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위가 슬 찾아올 무렵인 지난해 5월, 광주천 주변이 붐볐다. 평소 산책길로 애용되던 천변 산책로가 아닌 도로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북적인 이유는 50여년 만에 반가운 존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서구 발산마을과 임동 방직공장 사이를 이어주던 뽕뽕다리가 그 주인공.
뽕뽕다리는 지역 스토리텔링 자원으로도 이제는 유명하다. 방직산업이 호황을 이루던 1960년대 임동의 방직공장으로 전국 각지의 여공들이 일을 하기 몰려 들었는데 그 수가 많아 직원 기숙사로 감당하지 못하자 여공들이 비교적 방값이 저렴한 인근의 발산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임동과 발산마을을 이어주는 이 뽕뽕다리를 애용했다는 이야기다.
어려웠던 시절, 구멍이 '뽕뽕' 뚫린 옛 안전발판을 이용해 만든 다리는 지역 곳곳에 있었으나 강력한 스토리텔링이 덧붙여지며 발산마을-임동 뽕뽕다리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다리를 세운 주체나 가설 시기는 불분명하다. 방직공장 측이 발산마을에 거주하는 직원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전남도 산하기관이 가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설시기도 불분명하나 여러 사료를 통해 추측할 수는 있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이 펴낸 '광주천'에 따르면 1964년과 1965년 사이에 가설된 것으로 추측된다. '광주시사'에 따르면 1964년 기준 뽕뽕다리를 '전방인도교'라고 소개하며 다리가 목조식으로 돼있다고 기록했으나 같은 책에서 1965년 기준으로는 '전방인도교'가 '구멍철재'로 돼있다고 소개한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옛 뽕뽕다리 사진 또한 김홍인 작가가 1967년에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멍이 뽕뽕 뚫린 다리는 통행 편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이힐을 신고 건너던 여성들은 힐이 구멍으로 빠져 걷기가 옹삭스러웠던 것은 물론이고 철판을 이어 만든 다리라 자전거가 지나갈 때면 다리가 크게 흔들려 주민들이 무서워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인근 주민들은 길을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되기에 이 뽕뽕다리를 애용할 수밖에 없었다. 통행 편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생활 편의에 도움을 준 다리이다.
임동과 발산마을을 연결해 주던 뽕뽕다리는 1973년 인근에 발산교가 들어서면서 점차 주민 사용이 줄어 들었고 1975년에는 홍수에 떠내려가 사라졌다.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회자되고, 결국 현대에 들어 이를 재해석한 뽕뽕다리가 다시 들어선 것은 다리라는 존재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강력한 문화적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처럼 뽕뽕다리는 지역 생활사, 산업사, 문화사에 걸쳐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다리들이 존재한다.
이 다리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의 지형이나 생활상, 역사 등이 담겨 있다.
동명동의 동지교 또한 그렇다. 동지교는 농장다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농장다리는 강이 아닌 철길로 분절된 동명동과 지산동을 이어주던 다리다. 현재는 폐선부지가 푸른길이 돼 철로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농장다리가 존재함으로써 과거를 회상할 수 있고 어렴풋이 상상해 볼 수 있다.
동지교란 이름을 두고 농장다리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1년 북구 문흥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광주교도소는 1912년부터 동명동에 자리했다. 이곳 재소자 중 모범수들은 노역을 하기 위해 현재 법원거리로 변화한 광주교도소 농장으로 걸어가곤 했는데 그때 건너다녔던 다리가 동지교다.

인근 주민들은 동지교라는 이름 대신 '재소자들이 농장으로 가기 위해 건넜던 다리'라는 뜻에서 농장다리라는 별칭을 주로 사용한 것.
복역수들이 이 다리를 건널 때면 아이들은 이들에게 말을 걸며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복역수들은 아이들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자신들이 지은 고구마나 무를 챙겨 던져주기도 했다 전해진다. 배고픈 시절 마을 아이들에게는 배를 채울 군것질거리를 선물 받는 장소로, 세상과 단절돼 복역했던 재소자들에게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장소로 기억되는 다리인 것이다.
이후 농장다리는 1979년 콘크리트 다리로 재가설했다가 경전선 폐선 이후 2014년 다리를 철거하고 도로시설 기준에 맞게 재가설했다. 철거와 재가설이 이어졌음에도 인근 주민들은 동지교라는 이름 대신 농장다리라는 별칭을 아직 사용하고 있다. 현재 인근 버스 정류장 이름 또한 주민에게 친숙한 '농장다리'를 사용하고 있다.

광주천 본류의 50여개 다리 중 부동교는 광주천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933년 준공식을 가져 이때 준공된 것으로 많이 알려졌으나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이 발간한 '광주천'에 따르면 부동교의 당시 교명주 사진에서 1932년 12월 준공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 초 지어진 시설 가운데 광주 시내에 남아 있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을 생각하면 부동교는 광주천 다리 중 가장 오래된 다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부동교란 이름은 지역 지형과 관련한 의미를 갖는다. 이름인 부동(不動)은 인근 불로동에서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불로동은 일제강점기까지 '부동'으로 불렸다. 이곳은 광주천 물줄기를 바로 맞아야 하는 위치로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석축제방을 쌓고 제방림을 심는 등 광주천 홍수를 막고자 했다. 이와 함께 동네 이름을 '부동(不動)'이라 지은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곳의 가설 위치 또한 일제강점기라는 역사가 숨어 있기도 하다. 위치상 상류의 금교와 하류의 광주교의 중간에 다리가 놓여야 적절했으나, 부동교를 가설할 당시의 사료를 살펴보면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많이 사는 불로동, 황금동과 가까운 당시 유명 요정인 하루노야 일대에 다리를 가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정치적으로 힘이 센 일본인들의 주장에 따라 부동교는 지금의 위치에 세워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다리에 대해 "다리는 기능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지형이나 지리, 역사, 생활상 등이 다리의 위치와 이름 등에 담겨 있다"며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다리가 하나의 건설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원형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고 말한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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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어른 김장하' 입소문 타고 인기몰이 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김장하 선생의 명신고 이사장 퇴임사 중)시대의 '어른'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진정한 어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묻는 다큐멘터리가 다시금 화제가 되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광주독립영화관은 오는 17일부터 영화 '어른 김장하'를 재개봉해 관객들을 맞이한다.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지난 2023년 개봉한 김현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한약방 대표이자 교육인, 시민활동가로서 일평생을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1944년 경남 사천군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열아홉 살 최연소 한약업사 자격을 얻어 진주시 동성동에 '남성당한약방'을 열고 60여 년간 운영했다. 그는 한약방을 운영해 번 수익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며 나눔을 실천했다.김 선생은 1984년 100억원이 넘는 사재를 들여 진주 명신고를 설립하고, 10여 년간 이사장으로 지내며 학교시설을 완비한 뒤 1991년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또한 젊은 시절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1천여 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주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외에도 교육·문화·여성·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건 없는 나눔을 실천하며 지역 사회 곳곳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왔다. 김 선생은 2022년 은퇴해 한약방 문을 닫고 현재 평범한 할아버지의 일상으로 돌아갔다.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컷최근에는 김 선생과 문형배 헌법재판관과의 인연이 재조명되며 영화 '어른 김장하'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문 재판관은 지난 2019년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 선생이 안 계셨더라면 판사가 못 됐을 것"이라며 김 선생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문 재판관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김 선생을 만나 대학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광주독립영화관을 비롯해 이달부터 전국 영화관 곳곳에서 영화가 재개봉해 다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플릭스에서도 '역주행'을 거듭해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순위권에 오르기도 했다.광주독립영화관은 오는 21일 오후 7시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도 진행할 예정이다. 행사에는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 이국언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등이 참석한다. 자신의 선행을 언론에 알리기를 기피했던 김 선생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다큐멘터리에 담아낸 김 기자의 취재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광주독립영화관 누리집을 통해 예매할 수 있으며, 상영시간과 자세한 정보도 누리집에서 확인 가능하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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