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판에 무수한 모내기 작업···이것이 '신 산수화'

입력 2025.07.07. 11:04 최소원 기자
[그림으로 농사짓는 박문종 에세이⑥]고막천 똑다리
한때 광주-목포간 도로로 '명성'
하천엔 미곡 100섬 실은 배 오가
부감법 그림 통해 남도 풍경 전달
인문학적 태도로 대상 접근 계기
'ㅛ' 기호 등장…그림 랜드마크로
땅 모 심기하듯 화실서 농사 보람

고막천똑다리 80x108cm 한지.먹.혼합재료 1994

나는 '고막천 똑다리'에서 주워왔다고 했다.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종종 들어야 했는데 애들이 말을 안 듣거나 골려줄 때 어른들 수법인데 그 다리가 제 엄마 다리인 줄 모르는 아이는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가 난다.

다리근동 함평 무안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겪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다. 예전에는 이곳이 광주 목포 간 주요 도로였다. 또 철로가 지나는데 위로는 다시 영산포 나주, 아래로는 학다리 사창 몽탄 일로…. 그 길목에 위치해서 지나는 길에 가끔 들여다보고는 했었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는 관에서 보수공사를 한다고 했다. 새로 돌을 맞춰 허연 시멘트 콘크리트를 발라 다리로 잇댄 것이어서 뭔가 달라 아쉬움에 발길이 뜸했었다.

그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갈 때마다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보고, 한참을 머물며 완성을 했는데 교각 밑에 흐르는 물과 묵직하게 다듬어진 화강석이 임플란트마냥 짜임새 있게 걸린 게 보면 볼수록 귄 있었다.

고막천은 하천이라고 하지만 여름 우기 때 범람이라도 할 것 같으면 바다를 연상시키는데, 고려 때 축조되었다고(뿌리 깊은 나무) 하는 데 오랜 세월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1910년대까지 미곡 100섬지기 범선이 드나들었다고(김경수, 영산강삼백오십리) 한다.

지금도 배가 드는 강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영산강 하구 쪽이 고향마을인 필자도 큰 돛을 단 중선배가 지나는 것을 보고 자랐었다.

우선 그림 '고막천 똑다리'는 그리는 수법이 특이하다. 풍경화나 지도도 아닌 것이, 군대에서 군사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경도(寫景圖)라는 다소 생소한 그림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이다.

고막천 70x125cm 한지.먹.채색.흙 1994

마치 하늘에서 나는 새가 드론이 하는 것처럼 주변 상황이 한눈에 잡히기도 하는데 산과 강 들 구릉지대 평평한 남도의 풍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을과 관청 사회기반시설 철도, 도로, 다리 등 취락 구조와 구조물이 기호화되어 나타나는데 사용자인 지휘관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기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법은 일찍이 우리 전통미술에서도 확인되는 바 부감법(俯瞰法)이 그것이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전도 같은, 서로 쓰임새가 다르다 해도 무한한 상상력과 공간감을 생각해봤다. 겸재 선생도 금강산 여행 후 그 감흥을 집에 누워 천정에 떠오르는 대로 잽싸게 그려 담지 않았을까?

이런 형식을 취한 데에는 나의 군 복무와 관련지을 수 있다. 나는 김일성도 무서워한다는 '도시락 부대'(방위병) 출신이다.

무슨 놈의 군인이 도시락을 싸서 들고 출근해서 나라를 지키고 퇴근도 하고 가족들과 취침에 들다니.

한때 부러움 반 시샘 반이 만든 농담 한 마디, 향토 예비군 중대 소속 기간요원으로 복무를 했다. 주 임무는 예비군훈련 '목작전'에 쓰이게 되는 사경도 제작을 도맡아 했다. 그러니 날이면 날마다 해당 지역을 둘러보는 게 일과였는데 자전거를 끌고 면내 곳곳에 지형지물을 숙지하고 그 주변부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 그림은 90년대 초에 그려지게 되는데 격랑의 80년대가 가고 바야흐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도래하고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다. 외부로 시선이 쏠리기도 하지만 내적 자각도 생기게 되는데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 같은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시기다. 해서 관련 답사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몰리기도 하는데 내 그림도 전통미술에서 벗어난지 한참은 지났고 80년대 먹그림에 이어 정체성에 대한 모색기였다.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인문학적인 태도로 대상을 보게 된 것이다. 지도학상 논을 의미하는 'ㅛ' 기호가 이때 처음 등장하는데 이후 '모내기' 등 농사 그림에 랜드마크처럼 따라붙게 된다. 들에서 농부가 모내기 하듯 나는 화실에 들어앉아 이 기호를 모포기 삼아 화판에 얼마나 많은 모를 냈는지 모른다.

나는 얼마간의 도시(광주) 생활을 제하면 나서 지금까지 대부분을 농촌에서 살았다. 농촌이라 해도 예전과 많이 다르지만 지금도 뻐꾸기 울고 모내기철 무논에 자글자글 개구리 소리에 잠 못 들지만 실제 하는 것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이런 게 신 산수화가 아니고 무엇이랴.

박문종 화가

# 연관뉴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전남광주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