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바우 시장의 ‘국밥에 담긴 그림’전.
말바우 장! 그 가장 특별한 공간에서의 전시.
말바우 시장은 인접하여 담양과 곡성 화순 등의 주민들이 가용돈을 마련하기 위한 통로로 쓰인다. 말바우는 시골의 장이 도심의 가정으로 배달되는 정겨운 시장이다.
그 시장 가장 중심 공간은 바로 국밥집이다.
국밥집은 장에 온 사람들의 카페이자 주점이고 레스토랑의 역할을 하는 곳이며 소문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난 사돈의 손을 잡고 친구의 손을 잡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언제나 뜨끈하게 준비된 한국식 인스턴트 국밥에 서로의 사연을 묻는다.
그 국밥집에 작가들은 주목했다.
그들이 국밥에 그려낸 그림은 다양하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처럼 이 빠진 막걸리 잔이 되기도 하고 정겨운 손님을 받는 주모의 손길이기도 하다. 때로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곱창의 비릿한 냄새가 모두 그림 속에 담겨있다. (중략)
작품들은 국밥집 입구와 메뉴판과 나란히 걸려지기도 하고 선술집에 매달린 달력과 함께 자리하기도 한다. 오가는 이들의 손끝과 입담을 고스란히 그 자리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작가들이 굳이 고상한 전시장을 찾지 않고 국밥집에 소중한 그림을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가는 장터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주인장과 손님은 관객이 되어 일상의 평론가가 된다. 정직한 관객이라 했던가. 고상한 말과 상관없이 툭 내뱉는 말 한마디가 평론이 되고 진정한 작품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음을 이 전시에서는 볼 수 있다. (중략)

긴 작업으로 이뤄졌던 작품에 국밥 국물이 튈 수도 있다. 이러한 것까지도 관객과 작가는 과정예술이자 생활예술로 받아들인다.’
당시 전고필 광주북구문화의집 관장의 전시 발문이다.
시장 인근에 위치한 북구문화의집에서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는데 전고필 정민룡 투톱이다. 전시회 비용과 서문에서 팸플릿 그리고 레이아웃까지 덕분에 전시회 형식을 갖출 수 있었는데 큰 도움인 것이다. 광주는 5·18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상흔이 깊었던 시기 문화예술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들은 문화해설사 문화 기획으로 1세대 전문가로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잠깐 여기 삼아 한 일에 그쳤을 것을 군불을 지핀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남도문화판에서 현역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잣거리 시장통에 그림을 걸었으니 국밥 국물이 튀긴들 김칫국물이 튀긴들 무슨 소용인가, 그림인 줄 알면 되지. 구경꾼들이 꽤 드는데 그림만 훔쳐보고 가는 이는 없다.
국밥에 탁배기 그게 입장료인 셈. 분위기는 영락없는 잔칫집인데 손님상이라고 따로 상차림이 필요 없는 것이다. 돼지 부산물로 끓인 음식인 만큼 누린내가 배 들어도 바람벽에는 동백 매화 그림 꽃이 피었다. 붉디붉은 동백은 겨울이 아쉬운 듯 흰 눈가루를 잔뜩 뒤집어쓰고 구석진 곳 노신사는 혼술을 하고 있는데, 단골손님인가 보다. 주모가 다가가더니 “오메 그래도 술은 여자가 따라야 맛나제!” “그래요 잔은 채워야 맛이죠!”

나도 타지에 가면 국밥집을 찾는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가까운 시장 국밥집을 찾게 되는데 국밥에 탁배기로 허기를 채우고 현지 적응에 들어가는데 지리 정보 말씨 등 국밥집이라는 공통점이 여러 방면 통하게 돼있다.
참여 작가는 당시에도 주목받는 정예 작가들이었다. 고재근, 권승찬, 문학렬, 박문종, 박수만, 윤남웅, 신현진, 정희상, 주경미, 김광철, 초이.
레퍼토리가 다양해서 회화 설치 사진 퍼포먼스까지 작품들은 시장과 관련지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퍼포먼스를 한 김광철 작가는 시장에서 인기 만점이었는데 북새통인 시장 바닥에서 퍼포먼스인들 온전하게 보일까 싶어도 진행 중에 담배를 입에 꼬나물면 관객들이 서로 라이터를 꺼내들고 불을 붙이겠다고 난리였으니 관객과의 교감이 자연스레 이뤄진 것이다.
광주에도 선술집이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있다.
남은 집 대부분은 시장통 국밥집이다.
골목을 한 번 접고, 두 번 접고, 세 번….
요즘 그런 집 찾기가 쉽지 않지만 남광주시장통에 한 골목, 대인시장에 한 골목, 양동시장에 한 골목, 그리고 말바우 장….

나는 이 장에서 한동안 드로잉 작업을 했다.
근처 아파트에서 살 때인데 종이와 필묵을 챙겨들고 아내는 애기를 포대기해서 업고 장보기를 한 것이다. 장을 보는 동안 난 노점을 편 할매마냥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는 인물들의 몸동작을 빠른 손놀림으로 그리던 것이다. 이때부터 ‘노지작업’이 본격화되는데 남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것도 극복의 대상인 것이다. 학습효과가 있었다. 움직이는 물체의 잔영을 붙드는 데에는 이때부터 오픈된 공간에서의 작업이 이어지는데 대인 야시장 프로젝트에서 행인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라 할지 아이들 프로그램 땅과예술(자연미술)에서도 대부분 야외에서 이뤄지는데 하다 보니 퍼포먼스 수준이다.
말바우장 전은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담양장에서 시작해서 말바우장 이후 중흥동 프로젝트 대인시장으로 이어졌으니 연결고리가 확실해진 것이다. 다음에는 중흥동,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산동네 점집 많은 언덕바지 집들 ‘와우주막’에 얽힌 얘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정리=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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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체험] 광주 학생 운동 함성 속으로
1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광주 4·19혁명기념관에서 신안 압해중학교 학생 기자단이 김영용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정문정 학생 기자
신안 지역 학생들이 광주4·19혁명기념관을 찾아 광주 4·19혁명의 의미와 민주주의 정신을 배웠다.신안교육지원청과 무등일보가 공동 주최한 일일 기자체험에 나선 신안 압해중학교 학생기자단이 지난 1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계림동 광주4·19혁명기념관을 찾아 4·19혁명의 발자취와 광주 민주주의의 역사를 직접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광주4·19혁명기념관은 광주 지역 4·19혁명의 자유·민주·정의 이념을 기리고 이를 후세에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2006년 건립된 공간이다.기념관에는 1960년 3·15 부정선거와 이에 항거한 광주 시민과 학생들의 저항, 그리고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다양한 전시물과 기록으로 정리돼 있다.이날 학생기자단은 김영용 호남4.19혁명단체총연합회장의 해설을 들으며 1층 전시 공간을 둘러봤다. 학생들은 전국 최초로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곡(哭) 민주주의 장송 데모’와 광주 시민·학생들의 항거, 마산과 서울로 이어진 민주화 운동의 흐름을 사진과 기록물을 통해 확인했다.특히 학생기자단은 영정 봉안실에 모셔진 광주·전남 지역 4·19 희생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 영정 봉안실에는 호남 지역 4·19 영령들이 모셔져 있으며, 이 가운데 8명은 4·19혁명 당시 광주 지역에서 희생된 이들이다. 학생 기자단은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선배 세대의 희생과 용기를 되새기며 전시물을 유심히 살펴봤다.관람을 마친 학생기자단은 이날 기념관을 소개한 김 회장과 광주 4·19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김 회장은 광주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배경과 당시 시위 현장의 분위기, 광주 4·19가 갖는 역사적 의미 등을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특히 광주가 전국 최초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음에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김 회장은 “학생들이 4·19혁명의 구체적인 사실과 역사를 잊지 않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이어가는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진솔 학생기자는 “이번 기자체험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용기와 노력을 알게 됐다”며 “특히 광주가 전국 최초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지역 가운데 하나였고 광주 학생들과 시민들의 외침이 4·19혁명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강은혁·이진솔·임혜찬·정문정 기자정리=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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