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등장에 ‘팟캐스트’ 부상
쇠퇴하던 음성매체 찾는 이 늘어
‘한물 간’ 가수와 매니저 이야기
라디오 매개로 지방소멸 조명
故 안성기 열연 박민수 캐릭터
희망·용기 전하는 모습에 ‘뭉클’

가족 여행을 갈 때면 엄마는 늘 CD를 구웠다. 아빠의 좁은 승용차 안에는 엄마가 직접 고른 애창곡들이 쉼 없이 흘러나왔고, 그렇게 엄마가 사랑하던 노래들을 질리도록 듣고 나면 엄마의 손끝은 라디오로 옮겨졌다. 엄마가 즐겨 듣던 FM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청취자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하거나, 노래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거나, 때로는 일상 영어를 알려주는 교육적인 코너를 담고 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채우던 목소리들은 목적지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의 배경음이 되곤 했다.
1980년대를 상징하는 버글스의 히트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영상 매체의 발달로 라디오 드라마 시장의 스타들이 설자리를 잃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TV와 비디오, 영화 같은 시각 매체들이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음성 매체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던 당시 문화 산업의 흐름을 직설적으로 드러낸 곡이다. 제목 그대로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는 가사는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구절이 됐다.
그러나 인터넷과 SNS 등 쌍방향 매체, 이른바 ‘뉴미디어’의 등장 이후 상황은 다시 뒤집혔다. 오늘날 대중은 정해진 편성표를 따라 TV를 시청하기보다 OTT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 소비한다. 인플루언서와 유튜버가 콘텐츠 생산과 소통을 동시에 이끌어가는 시대가 도래해 TV 역시 한때 라디오가 걸어갔던 쇠퇴의 길을 닮아가고 있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SNS Killed the TV Star’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SNS의 시대에도 ‘라디오 스타’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라디오의 진화형이라 할 수 있는 ‘팟캐스트’가 급부상하며 음성 매체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주파수를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되던 라디오와 달리 팟캐스트는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에피소드를 골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생활 리듬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한때 쇠퇴한 줄로만 여겨졌던 음성 매체가 다른 형식으로 부활한 셈이다.

◆사랑은 주파수를 타고
2006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는 이러한 사라지지 않는 라디오의 힘을 따뜻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영화는 “언제적 최곤이냐”는 조롱과 무시 속에서도 20여 년간 최곤(박중훈)의 매니저이자 1호 팬으로 곁을 지켜온 박민수(故 안성기)는 언제나 그를 ‘88년도 가수왕 최곤’이라 부르며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라디오 스타’는 개봉 후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스토리가 어색하거나 낡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영화가 다루는 핵심 소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지방 소멸과 지역 공동체의 붕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영화는 지방을 ‘소멸의 공간’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지방에는 지방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영월 다방에서 일하는 김양이 가출기를 통해 엄마에게 전하는 사연, 가출한 아버지를 찾는 국밥집 아들 호영의 이야기, 영월군 유일의 록밴드 이스트리버 멤버들의 소소한 일상, 화투 규칙을 알려달라며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영월 할머니들의 모습은 도시의 방송에서는 좀처럼 담아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사연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진한 ‘사람 냄새’를 풍긴다.
물론 영화의 설정은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다소 판타지에 가깝지만 라디오가 방송국의 유일한 프로그램이자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극적 효과를 위한 장치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이 ‘억지스러움’은 이상하게도 밉지 않다. 오히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진정으로 듣고 싶고,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떠나는 지방의 작은 마을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동네의 풍경은 20년 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화됐다. 오늘을 배경으로 ‘라디오 스타’를 다시 만든다면, 과연 지금의 영월에는 이스트리버와 김양이 여전히 남아 있을지 쉽게 답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우산을 씌워줬던 배우 안성기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 7080 시대의 영광을 누렸던 가수 최곤의 재기 서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숨은 주인공은 최곤이 아닌 그의 매니저 박민수다. 매일같이 사고를 치는 최곤의 뒤처리를 도맡으며 폭력 사건에 휘말린 최곤을 대신해 “제가 때린 것처럼 하겠다”고 말하는 박민수의 모습은 연예인과 매니저라는 관계를 초월해 피보다 진한 유대감을 보여준다.
자신이 짐이 될까 봐 최곤의 곁을 떠나는 박민수의 모습에서는 극 중 인물보다 배우 안성기 본인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지난 1월 5일 세상을 떠난 ‘국민배우’ 안성기의 영결식에서 아들 안다빈 씨가 낭독한 편지는 그 인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다빈아, 다빈이는 이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래, 아빠는 다빈이가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꼭 지킬 줄 알며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자는 야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고, 끝없이 도전해 보아라. (중략) 내 아들 다빈아,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1993년 11월 아빠가.’
편지에서 그는 다섯 살 아들에게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착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담히 전한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실패와 슬픔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며, 야망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당부는 박민수라는 캐릭터의 삶과 겹쳐진다. 그렇기에 영화 속 박민수에게서 안성기가 보이고, 안성기에게서 다시 박민수가 보인다.

영화의 엔딩에서 서울로 돌아간 박민수는 결국 다시 최곤을 찾아 영월 방송국으로 향한다. 거센 장맛비 속에서 ‘미인’을 흥얼거리던 민수는 쓰고 있던 우산을 최곤에게 씌워주고, 그의 어깨는 굵은 빗물에 흠뻑 젖는다. 빗속에서도 환하게 웃던 박민수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과 겹쳐지는 배우 안성기의 미소, ‘비와 당신’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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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
지난 12일 저녁 호추니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를 주제로 예술이 만들어내는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한다.지난 12일 저녁 광주비엔날레는 호추니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감독과 큐레토리얼팀 최경화, 박가희, 브라이언 쿠안 우드이 참석한 가운데 주제발표를 가졌다.이번 광주비엔날레 주제는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 호추니엔 감독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의 마지막 구절에서 착안한 것이다. 아름다운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던 릴케가 궁극에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될까’하는 내면의 깨달음을 얻게 되고 이를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라고 나타낸 시구이다.그렇다면 변화는 어떻게 일어날까. 호추니엔 감독은 이에 주목해 예술이 만들어온 크고 작은, 느리거나 급격한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호추니엔 감독은 “변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에 광주만큼 적절한 곳은 없다. 광주는 변화의 도시로 이곳의 민주화투쟁 역사는 전세계적으로 오늘날까지 깊은 울림을 준다”며 “광주에서 ‘변화’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있는 역사이고, 사회의 질서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시민들의 몸 안에는 변화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호추니엔은 변화가 반복적인 실천 속에서 지속된다고 보고,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이 예술을 통해 이어온 다양한 실천의 과정을 조명할 계획이다.그 실천은 돌봄 등처럼 일상 속에서 지속되기도 하고, 시민미술학교처럼 서로 배우고 질문하며 집단적으로 펼치기도 하며, 에너지를 강도 높게 집중하는 형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호추니엔 감독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이번 전시의 참여작이기도 한 제주 화산탄을 들었다. 여기에는 수백만 년의 지질 변화와 폭발 순간의 급격한 변화라는 전혀 다른 변화가 담겨있다.호추니엔 감독은 “화산탄은 변화의 다양한 속도와 규모를 담고 있어 내게 또다른 영감의 원천이 됐다”며 “이번 비엔날레가 탐구하고자 하는 변환을 보여주는 강력한 이미지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느리고 보이지 않는 것부터 갑작스럽고 폭발적인 것까지 규모를 가로질러 다양한 변화들을 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지난 12일 저녁 호추니엔 제16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 이번 비엔날레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이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지속적인 예술적 행동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참여 작가의 수를 역대 최소 인원인 40~45명 선으로 꾸리고 한 작가의 여러 작업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 작가가 여러 작업을 통해 지속해 온 예술적 행동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호추니엔 감독은 “통상적으로 비엔날레는 많은 작가들의 단일 작품을 모아 보여준다. 마치 많은 점이 모인 것과 같다”며 “하지만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단일 작품 뿐만 아니라 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며 선을 이루고 하나의 흐름을 보여줄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의 예술적 실천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가시화하고, 그 축적된 과정이 만들어낸 지속성의 산물을 보여줄 계획이다”고 말했다.이같은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잘 보여주는 커미션 작품으로는 권병준·박찬경, 재클린 키요미 고크, 남화연의 작품이 선보여질 계획이다. 이중 권병준·박찬경 작가는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공동체로부터 쇠붙이를 모아 무구를 만들었던 ‘쇠걸립’에서 착안, 시민들로부터 쓰지 않는 쇠붙이를 기부 받아 사운드 설치 작업을 할 계획으로 눈길을 모은다.한편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오는 9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 동안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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