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 삶 엿본 땅끝순례문학관
특별한 비엔날레 수묵전시 함께
녹우당서 살핀 종가집 예절·전통
대흥사 산책길 꽃무릇 만발준비
범종루 앞 연리근 경외감 들게해

해남읍에서 두륜산으로 가는 길 도중에도 반드시 들려야만 할 관광지가 있다. 해남윤씨 종가의 중심지 녹우당 주변으로는 고산윤선도박물관과 해남 문학사를 정립하고 있는 땅끝순례문학관이 있다. 마침 10월까지 두곳에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진행 중이라 역사와 문학, 미술 여행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두륜산 자락에 위치한 두륜미로파크와 케이블카는 아찔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고계봉에서 바라보는 해남의 풍경은 속을 뻥 뚫리게 만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대흥사에서는 아름다운 경내의 풍경에 흠뻑 취하게 된다.

◆해남 문학인의 삶 숨 쉬는 곳
'고산윤선도유적지'에는 해남윤씨 종가의 중심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녹우당, 고산윤선도박물관, 고산사당, 어초은사당, 땅끝순례문학관 등이 몰려있다. 해남읍에서 버스로 15분가량 걸릴 정도로 상당히 가깝고 대흥사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함께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첫 번째 목적지는 땅끝순례문학관이다. 해남은 윤선도뿐만 아니라 호남 시학의 스승인 석천 임억령, 기록문학과 유희춘 등을 배출해 조선시대부터 문학적 토양이 비옥한 곳이다. 현대에도 여러 뛰어난 문학인들을 나고 자라 그 명맥을 계승했는데, 이들의 문학적 성과를 수집하고 지역 문학사를 정립하기 위해 2017년 이곳 땅끝순례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1층에는 한국 전통 서정시의 진수 이동주, 자연과 삶의 근원을 통찰한 박성룡, 1980년대 민족문학의 기수 김남주, 한국 여성주의 운동의 선구자 고정희의 삶과 작품세계를 전시한 상설전시실이 있다. 단순히 이들의 삶을 글로 풀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시인의 작품세계를 반영한 독특한 전시·체험 콘텐츠와 지역 문인들의 인터뷰 영상을 마련해 방문객들의 몰입을 높이려 한 노력이 느껴졌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에서는 해남의 자연 풍경을 활용한 '시어의 시간' 영상이 상영 중이었다. 일출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시간 흐름에 따라 몰입을 유도하는 영상미가 돋보였다.

◆10월 해남을 가야 하는 이유
10월에 고산윤선도유적지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8월 30일부터 개최한 2025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10월 31일까지 진행되는데 땅끝순례문학관과 고산윤선도박물관도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전부터 해남의 대표 관광지였던 이곳에서 특별한 수묵 전시까지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이다.
비엔날레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 문학관 2층 기획전시실로 발길을 옮겼다.
'문명의 이웃들'을 주제로 한 이번 비엔날레는 기존에 목포와 진도에서 치러지던 전시를 해남까지 확장했다.
수묵비엔날레 입장권 1장을 산다면 목포, 진도, 해남의 6개 전시관에서 모두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비엔날레 5관인 땅끝순례문학관 전시관에는 구성연, 이헌정, 홍푸르메, 로랑 그라소, 린타로 하시구치, 펑웨이 등 6인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공재 윤두서의 기마도, 겸재 정선의 내금강산도를 오마주 한 로랑 그라소의 '과거에 대한 고찰'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문학관을 나선 후 2~3분을 걸어 비엔날레 6관이 있는 고산윤선도박물관으로 이동한다. 박물관의 정면은 단층 한옥이지만 전시공간들은 지하에 있고, 지하에서 곧바로 녹우당 방면으로 향하는 길이 건물 뒤쪽으로 나 있는 구조다. 비엔날레 전시관인 2전시실에는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현존하는 말 그림 중 제작 연대가 가장 오래된 윤두서의 '세마도' 진본이 321년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음 수묵비엔날레가 해남에서 다시 열릴지, 혹은 세마도가 다시 공개될지 알 수 없었기에 한참을 감상했다. 윤두서의 자화상과 정산의 인왕제색도 영인본은 어두운 공간에 별도로 전시돼 있어 강렬한 묘사력과 독보적인 자연 묘사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600년 터 잡은 해남윤씨의 상징
2전시실 맞은편 1전시실은 해남윤씨 어초은파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사대부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보물급 고문서와 서책들이 전시돼 있다.
어초은 윤효정은 해남 정씨 귀영의 딸과 결혼하면서 강진에서 해남으로 터전을 옮겼다. 1501년 생원시에 합격했는데 이후 교육에 힘썼으며 이후 윤선도와 윤두서 등 많은 후손들이 이름을 드높였다.
이러한 해남윤씨의 종택이 녹우당이다. 고산윤선도박물관 지하에서 건물 뒤편으로 이어진 잔디밭으로 나가면 녹우당 앞에 높이 23m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시선을 잡아끈다.
녹우당은 '녹음이 우거진 비가 내린다'는 뜻과 동시에 선비의 변치 않는 절개와 기상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녹우당 내부로 들어서면 겹처마가 인상적인 사랑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근의 충헌각에서는 '600년을 이어온 종가의 상'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해남윤씨 종가의 예법을 상정적으로 보여주는 '놋그릇'과 '제례상'을 중심으로 조선 사대부의 생활문화와 예절을 소개하는 전시다.
고산윤선도유적지 일대는 하루를 날 잡고 둘러볼 만한 곳이다. 지난 4월에는 윤선도의 '오우가'를 테마로 한 '고산 오우가 정원'이 조성됐고, 녹우당 뒤편에는 울창한 비자나무숲이 자리잡고 있어 시간이 된다면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로와 케이블카, 뜻밖의 아찔한 여정
대흥사로 버스를 타고 간다면 가장 가까운 두륜승강장까지 30분이 걸린다. 정류장 인근에 두륜미로파크와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승강장이 있어 들러보기로 했다.

공룡 머리 모양의 두륜미로파크 전시관 1층은 방문객들이 쉴 수 있는 카페와 미로에 대해 설명한 전시물들이 있다. 본격적인 체험 콘텐츠는 2층에서 접할 수 있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거울미로숲' 입구가 나타나는데 '절대 뛰면 안돼요', '유리 주의' 같은 안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들어가는 미로인데 뭐가 어려울까 싶었지만, 맘 놓고 걸어가다 막다른 길에 두 번이나 부딪혔다. 거울미로숲을 빠져나오면 벽을 깨고 나타나는 공룡과 킹콩, 해남 도솔암, 파도가 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트릭아트 체험존이 나타나 사진을 찍기 좋다.
전시관을 나온 후 두륜미로파크로 들어가 본다. 해남군의 공룡 캐릭터를 형상화한 미로공원의 최대 길이는 417m다. 빠져나오는 데 최소 10분, 길게는 40분까지 걸린다. 처음 5분정도는 호기롭게 씩씩 걸어갔으나 출구역할을 하는 전망대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결국 반쯤 열린 울타리를 통과해 편법으로 빠져나왔다.
두륜미로파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두륜산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가격은 성인 기준 1만5천원인데 전날 미리 예약을 하면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케이블카는 두 대가 30분 간격으로 번갈아 가며 움직인다. 638m 높이의 고계봉 인근까지 올라가는 데 20분정도가 걸린다. 두륜산 자락에서도 깊은 계곡을 지나가다 보니 강한 바람으로 인해 케이블카가 흔들리기까지 했다. 케이블카 정차장 입구에는 기다란 봉이 양쪽으로 크게 벌려 있는데, 이게 다 도착하는 순간까지 흔들리는 케이블카를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상부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면 아래쪽과는 확연히 다른 서늘한 바람이 분다. 나무로 된 데크길과 계단을 오르다 보면 고계봉까지는 딱 10분정도 걸린다.
계단을 오르다 이따금씩 뒤돌아 바라본 풍경은 흔들리는 케이블카를 탄 보람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조금 전 다녀온 미로파크는 물론 멀리 해남읍까지 보인다. 고계봉 일대는 입산금지 구역이라 오직 케이블카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고, 데크길로만 이동을 해야 한다.
고계봉 정상은 주변 지형이 좁기 때문에 그 보다 30m 앞선 부분에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남쪽 방향을 바라보면 왼쪽에는 강진만, 오른쪽에는 진도가 보이는데 날이 좋을 때는 125㎞ 전방의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5분 정도 주변 풍경을 감상한 뒤 다시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걸어내려간다. 시간만 잘 배분하면 대기시간 없이 30분 안에 케이블카를 탈 수도 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올라올 때와 달리 내려가는 케이블카는 바람이 불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 자랑하는 호국성지
이날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대흥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러 식당가가 모여 있는 해남웰빙음식촌이 대흥사 입구나 다름없는데, 이곳에서도 대흥사까지는 다시 3㎞ 이상을 걸어가야 한다. 유료 주차장 입장권 3천원을 내면 2㎞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어 차를 가져오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유료주차장에서도 대흥사 일주문까지는 15분을 걸어야 한다. 조금 걷다 보면 길 곳곳에서 꽃무릇을 볼 수 있다. 아직 빨간물이 덜 든 듯 주황빛을 띈 꽃무릇 사이를 검은 나비들이 쉴 새 없이 오간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56개의 부도와 17개의 탑비가 있는 부도전을 등장한다. 대흥사에 훌륭한 스님들이 이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대흥사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서산대사가 세상을 떠나며 의발(가사와 공양그릇)이 전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조는 이곳에 '표충사'라는 편액을 하사에 서산대사의 충의를 기리기도 했다. 2018년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7개 사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해탈문을 지나면 대흥사의 넓은 경내와 뒤쪽 두륜산 정상의 모습이 압도적인 경관을 만들어 낸다.


먼저 발길을 왼쪽으로 틀어 대웅보전 방향으로 향한다. 범종루 1층에는 카페가 있어 방문객들이 야외에서도 음료를 마시며 쉴 수 있는데 바로 앞 연리근 나무도 충분한 볼거리다. 두 나무의 줄기가 만나는 연리목과 달리 연리근은 뿌리부터 만난 나무다. 그 형태도 새롭지만 거대한 크기 때문에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대웅보전 옆에는 윤장대를 특이한 책장이 야외에 설치돼 있다. 중앙의 기둥을 중심으로 회전하도록 만들어진 윤장대는 중국 양나라 선혜대사가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글자를 모르거나 불경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신도를 위해 만들었는데, 운장대를 한번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는 것 같은 공덕을 지닐 수 있다고 한다.
경내를 가로질러 성보 박물관으로 향한다. 성보 박물관에는 국보 제308호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 좌상의 축소모형과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북미륵암까지 직접 걸어가는 것은 제법 멀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돼 있다.
지난해 11월 완공된 호국대전으로 향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진한 나무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것도 새집 냄새라고 할 수 있을까. 정면 9칸, 측면 5칸인 호국대전은 단일 전각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현판 양옆을 지키고 있는 용머리도 제법 거대하다.
대흥사는 경내의 규모도 거대하지만 다양한 유물은 물론 아름다운 풍경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어 해남 여행에서 빠지면 안 될 주요 관광지다.
글·사진=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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