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 작가들 돕고 싶어 수집 시작
역사 희생자 달래는 '기도의 미술관'
무산된 후 광주 요청 컬렉션 기증
1993년 시작 2018년까지 8차례
"광주, 국제미술도시 돼 기뻐"
■광주 3천여점 비롯 전국 1만2천여점 작품 기증한 하정웅 선생
지역서는 최초로 세워진 공립미술관인 광주시립미술관의 시작에는 기증이 있었다. 소장품이 적어 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지 못하던 것을 우리 지역 작가들을 중심으로 전국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내주기 시작하면서 개관과 한발짝 가까워졌다. 시립미술관의 기증 역사에선 하정웅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하 선생은 1993년 212점을 시작으로 1999년, 2003년, 2010년, 2018년까지 8차례에 걸쳐 총 2천603점을 기증하며 시립미술관 소장품의 양적, 질적 성장을 도왔다.
40대에 광주와 인연을 맺어 올해 만 83세 맞는 하 선생을 30일 만났다.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창작교육관 개관식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한국에 들어온 하 선생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인과의 만남이, 이틀 후에는 서울행이 계획됐다. 6일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그는 "올해 들어 건강이 부쩍 안좋아짐을 느껴 이번 한국행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이번에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하고 가고 싶다"고 전했다.
-컬렉션에 재일 한인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재일교포로서 핍박과 차별 속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재일한인 작가들을 돕고 싶었다. 그것이 작품을 모은 이유였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일당을 받아 5남매를 키우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지만 고등학교까지 어렵지만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일을 하다 24살에 전자제품 가게를 열었는데 도쿄올림픽 영향으로 컬러TV가 잘 팔리기 시작하며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돈을 벌고 보니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터라 그림에 관심이 갔다. 특히 재일한인들의 작품을 수집했다. 그들을 도와 함께 성장하고 싶었다.
-본인의 메세나로 발돋움한 작가들이 많다
▲재일한인들에게 긍지를 심어준 이우환 작가가 생각난다. 당시 일본에서 '모노파'로 이름이 알려져 있긴 했지만 작품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라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그런 시기에 내게 부탁을 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3곳에서 3개월 동안 전시를 하려는데 후원이 가능하겠느냐고. 얼마가 필요하냐고 했더니 전시를 겨우 열 수 있을 정도의 비용만 말하더라. 욕심 없고 참 정직한 작가다. 경비와 교류비 명목으로 얼마간의 여윳돈을 함께 후원했는데 성공적으로 전시를 마치고 돌아왔다.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해 재일한인들에게는 자랑스럽고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그런 보람이 계속해서 메세나를 지속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광주 3천여점을 비롯해 전국에 1만2천여점을 기증했다. 작품 수가 굉장히 많다.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목적이었다. 아키타 타자와코 호수 근처에 지으려했다. 어린시절 살던 곳인데 수력발전소가 있다. 이것을 짓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들이 강제로 노동한 역사가 있다. 그 인근에 무연고 묘가 많다. 소학교에 다닐 적에 우리 어머니가 명절에 음식을 하면 무연고 묘 앞에 음식을 차리고 오라고 시켰다. 정말 없이 살았는데도. 어린 나는 음식을 차리며 '불쌍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생각했다. 그래서 '기도의 미술관'을 지으려했다. 우리 역사의 자료이자 기록인 재일한인의 작품으로 가득 채운 미술관 말이다. 다 지은 후에는 해당 지역에 기증하겠다고 공무원들과 협의도 다 마쳤다. 땅도 사고 작품도 사고 설계까지 모두 마쳤는데 한일회담 중 전후 배상문제가 일어났고 해당 지역에서 미술관 짓기를 손사래 쳤다.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그런 작품을 광주에 기증했다
▲1988년 광주에 맹인복지회관을 지은 것이 인연이 돼 맹인복지협회 초청으로 1993년 광주에 왔다가 오승윤 화백이 '광주에 시립미술관이 있는데 같이 가봅시다'해서 시립미술관에 가봤다. 건물은 전당처럼 멋진데 전시관들이 다 닫혀있었다. 소장품이 부족해서 그런다더라. 150점 뿐이라는데 당시 시장과 관장이 내 컬렉션을 기증하면 어떻겠느냐고 부탁했다. 1980년 광주에 큰 아픔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이듬해 그 소식을 일본에서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아키타에서 강제노동으로 희생 당한 이들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해 영령을 달래야한다 생각했다. 광주가 '기도의 미술관'이 돼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게 출발한 시립미술관이 30주년을 맞았다
▲분관인 하정웅미술관에서 1차로 기증한 작품을 현재 전시 중이라 가봤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작품들이 참 생생했다. 살아있더라. 역사에 대한 증언이 담겨있고 내 기도도 울리고 있더라. 30년 전 내가 이 그림들을 가져올 때만 해도 '재일한인 작가들 그림 뿐'이라며 비난을 많이 받았다. 나를 욕하는 것은 좋았지만 작가 한사람 한사람 인격을 모독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위혼의 의미가 담긴 기증이 그 의미를 완성하기 위해선 참아야했다. 결국 지금은 빛이 나는 작가들이 됐다. 또 광주는 국제미술도시가 됐다. 기증 당시 우리나라에도 문화 꽃이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광주가 앞장서서 나가고 있어 참 기쁘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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