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도려내는 아픔 있어야 새살··· 일체유심조 실천을"

입력 2025.01.23. 07:43 김혜진 기자
격동의 시기, 길을 묻다 ③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제왕적 권한 갖고자 해
군대 동원·억지 '재발'
힘의 논리로 반대 진영
청산하려드니 극단 갈등
정치 원로들 편가르기만
불교 사회적 역할은 '치유'
다수 국민 민주주의 수호
혼란할수록 내면에 집중

약력 ▲강진 출생 ▲1985년 수계 ▲2014년 동화사 주지 ▲2017년~ 화엄사 주지

화엄사 주지인 덕문스님은 매일 하루를 마친 뒤 빈 의자에 앉아 하루를 되감아 본다고 했다. 그날의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가 누구를 만났고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또 어떤 행사를 가졌고 나는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등을 생각해본다. 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며 그 다음날의 자신을 정비함으로써 하루하루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려고 한다고. 사적인 자기 다듬기 이지만 이는 곧 세상과 연결된다. 세상이 혼탁할수록 개개인이 자신을 정돈하고 중심을 잡아갈 때 사회도 안정의 흐름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덕문은 사바세계에서 부처의 연기설(緣起說)을 실천한다. 주지 선임을 두고 갈등이 심각하던 동화사에 주지로 임명돼 분란을 봉합하고, 천은사 관람료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불법에 어찌 출신이 있겠는가만은 호남출신 최초의 동화사주지로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갈등과 혼란의 세상에 수행자로, 실행자로 화엄의 세상을 구가하는 덕문스님의 말씀을 들어본다.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지난 18일 화엄사에서 무등일보와 신념 대담을 나누고 있다. 화엄사 제공

-광주·전남 지역민의 고통이 아주 심각합니다. 윤석열의 반헌법적 불법계엄으로 1980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신다면.

▲갖춰지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국민을 공격하는 등 제왕적 권한을 갖고자 했다. 민주화시대를 지나오며 상식적인 사회로 바뀌었다 생각했는데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 재발했다. 군대를 동원하거나 억지 쓰는 일이 다시는 없을 줄 알았는데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인가 생각이 들어 요즘 마음이 밝지 않다. 특히 1980년 광주를 봤던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깜짝 놀랐다. 우리 지역민들 다 같은 마음 아니었겠는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현실화됐을 때의 무서움은 말로 표현 못한다. 비상식적인 일로 인한 피해의 몫은 국민에게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제안하고 싶다. 좋은 식으로 이야기해 액땜했다 생각하는 것이다. 맞을 매 빨리 맞고 털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오히려 암울한 시대를 사는 것보다는 안 좋은 것들을 다 털어버리고 희망적인 새해를 맞이하려 했다 생각하면 좋겠다.

-현재의 정치 환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 보시나요.

▲1천500년 전, 통일신라가 나라를 통일하며 첫 번째로 한 일이 당시 가장 큰 가람인 화엄사를 짓는 것이었다. 지금의 위치에 지은 이유도 신라와 백제 중간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규모도 컸다. 지금보다 10배는 더 컸으니 통일신라에게 화엄사 중건의 의미가 어느정도로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언어와 문화는 달랐어도 불교라는 종교는 같았기 때문에 화엄사가 만들어졌다. 창건도 신라, 백제 출신이 아닌 인도에서 스님을 모셔와 할 정도로 양 나라의 화합을 가장 염두에 뒀다.

22대 총선 그래프를 보면 1천500년 전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싶다. 대통령이 되면 어떤 지역 출신이든, 어떤 정당 소속이든 첫 번째 할 일은 동서화합인데 잘 안됐다. 모든 정권이 정부가 들어선 순간부터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제도적 청산이 아닌, 힘의 논리로 반대 진영의 사람을 청산하려고만 하니 갈등이 좁혀질 수 없다. 마음 한 곳에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계속해서 쌓이다보니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았겠나. 원로 정치인들도 중재하는 사람은 없고 누구 편만 드는 사람만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에 갈등이 만연해졌습니다. 불교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까요.

▲코로나19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나와 남은 둘이 아님을 배웠다. 내가 아프면 중생도 아플 수 있고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이제는 내 한몸이 우주 법계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세상 모든 만물과 같이 가는 어울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러한 너와 나의 동질성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처님은 세상살이를 사바세상이라고 했다. 항상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것이 사바세상이다. 그 가운데 늘 행복해짐을 찾으려 노력해야하는데 '누구 탓이다'하는 것은 내 행복을 알지 못하는 불행을 이끌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 마음 속에 향기로운 꽃이 있느냐, 상대방을 그렇게 대하고 있느냐, 노력하고 있느냐를 내게 끊임 없이 물어야한다. 그래야 비로소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갈등에 실마리가 보일 것이며 자신의 행복도 함께 찾을 수 있다.

-

덕문스님

신년 법어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쳐 지역민들은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민, 모든 국민이 아프다. 그 가족들은 오죽하겠나. 인연을 다한 영가들이 극락왕생했으면 좋겠다. 수덕사 방장스님에 인사드리러 갔더니 하셨던 말씀이 있다. 영가들을 위로하는 글 한 자리, 축언 한 마디가 힘이 될 것이라고. 서로 포용해 아픔을 나누고 위로했으면 좋겠다. 치유가 조금이라도 빨라질 수 있도록 말이다.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가장 먼저 고통받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이러한 약자들을 돌보는 데 있어 국가나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이들이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나. 세상은 하루하루 가는 것이기에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내가 노력한 만큼은 반드시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하지 않겠나.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적으로 다같이 노력해야한다.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고 그 자리에 멈췄을 때 가장 어려운 법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그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야한다. 한 발 한발 나아가다보면 진정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기에 손 잡아 일으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줘야할 것이다.

-불교는 인간의 수행이나 수련의 과정, 방식을 중요시하는 종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한국 공동체와 불교는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오늘날 들어 더욱 중요한 역할이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갈등이 심화하는 세상에서 몹시도 중요하다. 너무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보는 것에서 오는 괴로움을 떨쳐내도록 나에게 집중하고 명상할 수 있는 곳이, 상처 받은 이가 치유 받을 수 있도록 말을 자꾸 들어주는 곳이 되어야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불교가 되어 한국 공동체의 안위를 도와야한다고 본다.

-이런 혼란한 상황 속 희망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그래도 많은 국민들이 집회에 참여해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대선처럼 간발의 차이라 할지라도 다수의 국민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있지 않나. 변함 없는 우리의 국민성에서 희망을 본다. 사회적 혼란으로 지금은 아프지만, 또 시간은 걸리겠지만 도려내는 아픔이 있어야 새 살이 돋을 수 있다.

-혼란한 때에 많은 이들의 일상 또한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까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가르침이 있다. 세상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 수 있으나 환경이 혼란할 수록 우리는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존재할까? 내가 없다면 가족도 남도 모두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우주이고, 나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렇다고 나만 소중하느냐. 그건 아니다. 내가 소중한만큼 모두가 소중하기에 모든 사람을 부처로 대해야 한다. 그래서 갖가지 고통을 참고 견뎌야하는 이 사바세계 속에서도 나의 내면에 집중하자는 이야기다. 이런 때 일수록 나 자신이 가장 존귀한 존재이니 잊지 않았으면 한다.

대담=조덕진주필 mdeung@mdilbo.com

정리=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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