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의병 열전 8. 송대립

이미 살핀 바 있는 진무성, 신여량을 비롯해 오늘 살필 송대립·송희립 형제 등 이순신 막하에 속한 인물 상당수가 고흥 출신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고흥은, 전라좌수영의 5관 5포 가운데 1관 4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관’은 고을, ‘포’는 수군 기지를 뜻하는데 5관은 순천도호부, 광양현, 낙안군, 보성군, 흥양현 등 다섯 곳이고, 5포는 방답진, 사도진, 여도진, 녹도진, 발포진 등 다섯 곳이다. 5포 가운데 방답진은 지금 여수돌산 군내리에 해당하고 나머지 진은 모두 고흥 지역에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고흥인 흥양현을 포함해 전라좌수영을 구성하는 핵심 수군 기지 대부분이 고흥 지역에 있음을 알려준다.
현재 고흥읍에서 보성 벌교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높이 313m의 삼각형 모양 산이 있다. 산의 꼭대기는 바위로 이루어졌는데 꼭대기가 뾰족하다고 하여 ‘첨산’이라고 불렀다. 1598년 4월 이곳에서 고흥에 상륙한 일본군의 내륙 진격을 막고자 하는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를 이끈 이가 송대립 장군이다. 그의 아우, 송희립·송정립도 모두 전쟁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오늘은 송대립을 다루려 한다.
송대립은 (1550-1597)은 1594년 무과에 합격해 훈련부장이 됐다. 그보다 앞서 무과에 합격해 이순신의 막하에서 활동하던 아우와 함께 여러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그는 이 공을 인정받아 무과에 합격했다. 1597년 2월 일본군의 이간책으로 수군통제사 이순신이 관직을 박탈당하고 그 자리에 원균이 들어오자 이순신 휘하의 군관들 상당수가 수영을 떠나 귀향했다. 송대립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다가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의 수군 재건 사업을 도왔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이순신과 함께 전투를 치렀던 전라좌수영 출신의 군관들, 즉 흥양 출신 송대립, 보성 출신 최대성, 전방삭 등은 명량해전에 참전하지 않고 향리 보전을 위한 해상 의병 활동에 치중했다. 이들이 향토 보전에 앞장섰던 것은 고흥, 보성 지역이 일본 수군의 보급로이자 내륙으로 향하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길목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송대립, 전방삭, 최대성 등이 서로 연합작전을 통해 고흥, 보성 지역으로 침투하는 일본군 공격을 막는데 사활을 걸었던 이유다. 이들이 연합작전을 전개한 대표적인 전투가 보성 예진 전투이다.
보성 예진은 현재의 보성군 득량면 예당리 일대인데, 1598년 3월 적선 10척이 예진을 공격해오자 송대립, 전방삭, 최대성 등이 연합작전을 전개해 적을 격퇴했다. 4월 일본군이 고흥 망저포(현재 고흥 동강 죽암)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자 진을 망저포로 옮겨 첨산 밑에 목책을 설치하고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이 전투가 바로 첨산전투다. 이 전투에는 최대성, 최대성의 아우 최대민, 종제 대영, 작은 아들 후립도 참전했다. 고흥, 보성 지역 해상 의병이 연합작전을 전개한 것이다. 첨산 전투를 이끈 송대립과 최대성의 종제 대영이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리고 송대립의 시신을 최대성이 수습했다.
송대립의 아우 송희립이 있다. 그는 형보다 훨씬 이른 1583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1년 이순신 장군의 직속 군관이 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나대용, 정걸과 함께 거북선 건조 감독과 건조 교육을 맡고 있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나자 형인 송대립과 함께 이순신의 막하에서 군관으로 활동한 가장 핵심 참모였다.
전쟁 발발 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함대가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할 것인가 여부를 둘러싸고 논의가 있었다. 대다수 부장(副將)들이 반대하였을 때 녹도만호 정운과 함께 송희립은 “대적(大敵)이 경계를 압박해오고, 위력이 점차 강해지는데 좌수영 관할만 고수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나아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이 신하된 자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순신이 크게 기뻐하며 “나라가 큰 위기를 맞이하였는데 어찌 위치가 따로 있겠는가! 제장의 뜻이 장하니 나아가 싸우자”고 독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옥포해전, 당포해전 등 이순신의 조선 수군의 승리에는 항상 송희립이 곁에 있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였다. 명량해전에서 참패를 당하여 전의를 상실한 일본군은, 마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무조건 철수하려 하면서 명의 장수 진린에게 퇴로를 열어줄 것을 제안하였다. 이때 송희립은 이순신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고, 일본군의 해상통과 보급로 차단을 건의해 관철시켰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명 연합함대는 일본 수군을 관음포에 가둬 놓고 포화를 집중시켜 궤멸시켰다. 일본군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하는가 하면, 일부는 회항하여 퇴로를 찾고자 죽기를 각오하고 조선 수군을 공격해왔다. 퇴로를 차단하고 일본 수군을 완전히 격멸하고자 이순신은 독전했다. 이순신이 지휘한 기함(旗艦)을 발견한 일본 수군은 기함을 향해 집중적으로 포화를 쏟아부었다. 이순신이 비록 판옥선의 장대 속에서 지휘했지만, 이순신의 위치를 가늠한 일본군 저격수들의 집중 사격을 받았다. 이때 군관 송희립이 쓰러졌다. 그러나 다행히 적탄이 이마를 스쳐 찰과상만 입아 간단한 치료를 받고 다시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송희립이 쓰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순신이 총탄을 피하려고 잠깐 굽혔던 몸을 일으키는 순간 총탄을 받아 전사했다. 이순신이 쓰러지자 송희립은 이순신의 갑옷을 벗겨 자신이 착용한 후 북을 치며 독전했다. 송희립이 이순신과 운명을 같이했음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조선 수군은 이 공방전에서 이순신을 비롯하여 10여 명의 장수가 전사했다.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는가를 보여준다. 송희립은 이후 전라좌수사에 임명됐다.
막내 송정립은 두 형이 모두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자 홀로 모친을 봉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데 집에만 있을 수 없다고 하며 친족인 동복현감에게 모친을 맡기고 전투에 참전했다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한편 송대립의 아들 송심은 1614년(광해군 6)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노모를 봉양한다는 구실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다 인조반정 후 관직에 나아갔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홍원 현감으로 재임 중이던 송심은 안변 전투에서 청군을 막다 전사했다. 송대립은 병조참의, 송심은 좌승지에 추증됐다. 송대립, 송심 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04년(숙종 30) 나라에서 정려(‘고흥 송씨 쌍충 정려’)를 세웠다. 정려는 2022년 보물로 지정됐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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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피해 ACC로···평일에도 이어진 ‘문화피서’
14일 오후 시민들이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6관에서 진행 중인 ‘자밀 프라이즈:무빙 이미지’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14일 오후 시민들이 ACC 문화정보원을 이용하고 있다.
“방학이라 아이들이랑 어디라도 가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덥잖아요. ACC는 시원하고 볼거리도 많아서 오늘은 여기로 피서 왔어요.”폭염이 이어진 14일 오후 찾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평일 오후 시간대였지만 전당 곳곳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야외 활동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무더위를 피해 실내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이른바 ‘문화피서’ 행렬이었다. 전당 A·B 주차장은 만차 안내가 표시될 정도로 차량이 몰렸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가족 단위 관람객부터 책을 읽거나 전시를 둘러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14일 오후 시민들이 ACC 문화정보원을 이용하고 있다.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은 어린이문화원으로 향했고, 전시장 안내도를 들여다보던 관람객들은 복합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비 한쪽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시민들도 보였다. 바깥의 뜨거운 햇볕과는 달리 시원한 실내에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문화정보원은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시민들로 활기를 띠었다. 도서관에서는 책을 펼쳐 공부하는 학생들과 자료를 찾는 이용객들이 자리를 잡았고, 라운지에서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책을 읽고, 다른 곳에서는 잠시 대화를 나누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더위를 피하는 모습이었다.14일 오후 시민들이 ACC 문화상품점 ‘들락’에서 굿즈를 살펴보고 있다.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분위기는 더욱 분주했다.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6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교류특별전 ‘자밀 프라이즈: 무빙 이미지’에는 영상과 설치, 사운드, VR 등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는 시민들이 이어졌다. 이슬람 문화와 역사, 사회에서 영감을 받은 동시대 예술을 선보이는 전시인 만큼 관람객들은 작품 앞에 멈춰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거나 전시장 곳곳을 천천히 이동하며 작품을 살폈다.복합전시 3·4관에서 열리는 ‘코스모 아시아 피플’에도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코스모·아시아·피플’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위기의 지구와 인간, 아시아의 상상력을 바라보는 전시다.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무는 관람객들의 모습에서는 더위를 피하는 것과 함께 전시를 통해 새로운 생각거리를 찾는 분위기도 눈에 띄었다.복합전시 2관의 ‘아시아의 장치들’에서는 영상과 비디오아트를 통해 아시아의 역사와 기억, 공동체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에 시선을 고정한 관람객부터 전시장 구조물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관람객까지 다양한 모습이 잇따랐다.어린이문화원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특히 붐볐다.14일 오후 어린이 관객들이 ACC 어린이문화원 다목적홀에서 진행 중인 특별전 ‘스포츠 히어로즈:나도 국가대표’에 참여해 펜싱 체험을 하고 있다.17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 ‘스포츠 히어로즈: 나도 국가대표!’가 열리는 다목적홀에서는 아이들의 움직임이 특히 분주했다. 리듬체조와 펜싱, 스내그골프, 플로어컬링 등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스포츠를 직접 체험하며 아이들은 연신 몸을 움직였다.펜싱 체험에 나선 한 어린이는 “엄마, 나 펜싱에 재능 있는 것 같아”라며 보호자를 향해 손짓하며 웃는 모습도 보였다. 보호자들은 아이가 스포츠 체험에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사진을 촬영했다. 폭염 때문에 밖에서 뛰어놀기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실내 체험공간이 또 하나의 놀이터가 된 모습이었다.14일 오후 어린이 관객들이 ACC 어린이문화원 어린이체험관에서 진행 중인 상설전시 ‘우리 모두의 집, 아시아’를 관람하고 있다.어린이체험관의 상설전시 ‘우리 모두의 집, 아시아’에서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바다와 갯벌, 습지와 호수, 숲과 사막 등 아시아의 자연환경을 주제로 한 공간을 따라 아이들이 직접 움직이고 체험하며 자연과 생태의 의미를 배웠다.이날 딸과 함께 ACC를 찾은 시민 정하영(38·여)씨는 “요즘은 너무 더워서 아이와 야외에서 오래 놀기가 쉽지 않은데, ACC는 시원한 공간에서 전시도 보고 체험도 할 수 있어 좋다”며 “방학 동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글·사진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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