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1세대 강요배 초대
‘제주 4·3 작가’로 불리는 등
시대 마주하고 화폭에 풀어내
현재 풍경·역사, 순간이 아닌
시간 쌓여가는 과정으로 보고
상처 속 회복하는 생명력 전달
광주 5월 담아낸 신작 3점도


‘못된 기집애. 네 나이 이미 다섯인데 어찌 바보같이 울기나 잘하느냐. (중략) 너의 애비 지지리 못나 복된 것이라곤 지닌 것도 지닐 것도 없으니, 텅 빈 가슴, 회한의 독기만 서려 내 네게 줄 것이라곤 욕 뿐. 볼 때마다 욕 뿐. (중략) 너는 또 꿈을 꾸지 마라. 왕자님 공주님이 세상에 어디 있니, 바보 같은 녀석. (중략) 울고 싶거든 속으로 울어라. 속으로 울어울어 한으로 맺힐 때까지. 한 서린 심장에 뛰는 피 조그만 네 육신을 돌고 돌아 어엿한 여인이 되면, 세찬바람 부는 세상 애비 스러져도, 네 고향 억척 같은 땅 돌패기를 칭칭 휘감은 실거리 가시나무처럼 탐스런 꽃·깍지도 맺으면서 살리라. 1983, 10, 요배.’

단발의 30대 남성과 예쁜 옷에 구두를 신은 딸이 사이좋게 서 있는 모습을 펜으로 그린 ‘딸에게’에는 연필로 쓴 편지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아직 다섯살 밖에 안됐다는데 왜 이렇게 모질게 말할까’ 싶기도 하지만 언제 조용히 사라질지 모르는 아버지가 딸에게 자신이 없어도 굳세게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눈물이다.
1984년 완성된 이 작품은 민중미술 1세대 작가이자 대가로 꼽히는 강요배의 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리던 때를 이같이 회상한다.
“군부독재의 공포정치가 날이 갈 수록 심해지던 때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어요. 내가 오래 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쓰고 그렸죠.”

‘민중미술 1세대 작가’ ‘대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지금의 강요배 역시 처음부터 단단한 거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군부독재의 공포정치 속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 가족을 향한 미안함과 두려움 같은 시간들이 그의 삶과 세계 안에 겹겹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
광주시립미술관이 2026민주인권평화전으로 마련한 ‘강요배-시간을 품다’는 이 같은 한 인간과 풍경 안에 축적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 또한 그의 시간과 시선이 축적된 최근 작업부터 시작해 그 안의 시간을 만날 수 있도록 제주 귀향 이후 작업, 시대를 마주한 작업, 청년기 작업 순으로 진행된다.
‘축적된 시간’은 그의 작업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보는 장면, 풍경에는 지나간 시간 모두가 축적돼 있다는 것이 그의 시선이다.
그는 “한 풍경과 역사는 사진처럼 그 순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이 쌓인 순간이고 앞으로 시간을 쌓는 과정에 있는 모습이다”며 “우리가 상처 받고 치유하는 과정에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상처를 품은 채 뿌리 내리는 생명력과 스스로 회복해가는 모습 자체가 희망”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오늘날 광주의 푸른 하늘도, 제주의 파란 바다도 상흔과 치유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자리 위에 놓여 있다. 그때의 시간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 가닿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또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그의 제주 풍경 작품, 4·3기록화 뿐만아니라 1980년대 광주에서 전시됐던 작품을 다시 한번 전시하며 이 전시를 위해 작업한 신작 ‘광음(光音)’ ‘철목(鐵木)’ ‘망월’도 선보인다. 이와 함께 제주4·3기록화 연작을 영상화한 ‘동백꽃 지다’, ‘인간을 도우시다’는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강 작가는 “광주라는 도시에서 60여년 작업들을 보일 수 있다니 영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걱정도 된다”고 소회를 전했다.
윤익 시립미술관 관장은 “강요배 작가는 민중미술을 인간의 보편적 세계로 확장시킨 작가”라며 “특히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역미술 작가로 제주의 풍경과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그 속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함께 해 지역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위상을 보여준다.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가 오늘날의 질문과 미래의 사유로 이어질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요배는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과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980년대 ‘현실과 발언’에서 활동하며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발언해왔으며 1992년에는 고향 제주로 돌아가 제주4·3을 화폭에 담으며 ‘제주4·3작가’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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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잇는 농악의 울림 광산농악보존회의 정기발표회. 광주광역시 무형유산인 광산농악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명인들을 기리고 전통 농악의 매력을 시민들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된다.(사)광산농악보존회는 오는 14일 광산농악전수교육관과 쌍암공원 야외공연장에서 ‘광산농악 명인 추모제’와 ‘제28회 광산농악 정기발표회’를 개최한다.이날 오전 11시 광산농악전수교육관에서는 ‘광산농악 명인 추모제’가 열린다. 추모제는 광산농악의 예술적 기반을 다지고 전승에 힘써온 선생들의 뜻을 기리는 행사로, 후배 예인들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이어 오후 5시에는 쌍암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제28회 광산농악 정기발표회’가 펼쳐진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광산농악의 대표 연희인 판굿이 무대에 오른다.광산농악보존회의 정기발표회.판굿은 농악대의 다양한 진법과 개인놀이, 잡색들의 해학적인 연희가 어우러지는 공연으로 광산농악의 백미로 꼽힌다. 화려한 고깔 기예와 남도 특유의 신명 나는 가락, 역동적인 춤사위를 통해 광산농악만의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정기발표회에는 전라남도 무형유산인 영광 우도농악의 축하공연도 마련된다. 영광 우도농악은 유랑협률사의 연예농악과 천안전씨 세습무계 집단의 신청농악 전통을 계승한 농악으로, 특유의 역동적인 판굿을 선보일 예정이다.이와 함께 버나놀이, 죽방울놀이, 투호놀이, 윷놀이, 널뛰기 등 다양한 전통 민속놀이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1990년 설립된 광산농악보존회는 광산농악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정기발표회와 대보름굿, 전통문화 체험행사, 교육사업 등을 꾸준히 추진해 오고 있다.광산농악보존회 관계자는 “명인 추모제를 통해 선생님들의 예술정신을 되새기고, 정기발표회를 통해 시민들과 광산농악의 흥과 멋을 나누고자 한다”며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 광산농악의 가치를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공연 및 행사와 관련된 문의는 광산농악보존회(062-960-9987)를 통해 가능하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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