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예술단 단원들 눈높이 강습
초급·고급반 연령·직업도 다양
"발랑세·플리에" 강사 호령 따라
연습 시작부터 참가자 열기 후끈
매년 발표회…자신만의 무대도
"뜻깊은 추억 쌓는 계기돼 감사"


무용수들은 무대에 오르는 그 짧은 '한순간'을 위해 몇 달을 쉼 없이 연습한다. 강수진 발레리나의 성치 않은 발 사진과 알츠하이머에 걸리고서도 '백조의 호수'에 맞춰 환희에 젖은 눈망울로 안무를 하는 전직 발레리나의 모습 등을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피와 땀을 가늠해볼 수 있다.
56세 이정선씨는 무용과를 졸업하고 20대 시절 발레리나로 활동했다.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클래식 선율에 맞춰 우아한 몸짓을 선보였던 그는 어느새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고, 그렇게 토슈즈를 벗어둔 지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가 다시 발레복을 입게 된 것은 몇 해 전,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교실 발레반의 문을 두드리면서다.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시작했더라면 더 쉬웠을 텐데, 뻣뻣해진 몸에 남아있는 20대 때의 희미한 기억들이 그의 새 출발을 조금은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앞치마를 벗고 발레복을 입으면 비로소 '이정선'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퇴근 후 월요일과 수요일 시립발레단의 연습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마냥 가볍기만 하다.

◆유아부터 성인까지 즐기는 발레
광주예술의전당은 시민들이 함께 문화예술을 체험하며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실'을 연중 운영하고 있다. 시립예술단 단원들이 직접 강사로 활동하며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꼼꼼하게 강습해주기 때문에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된 광주시립발레단의 발레교실은 유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수준의 강좌를 진행한다.
수요일 오후 찾은 성인 발레 고급반은 늦은 시간 늦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회원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연습실이 후끈했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회원은 총 여섯 명으로,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여성 수강생들이었다. 고급반을 진두지휘하는 선생님은 광주시립발레단의 단원인 심재웅 발레리노. 어린 나이에도 '호두까기 인형'에서 아라비안 역과 무어 역을, '보이스오브스프링'에서 탈리스만 역 등으로 열연을 펼친 실력파다.
통거울이 크게 펼쳐진 연습실 앞에 선 수강생들은 먼저 발레바를 이용해 굳어있던 몸을 푸는 준비운동으로 시동을 걸었다. 전직 발레리나였던 이정선씨와 같이 발레와 연이 있던 회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발레를 접해본 적이 없는 일반 시민들이다.
"자,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해볼까요?"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자 여섯 명의 회원들은 두 줄로 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 맞춰 안무를 시작했다.
"발랑세 다음 플리에!"
선생님의 호령에 맞춰 단원들은 우아한 백조처럼 날아오르기도, 손을 동그랗게 모으며 연속적인 턴을 선보이기도 했다. 초급반보다 조금 더 디테일한 동작을 배우는 고급반에서는 수강생들의 질문도 잇따랐다. 한 회원이 스텝 순서를 헷갈려 하자 선생님은 직접 시범을 보이며 동작의 순서뿐만 아니라 시선과 표정까지 교정해주기도 했다.

◆객석에서는 '팬', 연습실에서는 '사제'
광주시립발레단의 발레교실 수강생들은 매년 연말마다 작품 발표회를 진행한다. 객석에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의 안무를 감상하며 박수를 치던 이들이, 직접 토슈즈를 신고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발레 무대를 펼치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3일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는 발레클래스 장면부터 대표적인 클래식 발레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다. '호두까기 인형', '유니언잭', '백조의 호수' 등의 작품을 시민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것이다.
2019년부터 발레교실 수업에 참여한 박새별씨는 광주과학고등학교 영어교사로, 평일 퇴근 후 시간을 내 발레 연습실로 걸음을 옮긴다. 평소 발레를 좋아했지만 직접 해본 경험은 전무했던 박씨는 어느 날 시립발레단 공연을 보러 갔다가 팸플릿 뒤에 붙은 발레교실 안내문을 보고 등록하게 됐다. 광주시립발레단 단원들이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발레를 알려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객석에 앉아있는 '팬'의 입장이었는데, 발레교실에서는 사제지간이 되니까 좋았다"며 "문화예술교실은 단순히 취미반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공연을 감상하는 수동적인 관객들이 참여하는 관객으로 바뀌면서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이로 인해 작품의 수도 늘어나고 퀄리티도 높아지고 결국 관객 수도 증가하며 문화예술 발전에 선순환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림이나 음악과는 달리 신체 곳곳을 사용해야 하는 발레의 경우에는 시민들이 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광주시의 지원을 통해 분기당 10만원 안팎의 가격으로 현역 시립발레단 단원들이 시민들에게 교육해주는 것이다.
박씨는 매년 발레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노윤정 단원에게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문화예술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이 처음 개설됐을 때부터 쭉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도해주시는 꾸준한 모습이 정말 멋있고 감사하다"며 "선생님 덕분에 많은 추억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때문에 박씨는 처음 발레교실 수업을 들었던 해인 2019년 문체부와 전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개최한 '문화예술교육 축제'에 광주예술의전당 대표로 전국적인 무대에 올라 수강생들의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 수강생은 몇 달 전 있었던 작품 발표회를 회상하며 "시민이 그런 큰 무대에 설 기회가 문화예술교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생기겠느냐"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정교한 연습이 만들어내는 우아함
이정선씨는 발레가 '솔직한 아름다움'이 있는 무용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답게 보이면 그렇게 보이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들여 노력해야 하며, 자칫 욕심을 부리면 부상을 입기 쉬워 반복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씨의 말처럼 선생님의 지도에 맞춰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수강생들의 모습은 그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작은 체구에서 발산되는 커다란 에너지와 손끝부터 발끝까지 디테일을 살린 우아한 몸짓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급반 선생님인 심재웅 발레리노는 올해 처음으로 발레교실을 운영하게 됐다. 지난해 작품 발표회를 보고 시민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반해 발레단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관객으로서 무용수들을 선망했던 박새별씨와 반대로, 심씨는 무용수로서 시민들의 모습에 새로운 도전을 할 용기를 얻게 됐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연습실을 찾아오는 수강생들에게 심씨는 "다들 본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로 와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발레를 하는 게 멋있고 대단하다"며 "발레리노로서 '일'로 발레를 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는데, 수강생분들은 조금 힘들더라도 즐기면서 '행복한 힘듦'으로 재밌게만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예술의전당이 매 분기 진행 중인 '문화예술교실' 프로그램은 발레교실 외에도 국악교실, 합창교실 등을 함께 운영 중이다. 국악교실은 판소리와 한국무용을, 발레교실은 유아·초등·성인반을, 합창교실은 여성합창반을 운영 중이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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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어른 김장하' 입소문 타고 인기몰이 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의 명신고 이사장 퇴임사 중)시대의 '어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진정한 어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묻는 다큐멘터리가 다시금 화제가 되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광주독립영화관은 오는 17일부터 영화 '어른 김장하'를 재개봉해 관객들을 맞이한다.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지난 2023년 개봉한 김현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한약방 대표이자 교육인, 시민활동가로서 일평생을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1944년 경남 사천군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열아홉 살 최연소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진주시 동성동에 '남성당한약방'을 열고 60여 년간 운영했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해 번 수익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며 나눔을 실천했다.김 선생은 1984년 100억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진주 명신고를 설립하고, 10여 년간 이사장으로 지내며 학교시설을 완비한 뒤 1991년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1천여 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주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외에도 교육·문화·여성·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건 없는 나눔을 실천하며 지역 사회 곳곳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왔다. 김 선생은 2022년 은퇴해 한약방 문을 닫고 현재 평범한 할아버지의 일상으로 돌아갔다.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최근에는 김 선생과 문형배 헌법재판관과의 인연이 재조명되며 영화 '어른 김장하'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문 재판관은 지난 2019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 선생이 안 계셨더라면 판사가 못 됐을 것"이라며 김 선생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문 재판관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김 선생을 만나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광주독립영화관을 비롯해 이달부터 전국 영화관 곳곳에서 영화가 재개봉해 다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에서도 '역주행'을 거듭해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순위권에 오르기도 했다.광주독립영화관은 오는 21일 오후 7시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도 진행할 예정이다. 행사에는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 이국언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등이 참석한다. 자신의 선행을 언론에 알리기를 기피했던 김 선생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다큐멘터리에 담아낸 김 기자의 취재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광주독립영화관 누리집을 통해 예매할 수 있으며, 상영시간과 자세한 정보도 누리집에서 확인 가능하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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