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환경과 시대 특성 담긴 삶의 무대

입력 2024.04.24. 17:04 김혜진 기자
[마을 문화원형의 재발견⑪-광산구 장덕동 근대한옥]
하남동 김봉호 가옥에서 시민들이 가옥과 연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광산구 제공

높다란 대단지 아파트와 즐비한 상가시설, 대형 아울렛이 북적이는 수완지구 한복판에는 사뭇 이질적인 건축물이 있다. 대형 아울렛 인근에 자리한, 장덕동 근대한옥으로 불리는 건축물이 그것이다.

지금은 택지 개발로 사라진 지번인 광산구 장덕동 527번지에 자리했던 가옥이다. 지난 2004년 수완지구가 만들어지며 헐릴 위기에 처했지만 이 가옥의 후손들이 필사적으로 지켜낸 결과물이다.

이 가옥은 효령대군의 손자인 율원군 후손들이 1920년대 지어 거주한 주택이다. 근대기에 지어진 한옥이지만 전통 구조와 기본 양식을 유지하며 근대 기술과 재료를 사용했다.

한 일(一)자의 본채와 대문채로 구성돼 있고 하마비(下馬碑)와 율원군 유허비(遺墟碑)가 남아있다.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게 된 장덕동 근대한옥은 2004년 12월, 근대적으로 변용한 전통 가옥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남동 김봉호 가옥. 광산구 제공

현재 이곳은 시민 문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근대 한옥이라는 공간성을 바탕 삼아 전통 공연과 한옥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펼쳐지며, 주체적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이끌어가기 위한 인문학당인 시민자유대학 등이 이곳을 거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광산구에 또 있다. 하남동에 자리한 김봉호 가옥이다.

2000년, 하남지역을 개발할 당시 이 집의 주인인 김봉호씨가 광주시장을 찾아가 문화재 지정을 의뢰하며 지켜낸 집이다. 1940년대에 건립된 가옥으로 여타 근대 한옥에 비해 최근의 건축물이지만 당시 건립된 전형적 농촌가옥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 일(一)자의 안채와 문간채, 헛간, 우물, 돈사(豚舍)와 계사(鷄舍), 잠실(蠶室)을 두고 있으며 특히 안채 경우는 큰 방과 대청, 건넌방 위에 대청 다락(공루)이 설치돼 있는데 당시 대개 1칸 정도로 설치됐던 것에 비해 규모가 크고 높이가 높다. 이 공루는 이 집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나다.

특히 이 가옥은 농촌가옥이지만 상류층 가옥에 비해 손색 없는 공간 배치와 건축 재료 등이 주목된다. 또 농사에 쓰였던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 등이 잘 보존돼 있어 민속학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지켜진 김봉호 가옥에서는 현재 광산구가 '농가의 사계' 등 농촌가옥에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 가옥을 시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호응을 얻고 있다.

장덕동 근대한옥은 전통 한옥의 구조를 유지한 채 근대 기술과 재료를 사용한 점에서 전통의 근대적 변용 사례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인정 받아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광산구 제공

이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들이 해당 가옥 뿐만 아니라 근대 한옥의 아름다움, 우리 지역 한옥의 특징과 가치 등을 직접 체험하고 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같은 시기 지어진 농촌 가옥들이 인구소멸로 사람이 떠난 후 점차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김봉호 가옥이 갖는 의미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역 한옥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축물은 양림동의 이장우 가옥이다. 이 가옥 또한 근대화 시기의 가옥으로 정병호가 1899년 안채를 짓고 1935년 문간채를 만든 집이다. 이후 1965년 이장우 박사가 매입해 사랑채와 행랑채, 곳간채를 완성한 가옥으로 원형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다.

양림동 이장우 가옥은 기역(ㄱ)자 형태의 남도 상류층 가옥이다. 광주시 제공

이곳의 안채는 기역(ㄱ)자 형태이며 부속채가 많고 대지가 넓은 상류층 가옥이다. 1989년 광주시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바 있으며 곳간채는 화재로 소실됐다가 2009년 복원되기도 했다.

현재 가옥 소유주는 해인학원이다. 해인학원은 지난해부터 가옥을 상시 개방하며 시민은 물론이고 광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우리 지역 근대 한옥의 특징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양림동과 그 인근에는 웅장함을 자랑하는 몇몇 고택이 있으나 거주 중이거나 여타의 이유 등으로 개방되지 않고 있어 양림동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이장우 가옥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근대기 지어진 한옥들은 지역 한옥의 전통은 유지하면서도 근대기의 기술과 재료를 충분히 활용해 우리 삶에 알맞게 변용했다는 점에서 지역과 시대 특성을 담아낸 우리 주변의 소중한 자산이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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