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흐르는 강’에서 길어올린 연대의 가치

입력 2026.06.04. 09:39 김만선 기자
[서현호 개인전 오는 17~29일 서울 G&J 갤러리]
인간과 몸짓에 대한 지속적 탐구
얼굴 형상 통해 사람 본성 시각화
자투리 조각도 생명…작품으로
근거없는 혐오·폭력 일상화 시대
우리 삶 본질·건강한 공동체 강조
‘꽃이 흐르는 강’. 아이스핑크 조각 위에 채색, 가변설치(300㎝×1300㎝), 2025.

‘空(공)으로 도달한 사람만이/텅 빈 몸 그대로/소리꾼이 된다는 걸//드디어 그 소리/고통과 절망을 넘어/사랑의 노래가 된다는 걸’(서현호 ‘매미’)

서현호 작가가 주목하는 대상은 ‘인간’이다. 그는 인간에 대한 시선을 놓지 않고 ‘몸짓’이 갖는 원형질의 감각을 직감적으로 표현해왔다. 작가가 형상화한 인물들은 시대의 균열을 통과하고 그 흔적을 몸에 각인시킨 존재들이다. 그는 자투리 캔버스 천 조각은 물론 농사에 쓰이고 버려진 스티로폼과 지관 등을 소재로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매미 소리가 공명하듯 원초적인 몸짓으로 드러냈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작가의 작품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들어 인간에 대한 오랜 시선과 탐구가 더욱 응축돼 드러난 점은 눈에 띄는 변화다.

‘존재의 숲’. 조각 위에 채색, 가변설치(각70×30×30㎝ 45점), 2026.

작가는 사람을 주제로 하면서도 ‘꽃’과 ‘강’이라는 상징을 활용하고 있다. 제각각 다른 모양과 향기를 지닌 꽃들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흐름이 강으로 형상화돼 있다. 작품은 인간 존재의 존엄과 공동체적 연대를 사유하게 한다. ‘나’라는 개별 존재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연대’의 풍경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작품 속 다양하게 표현된 얼굴 형상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유일한 본성을 시각화한 모습들로 읽힌다. 작가는 이러한 유일성과 생명의 고귀함을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 가진 개성을 인정하는 길이 곧 진정한 공존과 연대의 세계로 안내하는 초석이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근거 없는 혐오와 폭력이 일상화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대가 사라지는 ‘상실의 시대’에 작가의 작품이 갖는 힘이기도 하다.

‘춤추는 모두는 날개를 가진다’. 아이스핑크 부조 위에 채색(180㎝×90㎝), 2026.

작가의 근작 중 부조 연작 ‘꽃이 흐르는 강’은 작가의 지난한 노동 끝에 탄생한 작품이다. 계란판을 활용해 종이죽을 개어 굳히고 스티로폼으로 구조를 보완하며 다시 칼로 깎아낸 뒤 채색과 건조를 반복해 완성했다. 여기에 단 하나도 동일한 형상은 없다. 삐쭉하고 뭉툭한 파편들이 개성있는 인물로 탈바꿈하고 개별과 집단이 빚어내는 조화로움은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형태 속에서 희로애락과 해학을 건져낸 우리의 전통 탈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특히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자투리 조각들마저 생명(몸짓)을 불어넣으며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그는 이처럼 수고로운 작업을 통해 ‘따로 그리고 같이’ 살아가는 인간 삶의 본질과 이들이 이루는 아름다운 연대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완성하고 있다. 한 송이 꽃들이 모여 장엄한 꽃길을 만들 듯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나의 물결로 이어지는 건강한 공동체의 서사를 보여준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아이스핑크 부조 위에 채색(180㎝ × 450㎝), 2025.

오정은 미술평론가는 “각각의 화면 위에 펼쳐진 춤추는 몸과 꽃, 수많은 새들과 사람들은 저들의 고유한 생명력을 발현하면서도 ‘일인칭’으로 이어진다”면서 “서현호가 건네는 인간존중의 철학과 예술은 비로소 귀환(歸還)에 다다른 몸짓으로, 지금 여기에 절실한 울림으로 당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현호 개인전은 ‘꽃이 흐르는 강’을 주제로 오는 1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3층 G&J 갤러리서 열린다. 광주시립미술관의 작가지원사업으로 마련된 전시다.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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