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향한 주삿바늘, 그 선단의 끝에서

입력 2025.01.12. 14:54 최소원 기자
[시네마 천국] 코랄리 파르자 감독 ‘서브스턴스’
감각적 색채·세련된 편집 ‘몰입감’
‘바디 호러’ 장르…극 공포감 더해
엘리자베스 역 데미무어 연기 호평
현대사회 ‘외모지상주의’ 비판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유독 못나 보이는 날이 있다. 머리를 새롭게 만지고 화장을 고치고 옷을 바꿔 입어도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울 앞에 서서 생각한다. 눈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코가 조금만 더 오뚝하다면. 몇 킬로그램만 빠져도 더 예쁠 텐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폰 화면을 본다. SNS 속 연예인들은 어쩜 저렇게 아름답고 완벽한지 싶다. 사진을 확대해본다. 눈썹 한 올까지 가지런하고 모공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득 의문이 든다. 나와 같은 종(種)이 맞나?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최근 개봉한 영화 '서브스턴스'는 한때 '잘 나갔던' 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을 주인공으로 한다. 엘리자베스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주는 약물 '서브스턴스'를 주입해 모든 게 완벽한 '수'로 변신한 뒤 7일씩 두 개의 몸을 번갈아가며 살아간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감각적인 색채와 세련된 편집으로 단숨에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빨아들인다. 부담스러운 줌인, 정방형 프레임에 대한 집착과 자주 쓰이는 강렬한 원색은 초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현실 세계로부터 분리해놓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자주 등장하는 방송국 복도 세트장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대칭적인 화면 연출은 웨스 앤더슨을 연상케하는데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러닝타임 내내 화면에 대담한 여백을 둠으로써 독창성을 부여한다.

엘리자베스는 수로 살아가며 과거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되찾는다. 이로 인해 그의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가고 이내 수를 타자화함으로써 'She'로 호칭하기에 이른다. 자아 분열에 대한 혼란은 점차 깊어져 결국 엘리자베스를 집어삼킨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예상되기 때문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와 수의 대립이 시작되면 '본체'인 배우들의 이른바 '연기 차력쇼'도 함께 펼쳐진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역을 맡은 데미 무어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촬영 강도가 너무 세서 대상포진에 걸리고 체중이 20파운드(약 9㎏)나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말로 치닫는 영화는 수의 몰락을 통해 러닝타임 내내 과하게 선정적이고 관능적이었던 이유를 빠르고 강렬하게 해부한다. 선혈로 스크린 전체가 물들며 본격적인 슬래셔(신체를 난도질하는 잔혹한 내용을 담은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 파티가 시작된다. 극장에 들어서기 전 고어 장르임을 인지하고 봤음에도 피가 낭자한 충격적 장면의 연쇄에 눈을 깜빡일 수조차도 없다.

맹목적으로 추를 혐오하고 미를 추구하는 엘리자베스보다도, 감독은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 캐릭터를 더욱 추악하게 묘사한다. 먹는 것마저 게걸스러운 하비와 여성 모델들의 외모부터 몸매까지 낱낱이 뜯어보며 평가하는 방송국 관계자들. 그들의 혀끝과 시선의 끝자락에는 항상 카메라 렌즈가 자리한다.

이를 통해 완벽한 나를 만들어주는 마법의 약물 '서브스턴스'의 주삿바늘은 우리 사회임을 시사한다. 피상적으로 외모지상주의만을 추구하는 매스미디어가, SNS가, 혹은 우리의 눈과 혀끝이 낳게 되는 결과물은 아름다웠던 엘리자베스도 아름다운 수도 아닌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괴물'뿐이다.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근래 들어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창작물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 '미녀는 괴로워'를 시작으로 '내 ID는 강남미인!', '마스크걸' 등의 웹툰은 드라마화돼 미디어 믹스 흥행의 성공적인 사례로도 꼽힌다.

어쩌면 우리는 외모지상주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그 상황에 염증을 느껴온 걸지도 모른다. 미추의 기준은 다른 누가 아닌 '우리'가 함께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세워둔 철창에 갇힌 채 끝없는 자기혐오를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미모는 눈을 즐겁게 하지만, 상냥함은 영혼을 매혹시킨다(La beaute plait aux yeux, la douceur charme l'ame)'고 말했다. 심미적인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쾌락에 그칠 뿐이며 성품은 내면에 더욱 깊이 머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유일하게 엘리자베스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주던 중학교 동창 프레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격언이기도 하다.

감독은 자신이 구축한 '가장 완벽하게 아름다운' 수를 조금씩 망가뜨린다. 수의 첫 등장 신은 그 누가 보아도 넋을 놓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이는 수의 치아가 빠지고, 귀가 떨어지고, 점점 형체가 무너지는 순간보다 훨씬 전에 시작된다. 수가 엘리자베스의 몸뚱이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독선적인 행동을 이어갈 때부터였다.

누구든 추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을 일컫는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다. 얼굴, 몸매, 혹은 성격, 그리고 우리 존재 자체가 그 객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서브스턴스'를 주입할 것인가?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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