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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올 풀린 기억이 삐져나오지 못하도록 팔순의 노모 허리 꺾어 기역자로 걷는 길이다 따라서 이 길은 더 이상 직선으로 갈 수 없다 불안에서 탄생한 ㄱ은 처음 나온 구멍 근처에서 자주 멈춘다 구멍은 길 위에서 흔들리는 실밥 같은 손짓을 안으로 쟁인다 늘 뾰족한 시간은 구멍을 향하여 한 땀 길 떠난다 마지막 좁은 바늘 길 둥글게 휘돌아 간다
기역에서 기억으로 난 길이 춥다 더 이상 갈 수도 없고 멈출 수 없는 매듭의 위태로운 실의 시간을 허리 굽은 늙은 겨울이 걸어간다 최후의 바늘이 단추의 목을 감싸는 순간 길은 기억으로 둥글게 말린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 바늘의 행방을 묻지 말 것 마지막 길을 떠나는 허기진 물음표들, 억압과 자유, 셀 수 없이 많은 고통의 순간이 찾아와도 언제나
구멍을 향하여 바늘로 질문하는 한 땀의 생
구멍은 늘 춥다
*버튼홀 스티치 [buttonhole stitch] 주로 단춧구멍이나 가장자리의 실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휘갑쳐 뜨는 방법
심사평
참신한 시적 발상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여
김경윤 시인#그림1오른쪽#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역임
현 김남주기념사업회장
지난해는 비상식적인 인간들의 국정농단으로 현실이 문학보다도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요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신춘문예에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작품이 접수되었다. 시 부문만 해도 응모자가 250여명, 투고작이 1천이 넘었다. 투고작이 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비정상적인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노릇이었다.
응모작 중에서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일기예보」, 「아버지의 못」, 「버튼홀스티치」 등 세 작품이었다.
「일기예보」는 장마가 온 어느 여름날의 추억을 노래한 시로 “가난이 갈라진 벽의 각막을 적셨다”와 “라디오의 안테나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은 뛰어났지만 주제를 집약하는 힘이 부족하고, 시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있어 너무 산문적이라는 점에서 언어의 절제력이 아쉬웠다.
「아버지의 못」 은 도배하는 날 낡은 벽지에 드러난 선명한 ‘못자국’에서 시상을 발아하여 ”허름한 점퍼와 바지“가 걸린 못에서 ”아버지의 날지 못하는 날개“을 발견하는 깊은 통찰을 보여 주었다. 일상에서 시적 대상이나 상황을 발견하는 힘이 좋고 시상전개도 안정감이 있어, 시인으로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으나 화법과 언어의 새로움이 부족하여 오랫동안 망설이게 했다.
「버튼홀스티치」는 단춧구멍과 바늘땀을 통해서 삶의 비의를 읽어 내는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적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유의 깊이가 돋보인 작품이다.
일상의 소재인 실과 바늘과 단춧구멍이 여러 겹의 언어의 층위를 이루면서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어 이 시를 읽는 동안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기는 언어의 맛을 느끼게 한다. “최후의 바늘이 단추의 목을 감싸는 순간 길은 기억으로 둥글게 말린다”나 “ 구멍을 향하여 바늘로 질문하는 한 땀의 생”에서 보여주는 감각적 언어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높이 평가하여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소감(시)
시는 고통의 계곡을 나는 한마리 붕새
권성은(본명 권옥희)#그림2왼쪽#
낯선 선물인 듯 불쑥 당선 전화를 받았던,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그 날이 제게는 꿈처럼 아련합니다.
정말 이제 기뻐해도 되는지 제 자신에게 되물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의 행간에서, 무려 열여덟 해 전 어느 신춘문예 심사평 귀퉁이에서 보았던 제 시의 주소가 떠올랐습니다.
그 이후 저는 NGO활동을 하면서 시 쓰기는 사치라는 오만에 빠져 시와 멀어졌습니다. 쉽게 잊혀질 줄 알았던 시가 제 옆구리를 찔러댈 때면 사회정의 가치실현을 핑계로 제 게으름을 정당화 하였습니다.
그러다 2006년에 NGO 단체 대표님으로 원로시인 여민 이기형 선생님을 모시게 되면서 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와 함께 세상의 부조리를 외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여주셨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다시 한걸음씩 시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제 부족한 마음의 행간을 보고 계시는지요?
시는 제게 끝없는 상상의 날개를 달고 험한 고통의 계곡을 날고 있는 한 마리 붕새입니다.
지금 광장에서는 수많은 촛불이 어둠을 향하여 정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시를 쓰고 읽어야 할 시대입니다. 지속되는 불면과 반성의 겨울 밤, 그 고통과 극한의 사막에서 뜻밖에도 당선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났습니다.
먼저 부족한 시에 힘을 실어주신 무등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언제나 시를 놓지 않도록 질책하며 지도하여 주신 박남희 교수님과 동국대평생교육원 일산캠퍼스 행복한 시창작반 교실 아름다운 문우님들, 그리고 고양작가회의 여러분들과 2017년 탄생 100주년을 맞는 통일시인 이기형 기념사업회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구순의 나이에도 어린 아이처럼 함께 기뻐해 주시는 하회댁 울 어무이와 가족들, 여리고 철없는 에미를 묵묵히 감내해준 소중한 아들, 멀리 타국에서 열심히 응원하여 주는 착한 딸내미에게, 한없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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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여명진 음악감독"애니메이션 '코코'에는 '영혼이 진짜 죽음에 이르러 소멸하는 순간은 기억에서 잊혀지는 때'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179명을 영원히 기억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습니다."먼 타국 독일 뮌헨에서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목숨을 잃은 179명을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린다.이번 음악회를 계획한 독일 천주교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의 여명진 음악감독은 이같은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179명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추모음악회를 진행하기로 했다.여 감독은 지난 2007년부터 독일에 거주하며 뮌헨 근교 이스마닝과 운터푀링 지역 가톨릭 전례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거나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연주회를 기획하고 있다.이번 여객기 참사는 매번 비행기에 오르내리며 이별과 만남의 순간을 접해 온 여 감독에게는 큰 충격이었다.큰 비극과 혼란 속 음악가로서 무력함을 느낀 적이 많았다고 고백한 여 감독은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제 역할을 하고자 했고, 이번 음악회도 그런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라며 "다행히 생각을 함께하는 동료 음악가들이 순식간에 12명이나 아무런 대가 없이 모여줘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이번 음악회는 오는 26일 오후 6시(현지시각) 뮌헨 근교 운터푀링 (Unterfohring) 지역의 성 발렌틴 성당에서 열린다. 음악회에서는 모짜르트 레퀴엠 중 일부와 마르첼로 오보에 콘체르토, 앤드류 로이드 베버의 자비로운 예수(Pie Jesu) 외에 한국 예술가곡과 동요 '내 영혼 바람 되어' 등이 연주된다.연주가는 성악가 4명과 현악기 앙상블 4명, 오보에 1명, 건반악기 2명, 해금 1명 등 총 12명이다.추모음악회를 위해 모인 이들은 모두 한인 교민으로 이뤄진 음악가들로,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린츠 등에 거주하며 부활절이나 성탄절 행사 또는 프로젝트 음악회 등을 연주하며 만났고, 이번 추모음악회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음과 음을 부드럽게 연주하다'는 뜻의 음악기호인 '이음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음'이라는 이름으로 정했다.그는 이번 음악회에서 '상처를 보듬고, 아픔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하는' 음악의 힘을 전달하고 싶다고 피력했다.여 감독은 "유가족 분들의 아픔은 감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라며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이렇게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분들을 애도하고, 그 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남은 분들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그 마음이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어 "애니메이션 '코코'를 보면 "영혼이 진짜 죽음에 이르러 소멸하는 순간은 기억에서 잊혀지는 때"라는 대사가 나오는 데 깊이 와닿는 것 같다.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며 "이번 음악회를 통해 먼 곳에 있는 저희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 단순한 추모를 넘어, 그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기억 속에서 함께 살아가게 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길 바란다. 그 기억이 서로를 연결해 주고, 아픔을 나누며, 함께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작은 희망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한편 여명진 음악감독은 올해 앙상블 '이음'으로 공식 창단 음악회와 오는 4월 세월호 11주기 추모음악회를 기획하고 있다.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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