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처럼 강에 낚싯대 드리운 그런 날은 올까?"

입력 2025.09.05. 12:11 최소원 기자
[그림으로 농사짓는 박문종 에세이⑧]
어머니 강(영산강을 살립시다!)
유년시절 갯가서 놀던 기억 아련
담수호 되면서 논바닥 된지 오래
1970년대 개발사업 후 기능 상실
지역민, 졸지에 어민서 농민으로
강은 많이 주는 만큼 위험도 커
농경시대 국가덕목 첫째는 '치수'
잇단 제방 공사로 물고기 사라져
숭어뛴다고

갯가에서 어둑어둑 날 저문 줄 모르고 맛조개 캐고 기(게)잡고 오 리 길, 십 리 길 갯바구리(바구니) 그득 머리에 이고 지고 집으로 가는 길 걸음이 급하기만 하다. 엄마 기다리던 아이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마중 나가게 되는데 저 멀리 들리는 것은 들 건너 보리밭 사이 갯것들의 소리였다. 주파수 있는 신호음 같은 것이었다. 쓰쓰 사사….

방학 때가 되면 아이들은 강으로 갔다. 영산강, 대 막가지 낚싯대 하나씩 꺾어들고 갯바닥으로 달려간 것이다. 물도랑이 있는 수문은 아이들의 낚시 포인트, 물이 드나드는 곳에 망둑어 아니 운절이(무안 사투리)가 많다. 절절 절절 팔목을 타고 오르는 고기 채임질에 머리끝이 쭈볏 쭈볏, 여기저기에서 '와~ 와~' 아이들은 자지러진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구덕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갈댓잎 똑 끊어 끼미 꿰고 집에 오는 길은 재미있었다.

강은 넓었다. 말이 강이지 바다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물이 빠지자 뻘등이 서서히 드러나고 거기에는 수없는 생명들의 집, 점점점 갯벌에 박힌 점들이 숨 쉰다. 숨구멍이다. 물이 들락날락 요 녀석들이 그 안에서 뭔 짓을 하는지 개구쟁이들이 가만 놔둘 리 없다. 파헤치기라도 하면 그새 어디로 튀었는지? 잡힐 리 없다. 미끄덩한 갯벌에서 놀다 보면 한 물때가 가고 물이 들면 나오고는 했는데 새까맣게 탄 아이들 눈만 꿈벅꿈벅 짱뚱어처럼 놀았다.

담수호가 되면서 자취를 감췄지만 바글바글한 물고기들 짱뚱어, 맛, 게, 모시조개, 운절이, 내 유년 친근한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해 본다.

갯바닥은 이미 논바닥이 된 지 오래다. 대부분 논이 되었으니 나도 한때는 영산강에 논을 갖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부모님이 불하받은 것을 물려받았는데 한동안 벌었었다. 멍수 바위 등대 가까운 논이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강의 중심부일수록 시세가 좋다는 것이다. 아마 갯벌층이 두터울수록 미질이 좋다 여기는 까닭 아닐까?

영산강중선배

강이 막힌 시기는 70년대 중반으로 당시 전국적으로 이뤄지는 '국토개발사업'의 일환의 국책 사업인데 명분은 쌀 증산과 홍수 조절 능력 향상, 농업용수의 원활한 수급이라고 알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은 홍수가 나면 들(영화농장)이 잠기는 상습 침수지역이었는데 어느 정도 해소되고 무엇보다 농업용수 물 수급이 원활해짐으로써 최대 수혜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전에도 극심한 삼 년 한해(1967~1968년) 피해를 겪은 터라 농민의 상심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논에 물꼬만 열고 닫으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다 좋을 수는 없는가 보다. 강을 막으니 갯물이 들고나고 하는 오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형질 변경에 따른 부작용이 더 이상 강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뱉어내는 수로라고나 할까. 언젠가 답사길에 둘러보았는데 상전벽해라더니 강 한 가운데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여기가 그 옛날 중선배가 다니던 영산강 맞아? 쌀값은 지금도 싸지만 그때도 싸디 쌌다. 강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토목공사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운다더니. 건설을 위한 건설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지 않은가? 쌀 증산을 위한다는 것도 그렇다. 갯가에 방치된 폐선을 해당 마을(돈도리)을 찾았을 때 마을 주민은 맛 잡고 기 잡을 때가 좋았다면서 당시에도 마을에서 한 해 1억 소출은 거뜬했다는 푸념이었다. 졸지에 어민에서 농민이 된 어수선함을 감추지 못한다. 하류다 보니 강은 수 없는 지류를 거느린 커다란 호로병 형국이다.

그건 무수한 새끼 내를 거느린 모태 같아 그 생명줄을 바다에 대고 있다. 다양한 생물들이 사는데 목에 위치하는 주렁나루에는 상괭이 서식지도 있었다. 근처 상사바위 단애가 있는데 내려다볼라치면 중학생만한 놈들이 유영을 하는데 장관이었다.

영산강(59x75cm 80x118cm 한지.먹.채색.황토물 1996)

무안의 황토가 밀려 찰진 뻘을 이루고 월출산 자갈돌이 굴러 바닥을 이루는 강 서식 환경에 따라 다르다. 영암 쪽에는 숭어가 걸리지만 무안 쪽에는 없다. 갯일 다녀온 어른들 구덕에 모치(어린 숭어)가 가끔 들어 술안주가 될 뿐. 강을 가만 놔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살고 사람은 사람대로 살고 강가에 카페도 차리고 매운탕집도 열고, 근동 사람들 먹고사는 데 지장 없었을 텐데….

예부터 치수(治水)라 했다. 농경사회에서 국가 덕목 첫 번째가 물 관리였던 것. 강가에 살다 보면 강은 무한하게 내주는 만큼 위험천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기를 강이 범람함으로 땅은 비옥해진다고 했다.

자연에 맡기는 거다. 가만 놔둬도 될 것은 놔둬야 한다. '샛강이 살아야 강이 산다'하는 구호는 당연하면서도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제방둑에 알 수 없는 공사가 이뤄진다. 화학 제품으로 만든 구조물로 벽을 치고도 물고기가 살기를 바라는가?

강을 열어야 한다. 아니 터야 한다. 소설가 송기숙 선생님은 '영산강에는 장어가 없다'라는 단편 글에서 강이 막히고 제방 공사를 하던 트럭 운전사들의 목격담을 전하는데 한밤에 장어 떼가 줄을 지어 꾸역꾸역 넘어가더라는 것이다. 그 높은 곳을 넘어 탈출하는 것을 여러 번 포착됐다고 한다.

짱뚱어


논에 물꼬는 텄다 닫았다 하지만 이건 아예 때려 막아놨으니 재앙이 아니고 뭐겠는가? 아무리 시대가 급변한다고 우리 대에 이르러 이런 변고라니 부끄럽다. 이제라도 강이 숨 쉬게 해야 한다. 국가가 뭔가? 나라에서 저지른 일이니 나라가 다시 되돌려 놔야 한다. 이 강은 억겁의 시간 누대에 걸쳐 형성된 천혜의 공간이다. 맑은 날은 월출산이 물 위에 연꽃처럼 피고, 예부터 우리나라에는 바다를 관장하는 큰 해신당이 세 곳 있다고 한다. 하나는 동해에 하나는 황해도에 그리고 이곳 남해신당이다. 지금도 바다 없는 해신당이 시종 남해포에 눈을 부릅 뜨고 셀 수 없는 선인들의 유적이 말해주지 않은가? 여기가 예삿곳이 아니라는 것을…. 반남고분 마한 근거지로 평가받는, 왕인박사 유적 구림 상대포 국제항, 신라인 최치원이 중국 유학길을 이곳을 통해 지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사라진 명산 구진포 장어 홍어 배가 쉬어가는 강 속의 섬 양두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한다. 강에는 물이 들고 나야 하는데 일방통행 때문에 저 아래 이름도 아름다운 청호 언젠가 답사길에 보니 병목현상으로 쓰레기가 목에 걸려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일행들이 기겁을 했다.

예전처럼 배가 다니는 강을 그려본다. 강이 회복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어린 날처럼 강에 낚싯대 드리운 그런 날은 올까? 기 맛 운절이 짱뚱이가 돌아오는 날, 내 하던 짓 다 때려치우고 달려가 그 강가에 매운탕 집을 차릴 것이다. 그리하여….

박문종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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