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북 소재 대학생 60명 참여
전일빌딩·금남로·옛 도청 돌아봐
'소년이 온다' 문재학 열사 사연
5·18 열사들 이야기에 '눈물바다'
"같은 상처 지닌 도시 치유 계기로"
"태국에서도 5·18민주화운동과 비슷한 역사가 있었어요. 많은 국민들이 아직 그 아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데, 광주에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서강대 어학당에 재학 중인 태국인 라타온판쑤안 학생은 한국의 영화 수업을 수강하며 한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소년이 온다'를 감명 깊게 읽은 그는 어느 날 캠퍼스에서 '대학생 한강문학기행' 프로젝트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는 태국과 광주의 아픔을 떠올리며 지체 없이 참가 신청을 했고 곧바로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지난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이틀간 광주 도심 곳곳에서 대학생 한강문학기행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광주문화재단과 5·18기념재단 등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서울과 경북 소재의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 60여 명이 참여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배경인 금남로와 전일빌딩, 옛 도청 등을 둘러보며 주인공 동호의 여정을 따라가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30일 오후 전일빌딩245 1층에 마련된 미니북카페에 모인 학생들은 광주 지역에서 활동 중인 이진 소설가와 대담 시간을 가졌다. 이날 이 작가는 '인권감수성의 새로운 지평-광주 5월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떠나 전남대 80학번 학생으로서 한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듣고 부럽고, 또 기뻤다"며 "몇 년 전까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광주의 이야기를 차마 쓰지 못하다 2017년쯤 '소년이 온다'를 보고 용기를 가져 장편 소설을 탈고했다"는 비화와 함께 작가가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당시 광주 이야기를 전했다.
계엄군의 총칼 아래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평범한 시민들의 5월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은 쓰고 있던 마스크를 내리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최은아 학생(숙명여대)은 학창 시절 대부분을 대구에서 보내며 역사를 폄훼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지하철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고 그 사람들에게 한 마디도 못했던 내가 방관자로 느껴져 오늘의 배움을 바탕으로 대구에서 같은 상황을 목격한다면 바로잡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 작가와의 대담을 마친 학생들은 전일빌딩245 건물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 탄환 자국과 사진, 동영상 등 역사 기록물을 관람했다. 해설사로부터 윤상원 열사와 최미애 열사의 이야기를 듣던 한 학생이 오열하자 함께 동행한 친구들까지 덩달아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전시관을 둘러본 학생들은 소설 속에서 나오지 않았던 그날의 기록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전시된 양푼 그릇을 통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주먹밥'의 의미를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기행단은 서구에 위치한 5·18교육관으로 이동해 '소년이 온다' 주인공 동호의 모티브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인 김길자 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여사가 문 열사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객석 곳곳에선 훌쩍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김 여사는 "40년이 넘도록 5월의 일들을 알리기 위해 한 평생을 바쳤는데, 한강 작가님이 책 한 권으로 전 세계에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한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듣고, 우리 재학이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이튿날인 12월 1일 5·18민주묘역으로 이동해 참배와 순례의 시간을 가진 후 전남대에서 김영삼 국문과 교수가 진행한 '한강의 시선으로 광주를 보다' 강연을 듣고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김상천 학생(경북대)은 "대구에도 수만 명의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던 10월 항쟁,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사건 등 비슷한 아픔이 있지만 이런 일들을 공공연하게 얘기하기가 어려운 게 실상이다"며 "5월의 아픔을 잘 보듬은 광주의 모습을 배워 대구의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영상=손민아수습기자 minah8684@mdilbo.com
- "침체된 지역 문화 회복 계기 되길" 지난해 12월 4일 탄핵 집회 참여한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들 계엄 이후 43일 동안 두문불출하며 검찰 조사 출석을 거부하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된 가운데 지역 문화계는 이에 대한 반가움을 나타내며 희망찬 미래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공수처가 15일 오전 10시 33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18일과 25일, 29일 세 차례에 걸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바 있다.이에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속 시원한 반가움을 드러내고 있다.김병택 광주민족미술협의회 회장은 새벽부터 지켜봤다며 체포 소식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광주민미협 회원들과 매일 밤 금남로 집회에 참여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피켓 만들기 자원봉사에 참여해왔다.그는 "너무나 환영하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어느정도 법과 원칙, 질서가 설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며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경제나 민생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문화계는 이미 초토화됐다. 침체된 문화계 행사들이 앞으로는 되살아나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말했다.상황을 지켜보느라 잠 한숨 못잤다는 임해정 토박이 대표는 체포영장이 집행되어 기분이 좋다가도 헌정 사상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은 처음이라 역사적으로 안타깝기도 하다고.임 대표는 "공수처가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 같은데 국민의힘 일부 국회의원들이 한남동 저택 앞에 나온 모습, 끝까지 뻔뻔한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 등을 보면서 구속이 되고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될때까지 아직 끝난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도 있다"며 "그동안 '오월극'을 많이 해오면서 비상계엄과 계엄군의 폭력 등의 단어를 일상 속에 가지고 살아왔는데 지난해 12월 3일은 너무나 무서운 날이었다. 윤 대통령의 체포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달했다.고난영 광주연극협회 회장은 '속이 시원하다'는 말로 심정을 설명했다.고 회장은 "영장 집행 전 녹화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영상은 어이가 없다. 국민 대다수가 계엄선포는 잘못됐다고 이야기 하는데 혼자서만 자기를 옹호하는 그 모습을 보고 망상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며 "공수처가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 같은데 법대로 해서 구속이 됐으면 좋겠다. 내란을 일으켰으면 구속이 돼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정양주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정 회장은 "광주전남 작가들끼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도 '즐겁고 기쁜 일'이라는 반응이 속속들이 올라왔다. 며칠동안 비상계엄령과 탄핵 이슈로 인한 불면증을 앓기도하고 글을 쓸 때도 집중력이 떨어졌는데, 당분간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오늘 일을 계기로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법을 새로이 모색해야 되며,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와 정치의 지형에 변화가 일어나는 데에 문인들이 더욱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한재섭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사무처장은 다양성 영화의 활성화를 기대했다.한 사무처장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영진위의 지역영화활성화 사업이 지난해 완전히 폐지되고, 영진위 위원 선임 문제에서도 각종 논란이 끊이질 않는 등 독립·지역 영화의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느끼는 일들이 빈번했다"며 "체포 이후 정권이 교체될 시, 이러한 문제들이 개선되고 원상복귀가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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