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인생작 탄생 ‘바튼 아카데미’
키네마준보 일본영화 1위 ‘오키쿠와 세계’
‘여기는 아미코’·'갓랜드'·'가여운 것들' 등 다채
24일 임선애 감독 영화 '세기말의 사랑' GV

광주극장은 이달부터 다음달까지 새롭게 개봉하는 상영작 5편을 공개했다.
21일에 개봉한 '바튼 아카데미'는 1970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모두가 떠난 학교에 남게 된 역사 선생님 '폴'과 문제아 '털리'가 주방장 '메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가슴 따뜻한 위로를 나누게 되는 이야기다.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폴 지아마티가 20년 만에 다시 만난 작품으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총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또 전세계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총 190개 부문 노미네이트, 105개 부문 수상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같은날 개봉한 '오키쿠와 세계'는 19세기에도 시대,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와 인분을 사고파는 분뇨업자 '야스케'와 츄지', 반짝이는 세 남녀의 사랑과 청춘을 경쾌하게 담은 시대극이다.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30번째 작품이자 최초의 오리지널 각본으로 완성됐고, 2023년 화제의 일본 영화 '괴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제치고 제97회 키네마준보 일본영화 BEST10 1위 및 각본상 2관왕, 제78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에서 대상, 각본상, 녹음상 3관왕을 수상했다.

오는 28일에 개봉하는 '여기는 아미코'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이자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한 이마무라 나쓰코의 데뷔 소설 '여기는 아미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또래에 비해 유별난 아미코는 끊이지 않는 활력과 호기심으로 학교와 집에서 작은 소동을 일으키는데,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아이의 세계를 섬세하게 연출한 모리이 유스케 감독은 장편 데뷔작으로 2023년 키네마준보 베스트10 작품에 선정된 것 외에도 일본 영화계에서 '놀라운 데뷔작'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오는 29일에는 '갓랜드'가 개봉한다. 갓랜드는 19세기 후반 덴마크의 젊은 루터교 신부가 교회를 짓기 위해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는 영화로, 숨막힐 듯 아름답고 무시무시한 자연이 한 목회자의 영혼을 무자비하게 흔들어 놓는 광경을 섬뜩하고도 매혹적으로 펼친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힐누르 팔마손(Hlynur Palmason) 감독이 연출했고 '미션', '아귀레, 신의 분노'를 연상시킬 만큼 장대한 스케일 속에 자연, 인간, 종교, 식민주의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다.

다음달 6일 개봉하는 '가여운 것들'은 고드윈 벡스터 박사로 인해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벨라 벡스터의 삶을 다룬 영화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더 랍스터' 등의 작품으로 독보적인 연출력을 선보여온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포함하여 11개부문 노미네이트 됐다. 특히 골든글로브 시상식,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여우주연상 수상 행렬을 이어가고 있는 엠마 스톤은 '가여운 것들'의 '벨라 백스터'를 통해 지금껏 본적 없는 가장 독창적인 캐릭터를 완벽 소화하며 "경이로움 그 자체"라는 찬사를 이끌어내며 다가오는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의 가장 강력한 주인공으로 기세를 몰아가고 있다.
임선애 감독의 영화 '세기말의 사랑' GV가 오는 24일 오후 3시 광주극장에서 열린다.
이날 '프랑스 여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김희정 감독이 진행을 맡았으며 임선애 감독이 직접 들려주는 영화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와 비하인드를 만날 수 있다.
'세기말의 사랑'은 세상 끝나는 줄 알았던 1999년, 짝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영미'에게 짝사랑 상대의 아내 '유진'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뉴 밀레니엄 드라마다. 영화는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에게 빠져드는 영화"라는 등의 관객 호평과 함께 뜨거운 입소문으로 1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정민기자 ljm7da@mdilbo.com
-
바다와 육지 오가며 왜군 격파··· 한산·행주대첩의 승부사
삼도수군사령부가 있었던 통제영(경남)통영)의 세병관(국보305호).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한산대첩, 권율의 행주대첩, 김시민의 1차 진주대첩 등을 ‘3대첩’이라 한다. 이 가운데 한산대첩과 행주대첩 등 양 대첩에 참전해 공을 세운 보성 출신 선거이가 있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선거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해전과 육전에서 빛나는 공을 세웠다. 1598년 10월 울산성 전투에서 후퇴하는 일본군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고 선두에서 독전하다 적탄에 쓰러졌다. 최근 보성 선씨 문중에서 주관한 학술대회에서 선거이 공적이 새롭게 조명됐다. 특히 이순신 장군과의 관련성을 집중 살핀 순천대 이욱 교수의 글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본 호 집필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선거이 등 5명의 보성 선씨 위패를 모셔놓은 오충사(전남보성).선거이는 명종 즉위년(1545년)에 태어났다. 호는 ‘친친(親親)’이었다. 그의 효성이 남달라 붙여진 이름이다. 본관은 보성이고 보성 조성에서 살았다.선거이는 최근 발굴된 ‘기묘문무과방목(己卯文武科榜目)’에 따르면, 1579년 기묘년에 무과에 급제했는데 합격 당시 ‘겸사복(兼司僕)’에 있었다. 대통령 경호 부대 곧 최정예 금군(禁軍) 출신이었다. 그가 일찍부터 무예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무과에 합격한 후 그는 북쪽 국경에서 근무했는데, 이곳에서 이순신을 만났다. 선거이는 무과 합격하고 10년도 채 되지 않아 무관의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절충장군이 됐다. 이는 무예 실력이 출중했기 때문에 승진이 빨랐음을 말해준다.선거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91년 3월10일 진도군수에 부임했다. 당시 조선정부는 일본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휘 능력이 검증된 실전 경험이 뛰어난 인물들을 경상, 전라 등 남해안의 지휘관으로 보임하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1591년 2월 이순신이 진도군수에 임명됐다가 가리포 첨사로, 다시 전라좌수사로 보임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도군수에 이순신, 선거이와 같은 훌륭한 인물이 연이어 보임된 것은 진도가 왜구의 주된 공격 루트였던 것과 관계 깊다. 이순신과 선거이는 같이 움직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유성룡이 무과 급제 후 인사차 들른 선거이에게 “전날 이순신을 보고, 또 오늘 그대를 보니 범장(范張)이 다시 나타난 것과 같다”고 했다.범장은 범식(范式)과 장소(張邵)을 가리키는 말로 깊은 우정을 빗댈 때 하는 고사이다. 서애가 이들의 관계를 범장에 비유할 정도로 두 사람이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음을 알려준다. 녹둔도 둔전관으로 있던 이순신이 여진족의 공격으로 그 지역이 커다란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이때 이순신이 책임을 지고 투옥됐을 때 같이 근무하던 선거이가 옥을 방문해 위로한 적이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진도군수로 전라우수영의 관할에 속했던 선거이는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라좌수영 수군과 함께 경상우수영을 지원하는 합동작전에 참전했다. 선거이가 한산도 해전에 참전했던 기록이 선조실록에 있다.김응남이 말했다. “…당초 수군이 승전했을 때 원균은 스스로 공이 많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선거이가 힘써 거사하기를 주장했다. …”정곤수는 말했다. “정운이 ‘장수가 만일 가지 않는다면 전라도는 필시 수습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협박했기 때문에 이순신이 가서 격파했다 한다.”전쟁 발발 초기 경상도 수군의 요청을 받아 전라도 수군이 경상도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대다수 전라도 장수들은 머뭇거렸다. 앞서 진무성 장군을 다룰 때 언급했지만, 이순신의 휘했던 송희립, 정운 등이 참전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선거이도 전쟁 초기부터 적극 참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알 수 있다. 선거이는 왜 수군과의 전투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다음에서 알 수 있다.호남·영암 수군이 견내량에 모여 왜적의 큰 배 중 10척, 중·소선 70여 척을 발견하고 접전했다. 우리 군사가 두 번째 총통을 쏘았으나 전혀 깨질 형세가 없으므로, 한산도 큰 바다로 퇴진해 다시 삼도의 여러 선박과 더불어 약속하고 북채를 두들기며 한꺼번에 나가 거의 다 무찔렀다. 적선 10척이 포위망을 벗어나 달아나니 진도군수 선거이가 쫓아갔으나 따르지 못했다.-난중잡록1, 임진년 7월한산도 해전에 참여한 선거이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로 선거이가 한산대첩 승리의 주역임을 알려준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한산도 해전에서 선거이 역할이 거의 보이지 않은 것은 당시 수군 편제상 선거이가 전라 우수사 이억기의 휘하에 있었기 때문이다.전라도 수군과 공동작전을 펼치고 있던 선거이는 전라감사 이광의 지원 명령을 받고 수원으로 이동했다. 전라병사 최원과 의병장 김천일이 수원에서 인천으로 진을 옮기면서 이광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이광은 진도군수 선거이에게 김천일을 지원하도록 했다. 이후 전라병사로 승진한 선거이는 행주산성 전투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의 부대는 직접 참전하지는 않고 외곽에 포진해 있었다. 행주대첩에는 간접적으로 참여한 셈이다. 하지만 선거이 부대가 요로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일본군이 행주산성을 다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산도 해전, 행주산성 전투에서의 조선군 승리는 전쟁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 전투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선거이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다.1595년 충청수사에 임명된 선거이는, 그해 5월에서 9월까지 약 115일 동안 한산도의 통제영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작전을 논의했다. 이 시기에 무려 31일 이상 만났음이 난중일기에 기록되고 있다. 1595년 9월 14일 선거이와 이별할 때 이순신은 다음의 시를 지어 석별을 아쉬워했다.북쪽에 갔을 때 함께 고생했고남쪽으로 와서는 생사를 같이 했네.오늘 달 밝은 밤에 술 한 잔 같이 하면내일은 이별의 감정을 느끼겠구려.한산도 이순신 장군 집무실에 해당하는 제승당.이순신은 선거이와 북의 여진족, 남의 일본과의 전투에서 생사를 함께 한 정을 잊지 못함을 알 수 있다. 1596년 9월 24일 이순신이 공무로 보성에 갈 일이 있자 선거이의 집을 방문했다. 거기서 이순신은 선거이의 병이 위중함을 알고 안타까워했다.한편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선거이는 성을 비우라는 명군과 권율 등 조선군 지휘부의 명령에 따라 진주성을 나와 외곽 방어를 했다. 김천일 등은 진주성이 함락되면 호남이 위태롭다는 판단에 따라 진주성을 사수하다 순절했다. 유성룡은 진주성 함락은 공성 작전을 따르지 않았던 김천일의 실책이었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성룡이 남인, 김천일이 서인으로 당색이 다른 것도 이러한 평가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조정의 명령에 따라 공성 작전을 수행한 선거이에게 진주성 함락 책임을 물었다. 임진왜란 공신 책록에서 선무공신 아래 등급인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됐다. 이순신과 3차례나 연합해전을 전개하고 육전에서는 일본군과 끈질긴 전투를 하고 마침내 전투의 선봉에서 지휘하다 장렬한 전사를 한 영웅에 대한 온당한 처사는 아니었다. 고향인 보성에 선거이 등 보성 선씨 5인의 영정을 봉안한 ‘오충사’가 있다. 한경국기자 hkk42@mdilbo.com
- · 도심 공원 속 즐거운 상상
- · 여수 기후주간, 청소년 기후행동 '백투디어스' 뜬다
- · 비극적 현대사를 겪으며 살아낸 사람들
- · "광주 넘어 전남까지 문화협력 확대할 것”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