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그림자*
응급실이 아닌, 외래에서 호출이 왔다. 입원환자는 대부분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데, 외래에서 바로 입원이 결정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외래든, 응급실이든, 입원 결정이 되면, 환자는 원무과에서 수속을 하고 병동으로 올라온다. 병실까지 배정받고 난 후 담당 주치의는 환자와 보호자를 면담한다. 나는 어떻게 하다가 다쳤으며, 그전에 다치거나 아파서 입원한 적이 있거나 치료받은 적이 있는지, 앓고 있는 다른 질환은 없는지, 가족 중에 질환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를 묻고 기본적인 입원 검사와 주사약 등을 처방하고 이를 입원차트에 기록한다.
48세 여자 환자였다. 환자는 5일 전 뜨거운 물에 허리 부위를 데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깊은 2도 화상을 입고, 집에서 자가 치료를 하다가 상태가 악화하여 내원했다. 그녀는 앞가슴뼈가 돌출되고 흉벽이 오목하게 들어간 새가슴에, 팔다리는 손목, 발목 부위 뼈 부분이 두껍고 다리가 휘어진 안짱다리를 한 꼽추의 모습이었다. 혈액검사 결과는 몇 개의 검사에서 정상치를 약간 벗어났을 뿐, 심각한 상태는 아니어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입원할 땐 잠깐 얼굴을 보인 남편은 그 후로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상처는 매일 반복하는 드레싱에도 깊어져 갔다.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경과였다. 더딘 치료 경과 때문에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상처의 상태를 설명해야 했다. 그녀는 별말이 없었다. 고작 ‘네, 알겠어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입원하고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평상시 얼굴 한번 보이지 않던 남편이 회진 시간에 나타났다. 그는 투덜대기 시작했다. 어려운 살림에 입원시켰는데 환자가 나아진 게 없다는 거였다. 상처는 매일 세 차례씩 소독하고 있고,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내과 협진을 받아 투약을 바꿔 보고 있다는 설명도 그에겐 소용없었다. 남편은 왜 당장 수술은 하지 않느냐고 화를 냈다. 나는 죄인의 심정으로 오랜 시간 그의 불만을 듣고 있어야 했다. 일주일을 더 견뎌낸 나는 수술을 계획 했다. 상처만 봐서는 피부이식이나 피판술로 상처를 덮어주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혈액검사 결과를 이유로 마취과에서 수술을 연기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런 확실한 이유 외에도 나는 왠지 그녀의 수술이 꺼려졌다. 그냥 그랬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지 모를 이상한 기운이 그림자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하지만, 과학자이기도 한 의사가 근거 없이 단지 이상한 기운 때문에 수술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객관적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쁘긴 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상처가 점점 악화하니 수술로 나쁜 조직을 한 번에 제거하고 피부이식이나 피판술을 시행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보이는 대로 과학적으로 보자면 그랬다. 난 이상한 기운을 판단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드디어 수술 날짜가 잡혔다. 마취과에서도 어쩐 일인지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가슴 한편으론 근거가 불명확한 불안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환자의 남편에게 수술동의서를 받기 위해 면담 약속을 잡았다. 밤늦은 시간이 돼서야 가게 일을 마무리하고 왔다는 그를 만났다. 나는 항상 받는 동의서 내용에 ‘수술 중 사망할 수 있습니다. 또는 수술후유증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를 훨씬 더 강조해서 반복했다.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여기 사인하면 되나요?’라는 물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수술 날짜는 다가왔다.
걱정으로 시작한 수술은 완벽하게 끝났다. 그런데, 그녀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제야 뭔지 모를 이상한 기운의 정체를 다시 의심하기 시작했다. 수술이 끝나고 수술 장갑을 벗을 즈음 나는 그녀 위에 떠 있는 거무스름한 무언가를 본 걸 기억했다. 수술 중에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그림1오른쪽#
‘남편은 꼽추인 그녀가 창피했고, 죽기를 바랐어. 어느 날 술에 취한 남편이 집에 돌아왔는데, 그녀는 주방에 물을 끓이다 잠들어 있었어. 남편은 화를 참지 못하고, 끓는 물이 담긴 주전자를 잠든 그녀에게 던져버렸어. 그녀의 화상은 남편의 학대 중 일부일 뿐이야. 화상 상처를 방치해서, 낫지 않고 냄새마저 지독해졌어. 남편은 그제야 그녀를 병원에 데려온 거야. 남편은 병신과 산다는 생각에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해. 모든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이 다 꼽추 아내 탓이라고 생각해. 그녀는 이제 지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냥 죽고 싶어해.’
나는 근거를 알 수 없는 생각이 너무 상세하고 사실적이어서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수술대 위의 그녀 몸을 감싸고 있는 거무스름한 무언가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환시나 망상이 아니었다. 마취과 선생들은 환자가 깨지 않는 이유를 의아해했다. 그녀는 자발호흡이 돌아오지 않았다. 폐 기능이 정지한 것이다. 의학적 소견은 인공호흡기를 유지한 채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겨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수술 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난 남편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죽음을 순순히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의 빠른 판단은 수술실에서의 막연한 생각들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결국, 그녀는 ‘호프리스 디스차지’를 떠났다.
*중환자실 인턴으로 근무하던 무렵, 나는 자주 ‘호프리스 디스차지’를 따라갔다. 이미 가망이 없는 환자를 집에서 운명할 수 있도록 퇴원시키는 일이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는 자발호흡 없이 기계로만 호흡을 유지하는 상태가 된다. 병원 영안실이 아닌, 집에서 장례를 치르길 원하는 경우, 앰뷸런스로 그들을 집까지 운반한 뒤에 호흡장치를 제거한다. 몸은 죽었지만, 그동안 이들은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장의차가 아니라 앰뷸런스여야 하고, 의사가 동행해야 한다. 의사들은 누구도 이 희망 없는 퇴원에 동행하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이런 동행은 갓 의사가 된 인턴의 공인된 일과가 된다. 이 밖에도 인턴의 일과 중에는 채혈도 있다. 중환자실 환자들은 매일 많은 피검사를 했다. 전신상태가 나쁜 환자들에게서 채혈할 혈관을 찾는 일은 어려웠다. 나는 귀신같이 혈관을 찾아 인기가 많았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한 한 가지가 더 있다. 환자들의 피를 뽑는 순간, 난 금방 죽을 사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는 검은빛의 피가 나왔다. 물론 정맥의 피니까 의학적으로 검은색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검은색 중에서도 더 어두운 빛깔로 보이는 색이 있었다. 차이는 아주 미묘했다. 내가 죽음을 짐작한 환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호프리스 디스차지’를 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나는 죽음과 관련된 어떤 형상과 그때부터 아니면, 그 이전부터 관련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그날들이 아득하게 떠오른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호프리스 디스차지를 따라갔다. 인턴인 나는 삽관된 기도에 ‘앰부백’이란 공기주머니로 인공호흡기를 대신해 밤새 공기를 짜면서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서너 시간을 환자의 집까지 동행했다. 도착 시각은 대부분 자정을 넘겨 새벽이었고, 도착한 곳은 암흑의 천지 속에 조그만 전깃불만 비추는 그런 곳들이었다.
한번은 졸면서 앰부백을 짜고 가던 구급차 안에서 나는 환자의 몸에서 나오려는 검은 그림자를 본 적이 있었다. 기사는 운전하고 있었고, 동승한 보호자는 선잠을 자고 있었다. 나만 홀로 백을 짜고 있었다. 적막함 속에 그림자 형태의 무언가가 환자의 몸과 분리되고 있었다. 차 안의 누구도 이 순간을 목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기도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조건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알고 있던 주기도문을 외우고 지금 떠나고 있는 분이 일생을 어찌 살았던 이제는 안식을 찾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길 빌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진심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림자는 다시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가 몸속에 더 겹쳐 있었다. 그리고 환자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집에 도착해 삽관된 호스를 제거하고, 라인을 정리할 때 즈음, 그림자는 몸에서 나와 자유롭게 한동안 허공을 배회했다. 어두운 그림자가 빠져나온 사체는 창백했다. 나는 그림자를 뒤로 한 채 앰뷸런스로 돌아왔다. 죽음의 순간들은 모두 엄숙했다.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니 더욱 그러겠지 싶었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앰뷸런스 안에서 나는 그날 내가 본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었다. 환각일까도 생각했으나 인과적이어서 생각을 접었다. 내가 기도하자 다시 몸속으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림자에 대한 고민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
*인턴 선생 편에 어쩌면 내 책임일 수 있는 그녀를 떠나보낸 나는 병원 옥상에 올랐다. 만약에 내가 본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만 있다면, 남편을 응징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별들은 얼음같이 빛났고, 밤바람은 차갑게 뺨을 때려왔다.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별들. 보이지 않지만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 있을 것 같지만 증명할 수 없는 그림자.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뇌 속의 회로가 정전된 것처럼 정지되는 것인가. 입력해 놓은 자료가 날아가듯 그렇게 삶은 끝나는 것인가.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것처럼 영혼은 몸이라는 하드웨어 안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형태로 우리 몸을 움직이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내가 책임지는 환자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피심리일까.
의사들은 누구나 자신의 환자가 죽으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료사고 때, 의사들의 무의식적인 발뺌은 그런 생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합리화를 시작한다.
‘내가 수술하지 않았어도 죽었을 거야, 수술하는 것이 한 번 더 기회를 얻는 선택이었어.’
내가 책임지는 죽음은 참으로 무거웠다. 배가 묵직했다. 수술실에서부터 누군가 바늘로 배를 찌르는 것 같았다. 배를 만지는 손에, 문득, 부풀어 오른 상처 자국이 잡혔다.
*아버지와 나는 어느 아침, 기사가 모는 관용차량을 타고 있었다. 그날은 내가 의과대학에 합격하고 삼일 뒤였다. 무척이나 일어나기 싫은 날이었다. 새벽부터 내린 눈 때문에 우중충한 아침은 새벽 같았고, 사위마저 고요해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고 싶었던 날이었다. 우리는 지방의 한 행사장을 향했다. 갑작스러운 폭설 때문인지, 도로 위에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눈길을 기어가던 관용차량은 슬그머니 속도를 올렸다. 예열해 놓은 차 실내는 이불 속만큼이나 따듯했다.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순간, 기억하는 것은 커다란 화물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었다. 그 불빛은 내 동공을 향해 불빛을 깜빡거렸다.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난 다른 단계의 가수면 상태에 빠져들었다. 뒤집힌 차에서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를 꺼내던 사람을, 나는 고개가 꺾인 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차 밖으로 끌려가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나쳤다. 기억은 조각나 있었다. 다음 기억나는 건, 아버지가 한쪽 손과 발만 바동거리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짐짝처럼 엑스레이 기계 위에 내던져지고 있었다. 마치 도살장에서 도축할 가축의 치수를 재듯,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도축업자라도 되는 양, 아버지를 이리저리 뒤집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세상은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얼마 후, 아버지와 나는 조그만 시골 병원에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내 배는 올챙이배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이동식 침대에 실려 병원 복도를 지나는 모든 순간은 반 고흐의 그림에 나온 별빛처럼 지나쳐 갔다. 그날 저녁, 나는 응급 개복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깨어난 세상은 몬드리안의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나란히 입에 인공호흡기를 물고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주위는 적막했고,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다. 겉으로는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옆에 달린 인공호흡기의 공기주머니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폐로 공기를 불어 넣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숨을 쉬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이십 분만 지나면 목에서 그르렁 소리를 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간호사는 흡입기계에 연결된 주황색 고무호스를 식염수에 적셔 아버지의 목에서 가래를 뽑았다. 주황색 고무호스는 움찔거리며 빨려 들어온 가래를 흡입통에 뿜어냈다. 아버지의 얼굴도 호스와 반 박자의 차이를 두고 움찔댔다. 자극에 반응하는 아버지는 죽은 게 아니라 잠을 자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마취가 깨면서, 수술한 배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움직일 때 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죽었다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어릴 적 내 생각은 지극히 단순했다. 숨을 쉴 때마다 큰 칼날이 배를 쑤셔대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강하게 살아있었다.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은 이상하게 흘렀다. 나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 것으로 시간을 추측했다. 거긴 밤이 없었다. 그곳을 나가면, 사람들은 입원실이나 영안실로 간다.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보낸 것 같았다. 지루한 오후였다. 문득 의미 없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목에 보호대를 하고 있던 터라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배에 붕대를 잔뜩 감고 팔다리가 줄에 묶여 도르래에 들려진 청년이 눈에 띄었다. 기계장치가 침대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황제의 침대라도 돼 보였다. 옆의 초라한 침대엔 흰머리 꼬부랑 할머니가 머리맡에 심장박동 모니터 한 대만이 놓은 채 누워있었다. 깊은 주름으로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은 모니터에 울리는 심장박동 소리처럼 평온했다. 다른 침대엔 젊은 할아버지가 쉴 새 없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패드로 입에 재갈을 물려놓았고, 팔과 다리는 모두 압박붕대로 묶여있었지만, 고래고래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밤낮없이 질러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둘 사이에 있는 할머니는 더없이 초라하고 가녀려 보였다.
주변이 고요한 거로 봐서, 이곳 밖의 세상은 한밤중일 듯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유 없이 자꾸 할머니 쪽으로 눈이 갔다. 심장박동을 표시하는 모니터는 어김없이 규칙적인 전자음을 내고 있었고, 할머니의 얼굴은 평상시처럼 평온했다. 뭔가가 달랐지만, 이유를 찾진 못했다. 알 수 없는 느낌 때문에 시선은 자꾸 할머니에게 쏠렸다. 할머니 주변에 어두운 빛이 감도는 듯했다. 그뿐이었다. 어쩐지 할머니의 낯빛도 어두워 보였고, 주변엔 스팀이라도 켜 논듯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새벽녘 저수지를 덮는 물안개가 중환자실에 바닥에 깔렸다. 안개는 그림자 모양으로 형태를 바꾸며 점점 선명해져 할머니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도 명징했다. 상상이나 헛것을 본 게 아니었다. 분명히 할머니의 주위를 검은 그림자는 회오리를 만들며 돌고 있었고, 할머니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때, 모니터의 알람이 울기 시작했다.
뿔테 안경을 쓴 학생처럼 보이는 여자 인턴이 머리를 묶으며 뛰어와, 할머니 목에 맥박을 만져봤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됐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장면처럼 심폐소생술은 긴박하게 계속되었다. 5분 정도 지나자 여자 인턴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디선가 달려온 다른 의사가 인턴을 교대했다. 조만간 심실제세동기가 들어오고, 전기충격을 가할 때마다 할머니는 한 번씩 침대 위를 뛰어올랐다. 어느 순간 할머니의 그림자는 침대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침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미련을 버린 것처럼 바람이 휘몰아치듯 중환자실의 닫힌 문으로 나가버렸다. 그 뒤로 할머니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움직였다. 다시 여자 인턴의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다. 몸에서는 끊임없이 나무토막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옆에 있던 의사는 그만하라는 말과 함께 사망시간을 말해주었다.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영안실로 내리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는 혼자 남겨졌다.
잠시 후 간호사들이 몰려와 혈관을 잡았던 라인, 인공호흡기 호스, 소변줄, 코로 연결된 영양 호스를 차근차근 제거했다. 할머니는 굳어버린 조각 같았다. 조금 전과 같이 미동 없는 편안한 얼굴이지만, 생명이 있던 얼굴과 사라져 버린 얼굴은 확연히 달랐다. 신호등의 초록불과 빨간불처럼. 아버지의 얼굴을 봤다. 다행히 죽음의 그림자나 그와 연관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난 중환자실에 누워 죽음의 그림자를 찾기 시작했다. 다음날, 여자 인턴이 회진을 왔다. 머리를 풀고 진한 화장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모습이었다. 중환자실에서는 보기 힘든 색깔이었다. 전날의 죽음이 인턴 선생에게도 어떤 영향을 끼친 게 분명했다. 외모가 화려해진다는 것은 초라한 내면을 들키지 않기 위한 발악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 공포, 그리고 좌절이 있었다. 마음이 애잔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보다 먼저 중환자실을 나왔고, 일반 병실을 거쳐 퇴원했다. 하지만 병원 생활은 계속되었다. 아버지를 간병해야 했다. 그런 생활 중에 나는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의대는 병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는 병원과 집과 학교에 내 육체를 가둬두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겹치는 이런 공간에 익숙해질 무렵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의 존재가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편히 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었다. 처음 목격했던 죽음의 기억과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림자, 죽은 자의 모습은 밤의 어둠처럼 깊고 편안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 북받쳐 오르는 분노, 표정 없는 공허를 넘어 끊임없는 집착을 병실에 누워있던 아버지에게서 볼 수 있었다. 죽기 며칠 전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에서 깊은 미소가 보였다. 밤 같은 평안, 그걸 굳이 표현한다면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버지가 죽었다. 예상했던 죽음. 보내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을 보낸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가 며칠 뒤 죽을 걸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을 줄 알았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죽음을 몰고 다니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 나를 따라다니는 죽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교과서에서 본 것처럼 심장과 폐가 정지한다는 것뿐일까?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이 살아있기 때문이라면, 영혼도 같은 걸 느낄까? 화가의 그림이나 조각처럼 사물에서 느껴지는 영혼은 살아있는 인간의 영혼과는 어떻게 다를까?
어쩌면 방황은 그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또 한 명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병동의 두경부암 환자는 편평상피 세포암이 생긴 혀와 턱을 모두 도려내고, 골반의 뼈와 주변의 살을 이용해 재건했지만, 암이 재발하여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환자는 입이 사라졌고, 아래턱뼈는 썩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멸치젓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만큼이나 검은 그림자도 자욱했다. 썩어가는 살 위에 덮인 거즈는 적갈색으로 푹 젖어 있었다. 거즈를 갈아주려 떼어내면, 암으로 새로 생긴 혈관들에서 피가 치솟았다. 출혈을 일일이 지혈하고 새 거즈로 갈아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드레싱이 끝나고 반창고를 붙일 때쯤이면 거즈는 다시 가운데 부분부터 적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일을 두 시간마다 반복하고 있었다.
나조차 멸치젓 냄새에 찌들어있었다. 나는 그림자가 냄새처럼 나에게 스며드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입과 코로 들어와 폐 속 깊이 똬리를 틀고 나조차 녹여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의 드레싱이 끝나면 나는 한시라도 병실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 봐야 병원 앞 화단이지만, 풀냄새나 벚꽃 냄새 같은 살아있는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입이라도 헹구려고 뽑은 자판기 커피에서도 비린내가 났다. 나는 한 모금 입안에 들이켠 커피를 뱉어내고서 종이컵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낯익은 인턴 선생이 그 옆에서 가쁜 숨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인턴 선생을 불러 담배를 하나 달라고 했다. 내가 담배를 입에 물자 인턴은 능숙하게 라이터를 켰다. 불꽃이 이는 순간 나는 담배를 힘껏 빨았다. 매캐한 연기가 한 번에 쑥하고 기관지로 밀려 들어왔다. 숨이 막혔다. 일순간 나는 연신 깊은 기침을 토해냈다. 눈알이 빠져나올 것 같았다. 짐짓 놀란 표정의 인턴이 물었다.
“샘, 담배 못 피우세요?”
“응, 좀 배워보려고.”
나는 기침 끝에 대답했다. 뭐가 좀 뒤바뀐 느낌이었다.
“몸에도 안 좋은 걸 왜 배우세요?”
세상을 다 겪어본 듯 거만한 말투였다.
“넌 왜 피우는데?”
인턴의 호출기가 울렸다. 그는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겨 끄며 겸연쩍은 인사를 하고 병원 안으로 사라졌다. 난 어정쩡한 자세로 손가락에 담배를 낀 채 이걸 버려야하나, 피워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누군가 내 팔을 툭 건드렸다. 두경부암 환자였다. 병원 밖에 있으니 그가 곁에 오도록 그 혐오스러운 냄새를 맡지 못했다. 아니면 이미 그 냄새에 익숙해져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병실에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나는 의아했다. 전화기를 귀에 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눈짓으로 휴대폰을 가리켰다.
〖담배 피우지 마요.〗
휴대폰 액정엔 그의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건네며, “네, 그럴게요.”라고 말했다. 담배는 손에 계속 들려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러다 나처럼 되려고.〗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고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욕지기가 밀려왔다. 배속 깊숙한 곳에서 묵직한 통증이 뒤따랐다. 예전의 교통사고로 다친 곳이었다. 최근 들어 숨을 못 쉴 정도의 통증이 한 번씩 밀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면 수술 흉터는 검붉게 부어올랐다. 그는 다시 휴대폰을 건넸다.
〖힘들지? 나 때문에 … 곧 끝나, 좀 참아.〗
나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말했지만, 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가 회복할 일은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휴대폰 자판을 한동안 열심히 눌렀다.
〖이놈과 산 지 2년이 넘었어. 난 지겨워.〗
‘이놈’이란 게 암세포를 말하는 건지, 죽음을 말하는 건지. 나는 쉽사리 묻지 못했다.
‘내가 물으면 그는 또 힘겹게 휴대폰 자판을 치겠지.’
나는 담배를 비벼 끄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춥지 않은 날씨였지만 입김이 새어 나왔다. 뭔가 위로를 해야 했지만, 딱히 떠오른 말이 없었다. 대신 바로 전까지 그가 빨리 죽었으면 하고 내심 바랐던 게 생각났다. 매일 대여섯 번씩 하는 드레싱동안 줄곧 그랬다. 아버지에게도 그랬었다. 몸의 의도는 마음의 의도와 다를 수 있었다. 나는 선의를 바라며 악의를 품었었다. 그 순간 상처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가 보였다. 난 상처의 상태와 앞으로의 경과를 알고 있었지만, 인간으로서 그의 삶과 회한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이놈이 남 같지가 않아. 미안해 모두.〗
문자를 통한 그와의 대화는 수수께끼만 같았다. 많은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으나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대화는 응급실에서 온 응급호출로 급히 마무리되었다.
응급실에서 만난 할머니는 67세이고, 경운기 짐칸에 타고 가다 논두렁에 굴러 얼굴에 심한 외상을 입었다. 외상이라기보다는 머리 정수리 부위부터 하악골부위까지 얼굴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이 정도의 상처라면 뇌 외상으로 인한 혈종 때문에 생명이 위태로울 법도 한데, CT상에는 이상이 없었다. 내 눈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놈은 할머니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외상환자에 있어서 생명에 대한 처치가 최우선이지만, 지금 당장 보이는 생명의 위험 징조는 없었기 때문에 신경외과는 빠지고 성형외과가 할머니를 담당하게 되었다. 나는 그날 당직이었기 때문에 수술실에서 수술 가운을 입고 할머니를 만났다. 솔직히, 할머니가 금방 사망해서 성형외과 수술은 필요 없을 줄만 알았다. 검은 그림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생명 징후 또한 뚜렷했다. 마치, 이 둘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는 듯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비록 할머니가 죽은 후에라도 바른 얼굴 모양으로 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술실로 향했다. 눈을 만들고 코를 붙이고 얼굴의 벗겨진 피부를 하나하나 덮어갔다. 어느 순간 배가 묵직해지고 상처 자국이 가려웠다. 논둑을 태우는 냄새가 어디선가 피어올랐다. 검은 그림자는 내 등 뒤에 붙어 수술과정을 빠끔히 내다보고 있었다. 어깨 위로 자리를 옮겨 앉기도 했다. 사라졌던 할머니 얼굴은 드디어 제자리를 찾았다. 오랜 수술 때문에 빵빵하게 붓기까지 한 얼굴은 십 년은 더 젊어 보였다. 할머니는 일어나 고맙다고 할 줄 알았는데 결국 깨어나지 않았다. 수술 후 다시 찍은 CT상에는 두개골 안에 피가 가득 차서 뇌를 한쪽으로 밀고 있었다. 살아있기 힘든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수술실에서 나온 지 5시간 만에 호프리스 디스차지로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검은 그림자도 잠시 내 곁에 머물다가 할머니가 탄 앰뷸런스를 타고 떠났다. 젊어진 얼굴로 가족을 만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일생의 한 번의 성형수술을 죽는 순간에 한 셈이었다. 마음은 따듯했지만, 배는 고팠다.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컵라면을 사려고 갔지만 결국은 담배를 사고 말았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전보다 익숙하게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깊게 한숨을 쉬었다.
‘2년간 이놈과 한 몸으로 살았어. 이제 갈 때도 됐어.’
드레싱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이놈’이 누구고, 어디로 가는지. 폐를 하얀 연기로 가득 채우고 고개를 들어 별들 사이로 뿜어냈다. 연기는 어디론가 흩어지며 사라져 갔다.
*본과 1학년, 해부학 실습을 하던 시기였다. 내가 진학한 의대는 고등학교 동문 모임이 꽤 엄격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문에는 해부학 실습 족보가 내려오고 있었다. 족보라는 것은 두개골과 장골掌骨, 상완골上腕骨 등 인체 각 부위의 뼈였다. 이 족보를 달달 외우지 않는 이상, ‘땡시’라는 해부학 실습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이 시험은 각 부분에 표시된 스무 개의 뼈와 각각의 뼈가 놓인 책상 앞에 스무 명의 학생이 서서 대기하다가, ‘땡’하는 차임벨 소리와 함께 한 칸씩 자리 옮겨 십 초안에 답을 적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십 초 후엔 다시 ‘땡’하는 차임벨이 울리고, 시간 내에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바로 자리를 옮겨 다음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전설처럼 구전된 얘기지만 의대가 처음 생길 적에 선배들이 무연고 묘지에서 도굴해온 해골을 무쇠 솥에 넣고 수일 동안 삶은 뒤, 뼈에 붙어 있는 인대를 일일이 솔로 깨끗이 털어내고 말려서 이 족보를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뼈를 만지며, 그들을 느끼며 해부학 명칭을 외웠다. 족보 뼈들은 사과 박스 크기의 나무 상자에 담겨 매년 다음 학년으로 전해졌다. 한 번이라도 더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걸 보관하기로 자청했지만, 나는 그 선택을 줄곧 후회했다. 불을 끈 밤이면 선반 위에 보관한 뼈들에서 하얀빛이 났다. 은은한 하얀빛은 뼛속의 ‘인’이라는 성분 때문에 나는 것이다. 캄캄한 산속에서 유골에서 나온 그 빛이 멀리까지 퍼져, ‘혼불’이라고 한다. 난 그 빛을 수면 등 삼아 잠을 잤다. 가위눌리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령, 이런 것이었다. 내가 잠자고 있으면 그 뼈에서 희뿌연 그림자가 나와, 누워 있는 나에게 왔다. 그림자는 나와 같은 형태로 평행하게 엎드려 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눈싸움에서 지면 죽는다는 말을 들었다. 몸은 물론이고 손가락과 발가락 하나, 눈꺼풀까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사고로 개복 수술했던 흉터는 칼로 찌르는 듯했다. 소리를 낼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이런 순간은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서워 죽을 것 같던 이런 시간에 나를 구해준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림자와 대적할 수 있는 그림자, 그러면서 영원한 나의 편이었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어느 밤, 아버지는 아직 의대생인 내게 여기저기 아픈 곳을 이야기하며 나타났다. 나는 의사인 척하며 배운 의학지식을 총동원해 아버지를 치료했다. 예전과 달리 난 아버지가 나에게 의지하는 것이 뿌듯했고,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것이 좋았다. 죽음의 세계가 있더라도 아버지가 나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나는 그렇게 죽음, 그림자들, 그리고 아버지와 친해져 갔다.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그림자가 있었다. 아버지는 이후로도 가끔 나를 찾아왔다.
*얼마 후, 말기 유방암 환자인 87세 할머니의 유방 적출 수술 후 유방 재건 수술 일정이 잡혔다. 할머니에게서도 그림자가 보였다. 할머니는 말수가 없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살아 뭐해.”
처음 만난 할머니가 했던 말이다. 할머니는 삶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했다. 할머니의 재건 수술은 외형보다는 떼어낸 조직을 덮는 게 목적이었다. 자식의 성화로 병원에 끌려왔지만, 삶에 미련은 없어 보였다. 그저 짐이 된다는 생각에, 자식들 마음이 편하기만 바랐다. 할머니의 그림자는 추억만큼이나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 이른 시기부터 보이는 게 좀 다르긴 했다.
막상 수술하려고 봤을 때 할머니는 한쪽 유방이 아닌 가슴 한쪽 전체를 도려내야 할 정도로 적출 부위가 컸다. 살을 옮기는 피판 수술 외에도 피부이식 수술도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수술은 재건에만 여섯 시간이 걸렸다. 나는 수술 중 할머니가 처녀 시절에 살았던 집을 보았다. 개울가를 따라 핀 개나리 사이로 한 남자와 걷고 있는 꽃다운 처녀,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고 있는 새댁, 졸업식에서 아들 등에 업혀있는 흐뭇한 어머니, 손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할머니의 모습들이 순식간에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수술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배의 오래된 수술 자국에 칼날 같은 통증을 느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쓰러졌다.
쓰러지는 내 모습을, 나는 느린 동작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천장에 떠 있었다. 옆 수술실에서 의사가 달려와 내 경동맥 맥박을 확인했다.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심실제세동기가 들어왔다. 나는 주변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며 이 모든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바닥에 누워있는 나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나는 신기해서 또 하나의 나를 만져보았다. 신기루처럼 잡히질 않았다. 심실제세동기가 전기충격을 가하는 순간, 나는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온통 암흑이었다.
눈을 떴다. 입원실이었다. 다행히 수술을 끝내고 쓰러졌고, 할머니는 무사히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검은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에 할머니가 죽었을 거로 생각했다. 심한 현기증이 났다. 혹시나 해서 거울을 보았다. 할머니가 아니라 내 주위에 그림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림자는 없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에게 내과 주치의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특발성 심실세동이 왔었다고 했다. 심장을 뛰게 하는 전기 자극이 일시적으로 합선되어, 내 심장이 멈췄었다. 이전에 병력이 없고 심장 초음파상 다른 문제가 없으니 괜찮을 거라며 이틀 정도 푹 쉬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나는, 잠시나마, 의학적으로, 죽었었다. 나였다. 나는 육체란 집에서 문을 열고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본 듯했다. 새벽녘 안개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치는 일요일 아침처럼,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삶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좁은 입원실에서 왼쪽 팔에 포도당 주사를 달고 있었다. 온종일 누워있자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링거 걸이를 밀고 병실을 나섰다. 의사 가운이 아닌 환자 가운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간호사들은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도 힘없이 웃었다. 어제와 같은 곳이지만, 입고 있는 옷에 따라 풍경은 달라 보였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병동 이곳저곳을 운동 삼아 돌아다니기로 했다. 마음이 이상하게 초조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일순간,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간호사 한, 둘이 다인실로 뛰어갔다. 링거걸이를 밀며 나도 그곳을 향했다. 환자로서의 호기심인지, 의사로서의 책임감인지, 바닥을 시끄럽게 구르는 링거 걸이의 바퀴는 다시금 아드레날린을 높였다. 그곳은 두경부암 환자의 입원실이었다. 나는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음을 짐작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파리하였고, 잿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응급 소생술을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순간 나는 멈춰 섰다. 그가 날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 빨려 들어갔다. 검은 갈색 홍채는 보석같이 빛났고, 동공은 꽃처럼 안으로 활짝 피어있었다. 심연의 어둠, 그 속에 그의 그림자가 들어있었다. 나는 주저했다. 그의 동공에 환자복을 입은 내 얼굴이 반사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암세포도 그의 일부였다. 암세포는 인공호흡기를 꽂을 ‘입’마저 녹여 버렸다. 그를 살릴 수도 없었고, 살려봐야 살아날 그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응급 소생술이 아니란 건 분명해 보였다. 입원실의 환자들은 나를 쳐다봤다. 간호사도 나를 쳐다봤다. 그들은 내가 무엇인가 행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의사인지, 환자인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았다. 왼쪽 팔과 연결된 링거에선 주사약이 한 방울씩 소리 없이 떨어져 내게로 흘렀다. 배에선 뭔가가 꿈틀거리고, 수술 자국은 불에 댄 듯 화끈거렸다. 그의 녹아버린 입에선 잿빛 고름이 섞인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다시 주변은 무언가로 자욱해졌다. (끝)
심사평(소설)
삶·죽음 묵직한 주제 뚝심 있게 밀고 나가
이화경 소설가#그림2왼쪽#
'꾼', '버지니아울프와 밤을 새다' 등
제6회 현진건문학상 수상
2016년은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이 ‘모든 것은 언어의 문제이자 세상을 혼란케 하기 위해 바벨에서 만들어진 모든 언어의 문제’라고 표현했던 문장이 절실하게 와 닿았던 한 해였다.
문제가 터지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제 3자 화법이나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면서 책임을 지는 언어에는 도통 무능하기 짝이 없는 위정자, 시종일관 알맹이 없는 공허하고도 상투적인 언어를 읊조려대는 정치인들, 최악의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규율에 젖은 채 거짓말과 기만으로 일관된 언어를 뇌까리는 관료들을 목도하면서 도대체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뼈아픈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가망이 없어 보일 정도로 시대의 바닥에 닿았다고 느끼는 절망 속에서 120편이라는 압도적인 편수의 작품들을 만나는 일은 두렵고도 감동적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고심한 끝에 4편의 작품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백린」은 맞으면 칼로 피부를 긁어내거나 덜어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정도로 가장 위험하고 잔인한 무기인 백린을 자본 시장의 사채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점이 돋보였다.
사채업자의 위험한 머니 게임에 휘말려서 신체마저 훼손된 주인공과 여타의 등장인물들이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스토리의 결말이 상투적이었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독」은 관계의 피학성과 가학성, 에로스와 타나토스, 집착과 사랑이라는 인간 실존의 양면성을 독과 약의 모순성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가고 있는 점이 뛰어났다. 관계의 비극적인 얼굴을 마주한 주인공의 결말이 복수로 설정된 점이 도식적이어서 아쉬웠다.
「우리가 아는 수정에 대한 이야기」는 사랑의 광휘와 도취의 무분별함, 관계의 환멸과 타자라는 존재의 불가해함을 발랄하고 냉소적인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배신감과 관계의 상실감을 수정으로 쉽게 투사한 안일함이 아쉬웠다.
<두 개의 그림자>는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간 작품이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 위태롭게 놓여 있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길항하고 대치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세목들이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었다.
죽어가는 몸과 살고자 하는 마음의 모순, 한 인간을 구성하는 유장한 세월과 찰나에 끊기는 목숨의 역설을 주인공 의사의 시점에서 나름대로 잘 조율하고 찬찬히 갈무리하고 있었다. 하여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새롭게 탄생한 작가의 정진과 투고자들의 건필을 기원한다.
당선소감(소설)
쉬어가더라도 멈춰서진 않겠습니다
조안영#그림3오른쪽#
학생 시절 휘몰아치듯 작성한 주관식 답안지를 덮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두 눈을 감고 시험 종료 벨 소리를 기다리던 생각이 불쑥 찾아 들었습니다. 그때처럼 최선을 다했으니 어떤 결과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 나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욕심이 ‘그래도…’라고 말할 때, 애써 ‘아직도…’라고 되뇌고 있었습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마음속에 담아만 왔던 꿈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한 건 작년 여름 무렵이었습니다. 소설가라는 선망만 가지고 무턱대고 시작한 공부였습니다. 낯설고,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처음 써 본 소설은 엉망이었습니다. 맞춤법, 동사의 시제, 화자의 시점 등, 생각지도 못 했던 것들이 저를 끊임없이 괴롭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묵혀둔 작품이 변할 일이 없으니 나의 안목이 더 발전한 것이라 믿으며, 끝도 없는 퇴고를 계속했습니다. 배봉기, 신덕룡, 이은봉, 이기호, 정용준, 차노휘 교수님.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러고 있을 터입니다.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이제는 네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네 마음대로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기분입니다. 의사면허처럼 말입니다.
면허증이 책임을 부여하고, 책임이란 짐을 지는 순간부터, 나는 고해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면허증이 무겁습니다.
시작하고 싶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나의 방식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부족한 저를 끌어올려 주신 이화경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고, 응모하신 120명의 문청들께 미안합니다. 앞으로, 가끔 쉬어 가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멈춰서 있진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여명진 음악감독"애니메이션 '코코'에는 '영혼이 진짜 죽음에 이르러 소멸하는 순간은 기억에서 잊혀지는 때'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179명을 영원히 기억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습니다."먼 타국 독일 뮌헨에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목숨을 잃은 179명을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린다.이번 음악회를 계획한 독일 천주교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의 여명진 음악감독은 이같은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179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추모음악회를 진행하기로 했다.여 감독은 지난 2007년부터 독일에 거주하며 뮌헨 근교 이스마닝과 운터푀링 지역 가톨릭 전례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거나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연주회를 기획하고 있다.이번 여객기 참사는 매번 비행기에 오르내리며 이별과 만남의 순간을 접해 온 여 감독에게는 큰 충격이었다.큰 비극과 혼란 속 음악가로서 무력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고 고백한 여 감독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제 역할을 하고자 했고, 이번 음악회도 그런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라며 "다행히 생각을 함께하는 동료 음악가들이 순식간에 12명이나 아무런 대가 없이 모여줘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이번 음악회는 오는 26일 오후 6시(현지시각) 뮌헨 근교 운터푀링 (Unterfohring) 지역의 성 발렌틴 성당에서 열린다. 음악회에서는 모짜르트 레퀴엠 중 일부와 마르첼로 오보에 콘체르토, 앤드류 로이드 베버의 자비로운 예수(Pie Jesu) 외에 한국 예술가곡과 동요 '내 영혼 바람 되어' 등이 연주된다.연주가는 성악가 4명과 현악기 앙상블 4명, 오보에 1명, 건반악기 2명, 해금 1명 등 총 12명이다.추모음악회를 위해 모인 이들은 모두 한인 교민으로 이뤄진 음악가들로,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린츠 등에 거주하며 부활절이나 성탄절 행사 또는 프로젝트 음악회 등을 연주하며 만났고, 이번 추모음악회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음과 음을 부드럽게 연주하다'는 뜻의 음악기호인 '이음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음'이라는 이름으로 정했다.그는 이번 음악회에서 '상처를 보듬고, 아픔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하는' 음악의 힘을 전달하고 싶다고 피력했다.여 감독은 "유가족 분들의 아픔은 감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라며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이렇게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분들을 애도하고, 그 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남은 분들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그 마음이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어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면 "영혼이 진짜 죽음에 이르러 소멸하는 순간은 기억에서 잊혀지는 때"라는 대사가 나오는 데 깊이 와닿는 것 같다.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며 "이번 음악회를 통해 먼 곳에 있는 저희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 단순한 추모를 넘어, 그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기억 속에서 함께 살아가게 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길 바란다. 그 기억이 서로를 연결해 주고, 아픔을 나누며, 함께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작은 희망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한편 여명진 음악감독은 올해 앙상블 '이음'으로 공식 창단 음악회와 오는 4월 세월호 11주기 추모음악회를 기획하고 있다.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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