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꽃, 도시와 정원에 담긴 위로와 희망 메시지

입력 2026.08.13. 16:04 김만선 기자
[아틀리에_정병하 서양화가 ]
학생시절 공모전 수상…화가의 길로
35년 교직 정년 후 개인전 활동 분주
정돈된 붓·물감…작가 성품 엿보여
친근한 소재 대상 개성 표출에 초점
명도·채도 변주로 다양한 감성 전달
생동감 강조된 녹색 정원 연작 ‘눈길’
“작품 세계 정립·승화에 주력할 것”
정병하 작가가 작업실에서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소년에게 바다는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점점이 발 담근 섬은 소년에게 어디든 원하는 세상을 갈 수 있도록 꿈의 날개를 달아주었다.

바다는 거센 바람을 등에 업은 채 당장이라도 온 세상을 삼킬 듯 달려들었다가 커다란 바위에 하얀 포말을 한 움큼 토해내고는 맥없이 물러서곤 했다. 그때마다 소년은 알 수 없는 뜨거운 덩어리들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곤 했다.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커다란 한 폭의 풍경화였다. 그는 자신이 본 세상을 도화지에 옮기고 싶었다. 파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한 바다, 험한 바위와 숲이 어우러진 산, 들녘에서 수줍은 듯 피어난 형형색색 꽃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두세두세 적당한 소음을 지닌 마을과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거친 손도 예외가 아니었다.

Red City, 162.2x130.6㎝, Acrylic on canvas. 2026.

소년은 하얀 도화지에 빨간색, 파란색 크레파스로 자신만의 세상을 그려나갔다. 소년의 세상에는 그 만의 바다와 산과 꽃,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것이다. 그는 삼학도 어민이 배에서 고기를 잡는 모습을 포착한 그림으로 전국 사생실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소년이 길어올린 화가의 꿈

정병하 서양화가의 작업실은 광주특별시 목포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항구는 출구이자 입구. ‘세상 밖 세상’을 향해 나가는 곳이기도 하면서 긴 여정을 마친 이들이 육지로 들어오는 입구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업실은 세련미나 화려함이 강조되는 현대의 도시건축의 틈바구니에서 무릎을 낮춘 채 굳이 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풍경이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휴대전화나 컴퓨터의 디지털보다는 공중전화나 손편지의 아날로그 감성이 어울릴 것 같아 서둘러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기도 했다. 문을 열자 단정하고 깔끔한 차림새를 갖춘 작가가 앞치마를 두른 채 수줍게 웃고 있었다. 오랫동안의 교직생활이 몸에 밴 듯 반듯하게 정돈된 물감들과 크고 작은 붓 등의 화구들이 작가의 성품을 엿보게 했다.

작업실에서는 형형색색의 향기가 먼저 느껴졌다. 그것이 작가가 완성한 추상화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작업실 한편에 자리잡은 도시풍경에서는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고 빨갛고 파란 산의 풍경에서는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에게 안정과 쉼의 이야기를 전하는 듯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즐거움이나 자기 만족감이 가장 큽니다. 어렸을 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돼야겠다는 꿈을 갖기도 했었죠. 물론 지금도 그 꿈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열심히 하는 자세가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주변에서 제 작품을 보고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된다는 평가를 해줄 때 더욱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Green Mountain, 53.0x33.4㎝, Acrylic on canvas.

“내면의 풍경을 그리자” 구상서 추상으로

작가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미술반 활동을 하며 초등학생 시절 발견한 그림 재능을 이어갔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공모전에서 크고 작은 상을 받으면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가는 결국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목포대 미술학과에 진학했다.

작가에게 대학교 1학년이던 1980년은 새로운 작품 세계에 눈돌리는 계기가 됐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휴교령이 내려진 당시, 작가는 목포를 떠나 담양의 누님 집에 어머니와 함께 머물고 있었다. 지인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거충거충 알 수는 있었지만 사람의 목숨까지 잃는 무서운 상황이라는 것은 짐작조차 못하고 있던 때였다.

군인들의 끔찍한 행동을 목도한 사람은 어머니였다. 먼저 목포로 내려가신다며 광주 버스터미널로 가셨는데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계엄군에게 무차별적으로 두들겨 맞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신 것이다. 이를 본 어머니는 아들이 행여 계엄군의 눈에 띄어 몸이라도 상할까 걱정하셨고 누님도 휴교령이 내렸으니 굳이 서둘러 가지 말라고 붙잡아 한동안 담양에서 머물게 됐다.

“저는 적극적으로 민중미술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시민을 향한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성을 알리고 싶었고 광주와 전남 사람으로서 겪는 고통을 그림으로나마 형상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어머니가 직접 겪으신 일도 있었지만 무의식 속에서 불의에 눈감으면 안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30~40대까지 구상 작업에 몰두하던 작가는 언제부터인가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 구상만으로는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다양한 세계와 주제를 담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산과 꽃, 도시 풍경과 정원을 소재로 자신만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소재 자체가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작가만의 작업 세계를 통해 개성을 표출하는 데 초점을 두고자 했다. 색의 명도와 채도, 소재의 크기와 변화만으로도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감성과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Blue City, 53.0x33.4㎝, Acrylic on canvas, 2019.

집과 꽃 연작은 한국의 오방색을 바탕으로 한 점이 특징이다.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이 맞물린 화면 안에서 붉은 바탕에 하얗게 핀 꽃, 검은 바탕에 하얗고 파란 꽃들이 동화적이고 서정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뾰족한 지붕이 잇닿은 집들이 늘어선 풍경을 담은 ‘도시의 전경’ 역시 회색 도시보다는 꿈과 희망이 담긴 ‘공동체 마을’을 연상시켜 따뜻함을 전한다.

면 분할을 통해 자리를 잡은 형형색색의 꽃들은 각각이 지닌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커다란 하모니를 이뤄 울림을 선사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색다르게 느껴지는 소재는 잔디다. 어느 날 평원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 녹색의 잔디와 그 위에 피어있는 들꽃을 보며 반하고 말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녹색은 사람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색이어서 누구든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에 그때부터 녹색의 잔디를 소재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날카로운 도구를 활용한 스크래치 기법을 통해 마치 잔디가 살아있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주고 추상적인 기법을 더해 작가만의 ‘녹색 잔디’를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또 산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는 직선과 사선을 활용한 기하학적인 형태와 청록, 파랑, 남색, 빨강 등의 다양한 색을 통해 울림을 전하고 있다. 따뜻함과 차가움, 슬픔과 기쁨 등의 내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점은 ‘빨간 산’이 유독 많다는 것이다. 작가는 ‘빨강’이 갖고 있는 중의적인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빨간 산은 ‘가을의 산’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색깔론’과 관련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기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빨강이 이념과 지역성에 맞물려 기피의 대상이 되거나 경원시되는 게 싫었거든요. 빨강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명도와 채도 등에 따라 너무 다양해서 곱고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죠.”

꽃들의 왈츠, 91.0x60.6㎝, Acrylic on canvas.

따뜻한 색으로 온 세상 물들일 때까지

35년간 미술교사로 재직했던 작가는 지난해 정년 후 잇따라 개인전을 가졌다.

지난해 목포문화예술회관과 전남도립도서관 남도화랑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올해에는 목포 성옥기념관 갤러리, 서울 인사아트센터 G&J갤러리에서 잇따라 작품을 선보였다. 그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단체전 출품 외에는 개인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움이 컸던 만큼 그동안 쏟아내지 못한 열정들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하루 12시간 이상 작업에 매진하기를 반복하다 신체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무게가 4~5㎏ 이상 빠지면서 주변에서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무엇엔가 쫓기듯 작업을 하기보다 스스로 즐기면서 하기로 마음먹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작가의 작품을 본 이들 중 누군가는 몬드리안의 면 분할을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칸딘스키의 점·선·면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작가만의 개성이 있고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는 평가는 작가가 더욱 자신을 담금질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작가는 “주제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다른 작품하고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인지 이제는 많은 분이 제 작품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뿐이다”면서 “앞으로는 제 나름의 작품세계를 더욱 정립해 나가고 질적으로도 더 승화시켜 나가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소년은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바다에서 길어올린 그물에는 단순한 풍경화 한 점이 아니라 고통과 상실감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이 걸려있다. 휘지 않고 힘차게 뻗어내린 직선의 올곧음과 녹색, 빨강의 색감은 소년이 도화지를 벗어나 온 세상을 물들이고 싶어하는 편안함과 따뜻함이 담겨있다.

소년은 바다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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