종시는 차 없이도 자전거만으로도 이동하기 편하다"고 입을 모았다.세종시 나성동에 거주하는 서모(55) 씨는 "출퇴근을 자전거로 이용하는데, 세종시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환경이 다른 도시와 비교해 봤을 때 너무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아직 자녀가 어려서 자전거를 타지는 못하는데, 조금 더 크면 함께 타고 다니고 싶다"며 "세종시에서 자전거도로가 잘 돼 있어 아이들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실제 이날 취재진은 자전거를 탄 청소년 무리를 빈번하게 목격했다. 강민준(14) 군은 "시간날 때마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주말에는 조치원이나 대전까지도 다녀온다"며 "시골(외곽지역)로 가면 도로가 파여 있는 곳이 많아 위험하지만, 대부분 도로가 잘 돼 있어서 이용하기 좋다"고 했다.이날 만난 세종시민들은 한결같이 자전거도로가 잘 돼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실제 세종시 일대 도로에는 자전거도로가 갖춰져 있었다. 보행자 도로와 명확히 분리돼 포장된 덕분에 시각적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비록 자전거도로가 보행로와 '겸용'으로 쓰이는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보행로가 넓은 덕분에 자전거와 보행자의 충돌이 최소화되는 모습이었다. 대부분 횡단보도에서도 자전거도로가 설치돼 있다는 점이나 자전거 전용 신호가 있다는 점도 다른 도시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세종시 랜드마크로 떠오른 '이응다리' 입구. 상층은 보행자, 하층은 자전거가 다닐 수 있게끔 분리를 해 놓은 덕분에 자전거와 보행자 간 충돌을 줄이고 쉽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정책에 녹아든 '자전거'…활성화 '지름길'최근 세종시 랜드마크로 떠오른 금강 '이응다리'는 자전거도로에 진심인 세종시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금강 위에 원형으로 세워진 이응다리는 복층으로 지어져 상부층은 보행전용으로, 하부층은 자전거 전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맞춰 자전거를 탄 이들은 하부층에서 자전거를 타며 주말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이응다리 앞 금강수변공원 자전거 주차장에는 공공자전거 어울링과 개인자전거, 개인용이동장치(PM)가 빼곡히 놓여있었다. 작은 어린이용 자전거와 킥보드, 성인용 자전거 등이 뒤섞여 다양한 연령층이 자전거와 PM을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이곳에서 만난 30대 김민지 씨는 "아이가 씽씽이(킥보드) 타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산책로와 자전거도로가 분리되지 않았다면 사람들 사이를 피해가야 하니 더욱 신경 썼을 텐데 그런 불편이 덜하다"며 "조금 더 크면 자전거 타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한다. 자전거도로가 대부분 잘 조성돼 있어 안전하게 탈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이 같은 정책의 결과는 통행수단별 분담률에 잘 나타난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기준 자전거 이용 현황'에 따르면 통행수단별 분담률 1위 지역은 세종(2.6%)이었고, 통근·통학 이용 교통수단 분담률 부분에서도 세종(2.4%)이 가장 높았다.지난해 기준 세종시 자전거도로는 255.05km다. 종류별로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180.26km ▲자전거 전용도로 50.39km ▲자전거 우선도로 21.8km ▲자전거 전용차로 2.6km다. 행복청은 2030년까지 총 478km의 자전거도로를 계획했다. 도시 내 어디든 5분가량이면 금강과 방축천, 제천 등 수변공간의 자전거도로에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세종시는 강변을 따라 자전거도로가 잘 구축돼 있어 출퇴근뿐만 아니라, 레저용으로도 많이 이용된다.◆편리한 공영자전거·높은 시민 교육 '한 몫'세종시의 '자전거 천국'은 단지 자전거도로 하나만 잘 돼 있다는 점에 기인하지 않는다. 세종시는 자전거 이용에 관한 시민 교육과 공영자전거와 대중교통 간 연계 등 '소프트웨어 정책'을 꾸준히 추진 중이다.우선 세종시는 안전한 자전거 이용문화 정착을 위해 10여년 전부터 '자전거 무료 안전교육'을 추진해 왔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PM(개인형 이동장치) 이용이 급증함에 따라 '자전거·PM 안전교육'을 함께 해오고 있다.세종시 관계자는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과 시 조례에 따라 자전거 안전교육을 지속하고 있다. 시민들도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참석률도 괜찮다"며 "PM에 대한 민원이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 위험성을 시에서도 인식하고 있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자전거와 함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업체 등을 강력하게 제재할 근거가 없지만, 현행법 아래에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또한 세종시의 '이응패스' 도입은 공영자전거 활성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응패스'는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대중교통 월 정액권이다. 이응패스 이용자는 공영자전거 '어울링'를 무료 이용할 수 있도록 연계했다. 그 결과 이응패스 도입 한달만에 '어울링' 주행거리가 같은 기간 54만623km에서 96만7천801km로 80%가량 급증했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강승희기자 wlog@mdilbo.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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