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딱딱한 도서관 이미지 '탈피'
공간 구조·인테리어 차별화로 발길 잡아
"침묵 강요받는 공간 결국 의미 잃는다"
경직성 깨야…기존 건축물 활용 방안도

"공간 구조나 인테리어가 예쁜 데다가 다른 도서관들은 조용해야 하는 데 반해 여기는 조금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아이들과 많이 놀러 와요."
최근 광주 동구 내남지구에 위치한 책정원도서관에서 만난 시민 김지연(38) 씨는 책 읽으러 온 게 아닌 '놀러 왔다'는 표현을 썼다.
김 씨는 금호동에 거주하지만 일부러 먼 거리를 이동해서라도 책정원을 방문한다고 했다. 그는 "집에서 가까운 공공도서관도 몇 개 있지만 아이들과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기도 하고, 광주에 아이들과 이렇게 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데 여기 오면 또래 아이들이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그의 자녀인 김바움(9) 양도 "공간이 예쁘고 재밌다"며 한마디 거들었다.
실제 이날 책정원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광주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대중교통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가용을 이용해 자녀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는 모습이다.

◆책 읽지 않는 시대? 책만 읽지는 않는 시대
책정원은 규모에 비해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해 주목받는다. 연면적 2천622㎡ 규모에 보관 중인 장서(전자책 제외)가 2만5천362권에 불과한 비교적 작은 도서관임에도 입소문을 타고 시민들의 큰 사랑을 얻는다.
사실상 본격 운영한 지난 한 해에만 도서관 누적 이용자는 16만3천457명이다. 휴무일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500명에 달하는 셈이다. 책정원 도서관 직원은 "외곽에 있어 평일에는 사람이 비교적 적지만, 휴일에는 다른 지역에서 많이 오다 보니 자리가 없어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덩달아 도서 대출권수도 지난해 14만3천570권에 이르렀다.
책정원 도서관이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비결은 '공간적 차별성'에 있다는 분석이다.
보통 도서관은 조용히 책을 읽고 대출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은 딱딱하고 엄숙하다는 편견에 쉽사리 발걸음을 향하지 않는다.
특히 갈수록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OTT 등 비대면 콘텐츠로 취미가 쏠리면서 공공도서관은 조용히 공부하기 위한 '열람실' 정도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다. 광주 공공도서관이 변화된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광주도서관 이용자 수는 2019년 690만명까지 기록했지만,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1년 203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2023년에도 453만명에 머무르며 코로나19 이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점차 회복세이긴 하지만 공공도서관이 많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매우 저조한 수치다.

◆머무르는 공간으로…책정원의 비결
그런 와중에도 몇몇 공공도서관은 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낸다.
이 도서관들의 공통점은 특별한 '공간 경험'에 있다는 분석이다. 책정원도서관도 이름에서처럼 실내·외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구조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된 건물이다. 유리창 너머로는 작은 정원이 펼쳐져 있고 실내 역시 나무와 식물로 꾸며져 있다.
이는 전통적인 공공도서관과 차별화되는 요소다. 한정된 예산 속에서 외관이 특별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책정원만의 특색 있는 공간 경험이 단순한 독서 공간이 아닌,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자리잡게 한 배경이다.
책정원 총괄계획가를 맡은 고재민 수원과학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는 도서관 기획 당시 단순히 책을 대여하고 읽는 침묵적 공간을 넘어 시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침묵이 강요받는 공간, 누구도 찾지 않는 공간은 결국 의미를 잃는다"며 "공간의 변화 없이는 절대 서비스가 이뤄질 수 없다. 문과 벽, 칸막이로 나눠진 공간에서 이제 개방형 공간으로 나가야 한다"고 공공도서관의 방향성을 짚기도 했다.

◆근대 건축물 등 기존 건축물 활용 필요
천득염 전남대학교 건축학부 석좌교수는 광주의 공공도서관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직성을 깨고 경험하는 공간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공공도서관을 새롭게 건축하기보다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특히 광주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을 공공도서관으로 만들 경우 매우 특별한 도서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천 석좌교수는 "공간에는 취향이나 감성, 일종의 조형성과 같은 특별한 감이 있어야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뭔가 힐링이 되거나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될 때 공공성을 띄게 된다"며 공공도서관의 조건을 언급했다. 이어 "하지만 공적인 재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적인 공간을 공적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등을 통해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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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어른 김장하' 입소문 타고 인기몰이 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의 명신고 이사장 퇴임사 중)시대의 '어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진정한 어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묻는 다큐멘터리가 다시금 화제가 되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광주독립영화관은 오는 17일부터 영화 '어른 김장하'를 재개봉해 관객들을 맞이한다.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지난 2023년 개봉한 김현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한약방 대표이자 교육인, 시민활동가로서 일평생을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1944년 경남 사천군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열아홉 살 최연소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진주시 동성동에 '남성당한약방'을 열고 60여 년간 운영했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해 번 수익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며 나눔을 실천했다.김 선생은 1984년 100억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진주 명신고를 설립하고, 10여 년간 이사장으로 지내며 학교시설을 완비한 뒤 1991년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1천여 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주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외에도 교육·문화·여성·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건 없는 나눔을 실천하며 지역 사회 곳곳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왔다. 김 선생은 2022년 은퇴해 한약방 문을 닫고 현재 평범한 할아버지의 일상으로 돌아갔다.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최근에는 김 선생과 문형배 헌법재판관과의 인연이 재조명되며 영화 '어른 김장하'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문 재판관은 지난 2019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 선생이 안 계셨더라면 판사가 못 됐을 것"이라며 김 선생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문 재판관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김 선생을 만나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광주독립영화관을 비롯해 이달부터 전국 영화관 곳곳에서 영화가 재개봉해 다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에서도 '역주행'을 거듭해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순위권에 오르기도 했다.광주독립영화관은 오는 21일 오후 7시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도 진행할 예정이다. 행사에는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 이국언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등이 참석한다. 자신의 선행을 언론에 알리기를 기피했던 김 선생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다큐멘터리에 담아낸 김 기자의 취재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광주독립영화관 누리집을 통해 예매할 수 있으며, 상영시간과 자세한 정보도 누리집에서 확인 가능하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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