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소리 아름다움 그 자체 '추월만정'
달빛이 정원에 가득하게 쌓여있는데 황후가 된 심청이 산호로 구슬을 꿰어 만든 발을 들어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마침 기러기가 날아오므로 그를 불러 말을 한다.
전한 시기 무제(武帝) 때 소무(蘇武)라는 사람이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있을 때 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보냈다는 게 소중랑 고사인데 이 이야기를 빌어 심봉사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설정이다.
편지라는 뜻의 안찰(雁札)이나 안신(雁信)이라는 용어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모두 기러기 편(便)에 전하는 지(紙, 종이)라는 뜻으로 지금은 편지(便紙)라는 말만 남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글자를 어찌 제대로 쓰겠는가. 글자를 쓸 때마다 젖은 눈물에 뭉개져 마치 그림처럼 번지고 만다.
그래도 간절한 마음으로 몇 줄 적어서 나오는데 기러기는 간 곳 없고 별과 달만 아득하게 멀리 떠 있다. 문학적으로도 매우 격조 높은 데다 진양조장단으로 짠 판소리의 격조가 더욱 높아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대목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판소리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김소희 명창의 추월만정 소리를 즐겨 듣는다.
사실 이 대목은 전설의 명창 이화중선이 가장 잘 불렀고 국창 김소희가 더 잘 불렀다. 나중에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어렸을 적에 고창에서 광주에 사는 언니 집으로 유학을 왔던 김소희가 마침 송만갑이 이끄는 포장극단 곁을 지나다가 이화중선이 부르는 이 대목을 듣고 반하여 가출 아닌 출가를 하게 되었다는 것 아닌가. 명인명창 중에서 유년기에 소리를 찾아 가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를 불교 출가에 견주어 소릿길로의 출가(出家)라고 표현하곤 한다.
어린 나이에 광주에 유학왔던 김소희가 이화중선의 추월만정을 듣고 왜 한걸음에 반하게 되었을까?
판소리 자체가 그러하지만, 심청전은 심청이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판소리라는 음악으로 발달한 장르다.
'심황후사친가', '황후자탄', '심황후자탄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노래의 앞머리를 따서 '추월은 만정하여'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악사전에 의하면, 추월만정의 초기본으로 간주되는 '박순호 소장 낙장 27장본'에는 심봉사 부친을 걱정하는 소박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19세기 후기에는 보다 장황한 내용이 붙기도 한다. 이후 사설이 지금처럼 압축되고 간략화된 것은 1920년대 유성기 음반을 발매하였던 당대 최고의 명창 이화중선(李花仲仙, 1899~1943)에 의해 녹음되면서부터였다고 알려져 있다.
편지를 중심으로 한 유파별 사설의 전체적인 맥락은 대부분 유사한데 초대 국립창극단 단장을 지냈던 고흥사람 김연수(金演洙, 1907~1974)로부터 비롯된 동초제 유파에서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 부르기도 한다. 추월만정은 시김새, 장단, 호흡, 공명 등 판소리가 가진 표현이 가장 섬세하게 조율된 대목 중 하나로 꼽힌다. 정음(情音)의 극치라고나 할까, '소리의 미학'이 완성된 결정체라 할 만하다.
예컨대 조선 후기로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의 정서와 미학이 집약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유교적 질서, 효의 미덕, 여성의 희생과 재생이 서사적으로 응축된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문화사적으로도 여성 명창의 '정전화된 감정'의 발화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소리의 맥 짚어보자"
광주MBC '얼씨구학당' 후속 프로그램인 '얼씨구당' 유트브 프로그램에 나간 지 꽤 오래되었다.
판소리를 중심으로 백수십 분의 명인 명창들을 다루었다. 일주일에 한 꼭지씩 참여한 것이 햇수로 4년 남짓 되나?
일반인들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들이 시청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다.
국악 마니아는 물론 국악 관련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나 일반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니 독자 수가 적은 국악계의 관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이외에 광주전통문화관에서 진행하는 광주시 지정 명인 명창 토크도 3~4년 진행했다. 한 달에 한 번꼴이었으니 이 또한 꽤 많은 숫자가 되었다.
빛고을국악전수관 개원 20년을 기념하여 시작한 명인 명창 토크콘서트 진행도 올해로 3년째 접어들었다.
역시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나라 최고의 명인 명창들을 모셨으니 아카이빙만 해도 성과가 크다. 이래저래 국악을 기반으로 한 남도의 음악을 기획하고 더불어 이야기하며 또 전개하는 일에 관여해온 듯싶다.
이제 이 성과들을 중심으로 우리 소리의 맥을 짚어보는 연재를 시작하기로 한다. 토크와는 좀 다르게 전문적인 영역도 다루게 될 것이다.
다만 너무 심도를 더하면 지루하기도 하고 딱딱해지므로 가능하면 에피소드나 열전 중심으로 풀어가려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염려하는 것은 남도의 대표적 정론지에 할애되는 귀한 지면을 일 획이라도 허투루 소비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레거시 미디어의 시대는 저물었다.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된 소셜 네트워크(SNS)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의 양이나 질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울림이 없고 메아리가 없는 말이 가지는 허황함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매끄럽고 잘 정돈된 글이라도 진정성이 없으면 쓰레기 더미에 던져지고 만다.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글들도 많다.
내 글이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전통을 기반 삼아 현재의 예술 특히 음악 관련 예술을 논설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여간해서 주의를 환기하기 어렵다. 기를 쓰고 법고창신을 말하고 용을 쓰고 온고지신의 해법을 제시해도 피드백이 없으면 공염불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이 두려워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도외시하는 것은 직무유기일 것이다. 다만 생각한다. 공명 없이 울리는 꽹과리 소리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애오라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것이니 이를 어쩌랴. 막고 품는 수밖에.
바야흐로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 K라는 접두어를 걸고 한국적인 것들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잠시 주춤거렸지만 도도하게 흐르는 장대한 물결은 그침이 없을 것이다. 내란을 거뜬히 물리치고 새시대를 준비해나간 빛의 혁명을 주목한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세계 정상에 우뚝 선 한국문화를 주목한다. 이렇게 된 데는 마땅한 까닭이 있다. 그것이 뭘까? 각 분야와 장르에서 논할 일이로되 나는 이를 한국의 소릿길에서 찾고자 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과거가 현재를 구한다'는 말이 슬로건이 되었다. 정치나 역사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문화사 쪽에서 추켜들고 나아가야 할 언설임을 주목한다. 밥딜런이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것은 그이의 노래가 시대정신을 현대의 양식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릿길을 K-컬쳐 로드에 담아내고자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서남해 바닷길에 놓였던 노두, 그 디딤돌 하나 놓는 마음으로 이 연재를 시작한다. 이름도 빛도 없지만 도처에 난무하는 무림의 고수들께 지도편달 구한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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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화 성지에서···" 광주 출신 장성호 감독의 고백 '킹 오브 킹스' 장성호 감독. 뉴시스북미를 강타한 '킹 오브 킹스'를 연출한 장성호 감독이 4년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전남대학교를 한 달 만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을 고백했다. 5·18민주화운동 주역인 곳에서조차, 더군다나 가장 폭력을 비판해야 할 미대에서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 데 충격받았다는 내용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더해 '민주화의 성지'를 자부하면서도 민주적이지 않은 관행들이 여전히 광주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는 현실에 더해 성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장 감독은 16일 보도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경험을 밝혔다. 장 감독은 인터뷰에서 1989년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끔찍한 경험 후 한 달 만에 학교를 떠나야 했던 사실을 털어놨다. 서강고등학교에 재학한 장 감독은 전교 두세 손가락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상 전남대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장 감독은 "어느 날 선배들이 단과대 옥상에 후배들을 집합시켜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곧 팰 분위기였다"면서 "민주화의 성지 전남대에서, 그것도 예술혼을 불태워야 할 미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납득되지 않아 반항하고 그 길로 자퇴했다"고 고백했다.장 감독이 겪은 1989년은 1980년 5월 항쟁(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이자 중심지였던 전남대학교는 당시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또 군부 정권에 맞서 수많은 전남대 학생이 희생됐다. 그러면서 전남대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며, 매년 5월이면 전국에서 이를 기리는 사람들이 찾는다.이런 곳에서 그것도 자유로운 영혼이 존중받아야 할 미대에서 비이성적인 '군기 잡기'와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됐다는 사실은 장 감독이 충격을 받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은 구금한 학생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옷을 벗겨 얼차려(군기 훈련)를 준 뒤 물리적 폭력을 저지르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특히 이 같은 폭력적 악습은 오랜 기간 전남대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전남대 예술대학에서 선배가 후배들을 대상으로 얼차려를 주는 모습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문제로 정기 연주회가 취소되는 일로 이어졌다. 지난 2013년에는 전남대 신문방송사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104개 학과 중 77개 학과가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포함한 기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자랑스러운 역사 이면에는 부끄러운 민낯이 공존해 왔던 셈이다.다만,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얼차려와 같은 폭력은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가 후배를 집합하는 문화가 이른바 '똥군기'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자정이 이뤄진 탓이다.#D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 내 한 장면. 모팩 스튜디오장 감독 고백을 접한 지역사회에서는 성찰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와 인권, 평화를 자부하면서도 여전히 비민주주의적인 행태가 이뤄지고 있다는 자조적 고백이다. 실제 해당 기사가 공유된 SNS에서는 "전남대 전체가 이 하나만으로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을 만큼 통절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전남대뿐만 아니라 민주 성지 광주에서도, 이 사회에서도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드글드글할 것이다"는 반응을 보였다.한편, 킹 오브 킹스는 장 감독이 연출과 각본, 제작 등을 맡아 예수의 일생을 다룬 장편 3D 애니메이션 영화다. 북미 박스오피스 6천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단독 제작 영화로는 북미 흥행 역대 1위 기록을 달성했다. 이에 힘입어 이날 국내 전국 500개관·1천200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한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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