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 일상과 역사 함께 한 존재로 소중"

입력 2024.03.27. 19:43 김혜진 기자
마을문화원형의 재발견<8>광주 서구 뽕뽕다리
부유진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사 인터뷰
부유진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사

"다리는 광주 사람들의 일상과 역사를 함께 했기에 우리가 소중히 생각해야 할 문화 자산입니다."

부유진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학예사는 다리에 대한 의미를 이같이 말했다. 다리를 건설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역사적, 생활사적 자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부 학예사는 광주 원도심은 광주천에 둘러싸여 형성됐기 때문에 이곳의 통행을 위해서는 우리 지역엔 다리가 반드시 필요했다고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그는 "조선시대에는 흙으로 만든 노지다리를 건너 읍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며 "현재 우리가 보는 근대식 교량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7년의 일로, 목재다리로 지어졌다가 1935년에 철근콘크리트로 개축됐다"고 말했다.

이후 다리는 시민의 일상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다리 하나로 생활 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 학예사는 "조선시대에는 노지다리를 건너면 큰 장과 작은 장이 다르게 펼쳐졌고 많은 이들이 운집한 광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이었다고 한다"며 "1929년 11월, 광주 학생들은 당시 부동교로 불렸던 금교를 지나 광주천을 건너기도 했고 광복 후, 발산마을과 임동의 방직공장을 잇는 뽕뽕다리로는 도시 광주를 일군 청년들의 고된 걸음이 이어졌다"고 이야기했다.

이같은 역사와 지역 이야기가 서려 있음에도 다리에 대한 문화자원으로의 인식이 부족한 것에 대해 그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다리 위에 서 있으면서도 공간을 잇는 '다리'라는 사실에 무감각해져 있다"며 "비로소 우리에게 공간을 넘어 장소가 되어 온 광주의 다리에서 광주 역사를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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