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의 문제제기
한국 도시문제에 시민주도 없어 아쉬워
지자체 적극적 역할, 시민참여 필요한 때
광주 풍부함 독창적 모델 만들어 가길
1990년대 유럽연합이 '문화수도' 정책을 추진한 이래 문화예술은 도시경쟁력의 강력한 수단으로 등극했다. 그 여정에 역사적 건축물 등 공간을 보존하거나, 쇠퇴한 지역에 문화예술을 투입하는 다양한 형식의 도시운동이 전개됐다.
허나 많은 경우 보존된 문화·역사적 자산이 상품,테마파크가 돼 해당 지역에 경제적 부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지역민의 일상을 앗아가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당초 그곳의 주인이었던 이들, 그 풍경을 누리던 이들 중 가난한 계층, 사회적 약자들은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보기에만 예쁜 부자들의 풍경'으로 내몰리고 만다.
당최 보존이란 무엇이며, 누굴 위한 것인가.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국어교육과교수가 서울을 비롯한 세계 도시들의 전통보존의 역사를 살펴보며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언어순례자이자 도시 탐구가인 로버트 파우저가 최근 동명동 독립책방 '동명책방 꽃이피다'에서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북콘서트를 가졌다. 보존과 개발(도시재생적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기껏 잘 보존해놨는데 그곳에 거주할 수 있는 건 원래 살던 사람이 아니다. 살고 싶지만 살 수가 없다. 살 수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부촌'이다"
"세상은 이렇게 위기 일색인 데다 역사적 경관보존의 결과로부터 정작 일반 시민들은 소외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역사적 경관보존인가를 함께 생각하고 준비해가야 한다"('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중에서)
이 책은 얼핏 세계 도시들의 역사보존 면면을 소개하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지금 우리사회의 보존(혹은 재생)의 과정과 미래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파우저는 보존된 도시경관, 풍경은 누가 누리는가, 원래 살던 지역민이 배제되는(젠트리피케이션)것은 온당한가, '왜, 무엇을 위해 보존하는가'라고 묻고 "종교나 국가, 애향심 등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관보존 원동력 배경들이 갈수록 다양해져 가는데 지난날의 영화를 기념하기보다 주어진 어려움과 한계 속에 열심히 살았던 이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삶을 기념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어떨까?"라고 되묻는다.
파우저는 산업혁명과 1~2차 대전을 거치며 본격화된 미국과 유럽도시, 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전통보존이란 잣대로 다양한 항목들로 살펴본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 1920~1930년대부터 역사적 건축물이나 그 일대 '지역(지구)'을 보존하는 운동이 진행됐다. 보존을 통해 정통성을 획득하려는 욕구에서부터 지역을 '아름답게' 꾸며 살기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욕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기독교 도시 로마와 이식된 불교 등을 보존했던 일본교토 등 종교유산을 보존한 사례를 시작으로 애국주의 전시장(미국 윌리엄즈버그와 일본 나라), 애향심으로 고향을 '아름답게' 지키고(미국 찰스턴·뉴올리언즈·샌안토니오), 사회적 저항(미국 뉴욕과 독일 베를린), 평화의 상징으로(일본 히로시마와 독일 드레스덴), 제국주의 수도(런던·파리·이스탄불·베이징·빈) 사례에 우리나라 경주·전주·서울을 함께 고찰했다.
다양한 도시들의 보존에 관한 시대적 사회적 분위기를 살피며 이들이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를 살펴본다.
이 중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찰스턴·뉴올리언즈·샌안토니오의 사례는 이 '애향심'의 대열에서 아직 사회적으로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흑인과 가난한 이들이 배제된다.
-'서촌홀릭'을 선보인 후 '도시독법'、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등 도시에 관한 책을 내고 있다. 언어학자가 도시에 관한 책을 내게 된 배경은
▲서울대 국어교육과 부교수 시절 한옥이 좋아 서촌을 찾아갔다가 당시 서촌에 불어닥친 '재개발' 바람과 맞부딪쳤다. 처음에는 그 뜻을 몰랐다. 알고 보니 '동네를 전부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서촌은 사람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한옥이 즐비했고 학생이나 전문직, 토박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울려 사는, 말 그대로 사람 내음 물씬 나는 곳이었다. 그 즈음 서울시가 주민 대상 설명회를 했다. 화가나 문인의 집을 보존한다는 홍보 안내가 있었는데 '이상의 집'을 헌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토록 아름다운 공간이 없어지는 걸 견딜 수 없었다. SNS로 같은 생각의 사람들을 규합했다. '첫' 모임은 단 두 명으로 시작했다. 점차 사람이 늘어 '보존'운동이 전개됐으나 저항은 거세고 격렬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박원순 시장 체제 들어선 후 '보존'의 길을 걷게 됐다.
서촌 보존운동의 한 중심이 되면서 도시에 관해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일관되게 향유 주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거주민, 지역민이 주인일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그런 문제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한국에서 보존이나 도시재생은 관이나 전문가 중심으로 전개되고 주민이 주도한 경우가 드문 것 같다. 대부분 전문가나 행정이 주도하는 것이 좀 아쉽다.주민들이 처음부터 주체로 참여하면서 행정이 함께 적극적으로 이후를 대비해가야 한다. 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통 보존 등에 있어 행정, 정부나 자치단체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하다. 갤러리가 밀집해 있는 뉴욕 첼시의 경우 뉴욕시 당국이 개입해 건물주 등 지역민과 만들어낸 경우다. 지금은 뉴욕 핵심 관광지 중 하나 아닌가.
도시의 보존 등에 있어서 자치단체의 철학, 이에 기반한 역할이 핵심적 요소라는 설명이다.
-'보존' 혹은 '재생적 개발' 등에서 지역민 일상이 배제되고 밀려나는 부작용이 많다.
▲그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그토록 고생해서 보존한 아름다운 서촌을 서촌 주민들이 누릴 수 없는 사례가 딱 그 경우다. 세탁소나 맥주집 등 소소한 일상을 누릴 상점들이 사라지고, 관광객을 위한 상점이 들어서는 등 일상이 심하게 훼손당한다. 무엇보다 집값이 뛰어 학생 등 이곳을 거주지로 하던 이들이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됐다.
기껏 잘 보존해놨는데 거주할 수 있는 건 원래 살던 사람이 아니다. 살고 싶지만 살 수가 없다. 살 수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부촌'이 돼버린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위기 일색인데다 역사적 경관보존의 결과로부터 정작 일반 시민들은 소외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역사적 경관보존인가를 함께 생각하고 준비해가야 한다.
-광주 도시는 어떤가.
▲광주는 5·18이라는 거룩한 역사가 있고 음식과 문화예술 등 풍부한 문화적 자산이 있는 곳이다.
다만 몇년 만에 와 본 광주도 양림동이나 동명동 등의 경우 무분별하게 자본이 개입되면서 본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부터라도 지역사회가 미래의 모습을 고민하고 설계하면서 가꿔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유재산 침해논란도 지역사회의 논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미국처럼 사유재산정신이 강한 나라에서도 공공성을 위해서는 사유재산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이미 1930년대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런 정신이 사회에 공유되고 있다. 뉴욕이나 파리 등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도 처음에는 갈등을 겪었지만 '보존지구' 등으로 사유재산도 공공의 영역에서 개입될 수 있다는 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해당 지역의 삶이 풍성하게 만들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
▲언어란 문화다. 특별한 비결이랄 것은 없고 대상(국가든 사람이든)에 대한 호기심, 호의적인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아버지가 2차대전 말기 패전 일본의 교토에서 건축 설계를 하셨던 인연이 있다. 교토에 대한 호기심으로 고교 때 홈스테이를 하고 미시간대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됐다. 일본과 인연이 되면서 가까운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로버트 파우저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내는 등 한국과 일본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한국어 교육에 관한 공로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하는 등 우리나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서촌홀릭'을 시작으로 한국어로 된 도시관련 책과 '외국어전파담' 등 언어관련 책을 다수 출간했다.
대담 조덕진주필
- 광주송정역 '빛의 관문' 조성···문화예술공간 재탄생 광주시가 다양한 작가의 작품 등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보여주는 광주송정역 '빛의 관문' 조성사업을 완료하면서 광주의 관문인 송정역이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했다.광주시는 지난 8월 31일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벨트 5권역 사업인 광주송정역 '빛의 관문' 사업을 완료하고, 지난 9일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광주시는 지난 2014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되며 시민이 일상에서 미디어아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2019년부터 총 18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1~5권역 미디어아트 창의벨트 조성사업을 진행했다.1~2권역은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대와 금남로 공원 등에 '민주와 인권', '힐링과 치유'를 주제로 지난 2022년 3월 준공했다. 3~4권역은 남구 사직공원에 사직단, 동물원 등 추억을 보여주는 '빛의 숲'과 남구 양림동 일원에 근대유산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광주의 시간 여행지'로 구성됐으며 지난 2023년 12월 조성을 완료했다.마지막 5번째 권역인 광주송정역 '빛의 관문'은 지난 2023년 12월 사업을 추진해 지난 8월 31일 완료됐으며 총 22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됐다.광주송정역 '빛의 관문'은 광주의 첫 관문인 송정역 앞 지하철 5번 출구 벽면에 대형 LED스크린을 설치해 광주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다양한 작가의 작품 등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제공한다. 출구 옆 도로쪽은 교통에 방해되지 않도록 다양한 색깔의 콘텐츠를 제한하고 광주의 글귀, 광주시 로고를 형상화한 이미지 등을 채도가 낮은 단색으로 간결하게 표현했다.광주송정역 '빛의 관문'은 '빛과 기술을 연결하다', '도시와 미디어를 연결하다', '공공과 예술을 연결하다' 등 총 3개 테마와 14개의 세부 콘텐츠로 구성됐다.첫 번째 테마 '빛과 기술을 연결하다'는 송정역에서 마주하는 '광주'라는 도시를 '광주의 맛'과 '인공지능(AI)', '빛'을 통해 맛의 도시, 인공지능(AI)과 함께하는 미래도시 광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휴양지에서 보내는 반려동물의 하루를 표현한 '어반테라피 등을 미디어아트로 표현하며 광주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특별한 첫인상을 선보인다.두 번째 테마 '도시와 미디어를 연결하다'는 동구의 청년예술가 협동조합 '플리마코', 서구의 '청춘발산마을', 남구의 '양림동 펭귄마을', 북구의 지역공방 '소잉', 광산구의 '송정역1913시장' 등 현재 모습을 팝아트와 결합해 표현한 '시티프레젠트'를 보여준다. 또 초현실주의 예술기법에 착안해 실시간 날씨의 변화(맑음, 비, 눈 등)를 생동감 있게 표현한 '날씨의 창' 등도 관람객에게 광주 곳곳의 생동감 있는 매력을 선물한다.세 번째 테마 '공공과 예술을 연결하다'는 국내·외 작가 9편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아나모픽 기법 등을 활용해 다채롭게 표현한다.김안나 작가의 '엘리뇨&라니냐'는 가상 인물을 설정해 글로벌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3D그래픽으로 형상화하고, 이예승 작가의 '청류구곡'은 작품 속 움직이는 QR코드에 접속해 아름다운 구곡의 풍경을 경험하게 만들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습을 선보인다.이이남 작가의 '87마리 새'는 광주의 옛 만남의 장소이자 동물원이었던 사직공원의 생태공간을 모티브로, 잊혀지고 사라진 동물들을 디지털로 재현한다.광주송정역 '빛의 관문'은 지난 9일부터 약 2주간 LED, 미디어아트 콘텐츠 안전성 등을 확인하는 시범 운영을 거쳐 9월 말 개막식을 통해 정식 운영할 예정이다.김성배 문화체육실장은 "광주송정역 '빛의 관문'을 마지막으로 미디어아트 창의벨트 5개 권역사업이 마무리됐다"며 "광주비엔날레, 추석 명절 등을 맞아 광주를 방문하는 귀성객, 외지인 등 시민들에게 광주 곳곳에 설치된 미디어아트를 통해 재미와 감동을 주고 미디어아트가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석호기자 haitai200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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