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들의 숨결부터 생태 복원의 아름다움까지

입력 2025.11.14. 14:08 임창균 기자
뚜벅이 여행 24 광주 남구 대촌동
고원희가옥 등 ‘대촌 고씨’ 흔적
고경명 의병장 모신 ‘포충사’서
빼어난 풍경 속 순국 정신 새겨
지역 혐오 시설서 수목원으로
만추의 절경 한눈에 감상 가능
포충사 내삼문 방면

광주 남서단에 위치한 남구 대촌동은 남구 전체 면적의 58%인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서남쪽으로는 극락강과 지석천이 흐르고 중앙의 대촌천과 수춘천을 따라 비옥한 평야갸 펼쳐져 있다. 면적의 70%가 농경지이기에 도시근교농업이 주로 발달했으나 최근 도시첨단국가산업단지와 에너지밸리 지방 산단 조성으로 인구도 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충사, 양과동정 등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빛고을농촌테마공원과 광주시립수목원이 가까이 모여 있어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최적의 여건을 지니고 있다.

포충사 전시관 내부

◆ 고즈넉한 마을에 담긴 역사

대촌동의 역사와 지형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대촌 고씨와 제봉산이다. 대촌 고씨는 장흥 고씨의 분파 중 하나로 대촌에 터를 잡은 이는 고경명 의병장의 증조 고자검이다. 대촌 고씨의 흔적은 현재까지도 대촌동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번 뚜벅이 여행에서 가장 먼저 들를 곳은 압촌리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압촌제가 방문객을 맞이해 준다. 벚꽃 명소로도 알려진 곳이나 지금은 색바랜 연잎이 저수지 위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압촌제 앞에는 광주시 기념물 12호로 지정된 '고씨삼강문'이 있다. 임진왜란 때 순국한 고경명과 그 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다.

고씨삼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고원희 가옥'이 등장한다. 1917년 고원희의 증조부인 고종석이 고경명의 옛 집터에 현재의 가옥을 지었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이 남아있다. 현재도 종가가 개인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기에 방문 시 조용히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고씨삼강문과 고원희 가옥 사이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야트마한 동산에는 11월부터 하얀 꽃이 피기 시작하는 '구절초원'과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와 관찰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제봉산 마법의 숲 체험원'이 있다.

◆ '제봉'과 '필문'을 만나다

이날 뚜벅이 여행 장소는 모두 대중교통으로 10분, 걸어서 30분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압촌마을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 포충사로 향하는데, 멀리 오른쪽에 저수지 제방과 여러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대골제'는 매봉산과 건덕산 사이에 위치한 저수지다. 제방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1~2분 만에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바람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이름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앞으로는 산등성이와 저수지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풍경을, 뒤로는 대촌동 일대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다시 원래 목적지인 포충사로 향한다. 제봉산 아래 자리 잡은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 의병장과 아들인 종후, 인후 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제봉산이란 이름도 고경명의 호에서 따왔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은 광주전남지역 서원 중 하나다.

외삼문을 들어선 후 오른쪽에 있는 전시관에는 역사 교과서에서 수없이 본 듯한 오승윤의 '창의거병도'가 걸려 있다. 그 옆으로 양인옥의 '구국출병도', 오승우의 '금산구국혈전도'가 전시돼 있다. 이 밖에도 고경명에게 내려진 각종 교지와 묘비 탁본, 제봉문집 목판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관을 나선 후 내삼문 방향으로 향한다. 포충사는 잘 정돈된 잔디밭과 여름에 만발하는 배롱나무로도 유명하다. 어렸을 적 가족들과 수없이 나들이를 온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잔디밭에서 뛰어놀기만 했지 정작 원래 포충사인 '구사당' 방면으로는 올라가 보지 못했다. 현재까지 둘러본 장소들은 모두 1980년에 새로 조성된 것들이다.

잔디밭 왼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구사당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있고, 입구에는 커다란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바위는 자연석에 새긴 '충노비'다. 고경명과 함께 의병으로 참전한 집안 하인 '봉이'와 '귀인'을 기리는 비다. 이들은 금산전투에서 고경명과 차남 인후의 시신을 수습했고, 이듬해 장남 종후와 진주성 전투에 참가했다 순절했다.

돌계단을 조금 오르면 원형이 잘 보존된 포충사 구사당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아래쪽 신 사당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노의웅미술관 내부

포충사를 나선 후 뒤쪽 제봉산 산기슭으로 향한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성리학자 필문 이선제를 모시고 있는 '필문이선제부조묘'가 있다. 부조묘 앞에는 수령이 600년 된 20m 높이의 거대한 왕버들나무가 우뚝 서 있다. 이선제의 후손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이 나무에 북을 걸어놓고 잔치를 벌여 '괘고정수'라는 이름도 붙었다고 한다.

'필문'이라는 호가 익숙하다. 북구 서방시장에서 산수오거리, 조선대, 남광주시장까지 연결된 도로가 '필문대로'다.

도로 이름에 쓰일 정도로 이선제는 광주에 공이 있는 인물이다. 무진군으로 강등된 것을 광주목으로 승격시켰고, 현재 광주 우체국 자리에 희경루를 짓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빛고을농촌테마공원 힐링가든 내부

◆ 2개월마다 만나는 새로운 전시

포충사 인근 수춘마을로 향하는 입구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가 작은 언덕에 서 있다. 정자에 올라서면 너른 들판과 그 가운데를 흐르는 수춘천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향약의 시행처로 사용된 '양과동정'이다. 이곳 양과동 출신들이 간원으로 많이 진출했는데 그들이 임금에게 올릴 상소를 이곳에서 논의해 '간원대'라고도 불린다.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양과동정 뒤편으로는 함께 운영된 것으로 보이는 '양과동정향약관'이란 건물도 있다.

양과동정을 뒤로 하고 수춘마을로 향한다. 이곳에는 앞서 다녀온 압촌제와 마찬가지로 가볍게 걷기 좋은 저수지인 수춘제가 있고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노의웅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노의웅미술관은 호남대 교수를 역임한 지역 중견화가 노의웅 화백이 2018년 문을 연 개인미술관이다. 400여평 규모 부지에 건물 3개 동을 마련했는데, 전시장, 작업실, 수장고, 사랑방, 가정집 등 5개 공간으로 활용된다. 미술관 외벽의 현판 글씨는 노 화백이 직접 썼고 글자 아래 동판은 조각가 최재창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대관 전시 대신 3천여점에 이르는 노 화백의 작품을 2개월마다 교체하며 전시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이 휴관이며,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이날 전시장에는 스무점 가량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장 가운데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금강산의 향연'이었다. 붉은색으로 표현한 금강산 1만2천봉은 작품의 크기가 워낙 큰 탓에 경외감마저 들게 했다. 작품 하단부에는 폭포와 강이 흐르는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을 표현했다. 대촌동을 지나간다면 '이번엔 또 어떤 작품을 볼 수 있을지' 기대하며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가족과 즐기는 체험 휴식 공간

수춘마을을 빠져나와 서문대로 쪽으로 향하면 바로 빛고을공예창작촌이 나온다. 폐교된 초등학교 위치에 2011년 처음 문을 열었으나 2016년 건물을 지어 시설을 늘려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도자공예, 목공예, 금속공예, 섬유공예 등 지역을 대표하는 각 분야 공예가들의 공방 33개소가 있으며, 분야별 체험실도 갖춰져 있다. 시민들이 다양한 종류의 공예품을 만나는 것은 물론 직접 공예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광주시립수목원 방문자센터 전시실

빛고을공예창작촌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바로 맞은편에 빛고을농촌테마공원이 있다. 2019년 개장했으며 농업전시체험관, 힐링가든(화훼유리온실), 곤충박물관, 농업지원시설, 생태연못 등을 갖추고 있다.

힐링가든으로 들어서면 바깥의 싸늘한 공기와는 반대로 따숩고 촉촉한 공기와 풀내음이 느껴진다. 아스플레니움, 인디아, 아이리스 스푸리아 등 이름도 생소한 식물들이 잔뜩 심어져 있고, 레몬나무와 자몽나무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힐링가든을 나서 조금 걸으면 거대한 메뚜기 모양을 한 곤충박물관이 있다. 세계 곳곳의 곤충 표본이 생동감 있게 전시돼 있어 아이들 학습공간으로 제격이다.

생태연못 방향으로 되돌아가 힐링가든 맞은편의 농업전시체험관으로 향한다. 1층 북카페는 도서 1천여권을 소장 중이고, 2층 쌀전시실에는 우리나라 주 식생활 원료인 쌀 관련 음식 및 농기구 등이 전시돼 있다. 쌀을 직접 만져보며 다양한 쌀의 영양소를 확인할 수 있고 쌀로 만든 각 지역별 음식 모형도 전시돼 있다.

옥탑층에 조성된 작은 하늘정원에는 은목서와 금목서, 원추리 등이 심어져 있고, 이곳에서 공원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광주시립수목원 전시온실 내부

◆ 매립장 부지가 운치 있는 수목원으로

이날 뚜벅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2023년 10월 개장한 광주시립수목원이다. 빛고을농촌테마공원에서는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다.

자연환경이 우수한 곳에 지어지는 타지역 수목원과 달리 광주시립수목원은 광역위생매립장 주변 훼손지에 수목을 식재하면서 조성됐다. 지역의 혐오시설을 생태적으로 복원해 시민들에게 돌려주려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다.

개장 직후 처음 이곳에 들렀을 때 방문자센터는 전시실과 영상실 공사가 한창이라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방문자센터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방문자센터 안 영상상영실에서는 무등산 사계절의 아름다운 모습이 미디어아트로 상영 중이었다.

광주시립수목원 잔디광장에서 한 가족이 캐치볼을 하고 있다.

전시실에서는 광주지역의 식물, 식물 이름의 유래, 식물식 작명법에 대한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실 가운데 마련된 작은 '식물학자의 방'에는 식물 표본 만드는 방법과 식물 채집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이제 거대한 전시온실로 향한다. 온실 가운데는 큰 연못이 있고 그 사이 산책로를 걸어갈 수 있어 숲을 탐험하는 분위기를 낸다. 중간중간 열대 우림에 있을 법한 새 모형과 바나나에 매달려 있는 원숭이 인형도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앞서 다녀온 빛고을농촌테마공원의 힐링가든이 다소 습하게 느껴진 반면, 이 곳은 온실 규모가 커서인지 기온과 습도 모든 것이 쾌적하게 느껴졌다.

전시온실을 나서 왼쪽으로 향하면 작은 하천이 보이는데 대촌동을 가로지르는 수춘천이다. 다리를 통해 수춘천을 건너면 아기자기한 작은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한국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정원 반대편 입구에는 충북 보은의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의 후계목이 심어져 있다. 이곳 수목원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광주시립수목원 감나무 언덕

수춘천 너머 대나무숲이 이어지고 그 끝에는 작은 언덕과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포토존으로 유명한 감나무 언덕이다. 앞으로는 광활한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어 아이와 캐치볼을 하거나 축구공을 차는 가족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감나무 언덕에 가까워질수록 바로 아래 갈대밭과 함께 멋진 풍경이 눈에 담기기 시작한다. 언덕을 올라 감나무를 지나치면 진한 주황빛으로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고, 나무 아래에는 먼저 익은 감들이 한 둘 떨어져 있다. 언덕 위에서는 바로 앞 잔디광장은 물론 멀리 전시온실까지 훤히 잘 보인다.

봄과 여름의 푸르름도 좋지만 자연의 색이 바래기 전 가을만의 풍경도 운치가 있어 나쁘지 않다.

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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