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대응 매뉴얼 필요 한목소리
"빗물이 강물처럼 넘치는 것을 보고 밤새 잠을 못 이뤘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비가 내리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폭우로 침수 피해를 겪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광주 전역에 하룻밤 사이 2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심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해 시민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저지대 침수 피해는 물론 나무가 쓰러지거나 석축이 무너져 내리는 등 폭우 피해가 속출했다.
2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석곡천 일대.
밤 사이 내린 비로 제방 50m가 유실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물이 급격하게 불어났다.
비가 그치면서 긴급 복구 작업에 돌입한 굴삭기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곳 제방과 인접한 월산마을 주민들은 이날 오전 7시께 '동초등학교 강당으로 대피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받고 서둘러 대피 준비를 했으나 비가 잦아들면서 실제 대피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요란하게 쏟아진 폭우로 잠을 이루지 못한 주민들은 무너진 제방 근처에 모여 한숨을 내쉬었다.
월산마을 통장 김효숙(63)씨는 "밤새 요란하게 비가 내려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비가 많이 내린다고 예고된 여름이 채 오기도 전에 벌써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이번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기록적인 폭우가 주기적으로 쏟아지는 만큼 하천 주변 시설물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정비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광산구 한 아파트에서도 폭우로 인한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았다.
해당 아파트는 전날 오후 10시15분께 많은 비가 내리면서 지하주차장에 물이 차올라 입주민들이 지상으로 차를 옮기는 소동이 벌어졌던 곳으로 지하주차장 바닥 곳곳에는 여전히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난생처음으로 침수 피해를 경험한 입주민들은 하나같이 체계적인 재난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만난 유모(48·여)씨는 "배수로가 막혀서 지하주차장으로 물이 차올랐다. 배수로 관리가 안 될 경우 비가 많이 내릴 때마다 침수는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반드시 관리가 필요하다"며 "시민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재난에 대응하는 체계적인 매뉴얼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예고된 재난 상황에 대한 안전불감증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 조모(44·여)씨는 "비가 내리기 전부터 호우 예비특보가 발령돼 있었지만 시교육청에서는 어떠한 권고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폭우로 학교 주변 신호등도 고장나고 시내버스도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등 위험한 순간이 한둘이 아녔다"며 "교육도 교육이지만 이번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단축수업이나 조기하교와 같은 부분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광주 도심 상습침수 구역인 서구 화정동 서석고 주변도 이번 폭우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이곳은 지난해 주민들이 힘을 모아 하수관로 정비를 위한 예산이 확보된 곳이었으나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또다시 피해를 안게 됐다.
박형민 농성·화정동침수피해주민대책위원장은 "지난해 8월 사업비 10억원이 책정돼 올해 6월까지 공사를 마무리 짓기로 약속했으나 지금까지 진행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미 장마철에 접어들어 올해 공사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산도 주민들이 직접 요구해서 만들어진 데다가 수없이 침수로부터 지켜달라고 재촉했음에도 외면한 지자체의 늑장 행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올여름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던데 벌써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 기록적 폭우에도 '사망 0·피해 경미'···전남도 행정력 빛났다 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18일 오전 집중호우 영향으로 하천 범람 위험지역인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벌교천을 방문, 김철우 보성군수로부터 현황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일주일간 최대 600㎜에 가까운 많은 비로 전남 곳곳에 생채기가 남았지만, 사망·실종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는 등 경미한 피해만 발생했다.이처럼 역대급 폭우와 집중호우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큰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배경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철저한 전남도의 준비성이 한몫했다는 평가다.19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광주 전남지역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린 곳은 구례군 성삼재로 강수량 585㎜를 기록했다. 담양군 봉산면 469.5㎜, 곡성군 석곡면 420.5㎜, 광양시 백운산 418.5㎜, 장성군 상무대 387㎜, 영암군 시종면 361.5㎜, 광주 과기원 354㎜, 화순군 북면 346.5㎜, 여수시 돌산읍 344.5㎜ 등 순으로 집계됐다.특히 지난 15~18일까지 구례 성삼재 458.0㎜, 담양 봉산 379.0㎜, 곡성 석곡 374.5㎜ 등 강한 비가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졌다.이번 비로 해남, 강진, 곡성, 보성 등 4개 군에서는 661㏊ 규모의 농경지가 침수 피해가 발생했고 화순군과 보성군을 잇는 국도 58호선 7.8㎞ 구간 등 도로 7곳의 통행이 금지되기도 했다.국가지정 문화재인 영광군 신천리 삼층석탑 주변 석축이 이탈했고, 남주목 향교 부근 담장 일부, 창녕조씨 관해공가옥 담장 일부가 이탈해 문화재청에 긴급 보수를 요청했다. 순천시의 도 지정 문화재인 송매정 원림 소나무가 쓰러졌다.장기간 내린 비로 지반이 약해져 해남군 현산면 소하천인 고현천의 제방 80m가 무너지는 등 축대가 무너지거나 옹벽이 유실되는 등 도내 7개 시군에서 10개 건축물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목포 장애인 거주지설과 여수시 노인요양시설 주변에 토사가 유실돼 입소자들이 대피했다.많은 비로 토사 유실 위험 지역이나 하천 범람 위험 지역 주민 1천415명이 사전 대응 차원에서 친인척집이나 인근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했다.하지만 가장 우려했던 실종·사망 등 인명피해는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역대급 재난을 선방한데는 '행정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18일 오전 보성군 벌교읍 벌교천에서 보성군 관계자들이 중장비를 이용해 하천이 범람할 것에 대비해 방호벽을 쌓고 있다.전남도는 지난달 25일부터 '도민생명 보호 최우선'과 '오히려 과도한 대비가 재해를 피해 갈 수 있다'는 방침을 중심으로 호우 대책을 추진했다.먼저, 집중호우를 대비해 도내 휴양시설과 수목원, 숲길 225곳과 2천270곳의 산사태 위험지역과 급경사지, 붕괴위험 축대를 정비하고 인근 주민들에 대한 대비 훈련을 병행했다.또 낙석 피해가 예상되는 곳에 대한 예찰을 강화하고 시전 통제도 철저히 한 것도 인명피해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은 배경이 됐다.전남도는 산림청의 산사태 위험지역과는 별개로 도 자체적으로 207곳의 산사태 우려지역을 발굴해 행정지원담당관을 22개 시군 전역에 파견, 산림담당 직원과 함께 수차례 합동 예찰을 벌이는 등 안전 사각지대 관리도 강화했다.이같은 사전 준비 덕분에 집중호우 당시 작은 조짐을 발견한 즉시 14개 지역 주민들을 곧바로 대피시키고, 불편함이 없도록 생수와 세면도구, 간편식 등 긴급구호물품도 제공하는 세심한 모습도 보였다. 전남도의 이런 발빠른 조치는 행안부의 수범사례로 꼽혀 전국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저지대나 반지하주택 침수를 대비해 부단체장들은 현장에서 지휘하며 신속하게 대응하는 체계를 만들었다.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19일 호우로 피해를 입은 영광군 군남면 양덕리 농작물(논콩) 침수현장을 방문해 현황 점검 및 농업인들을 위로·격려하고 관계자들에게 신속한 피해복구를 당부하고 있다.황룡강 등 하천변 산책로 43곳을 통제했으며, 화순군 춘양면의 침수와 담양군 붕괴 위험 지역에서 부군수들이 현장 주민들을 발빠르게 대피시킨 것이 현장 대응으로 피해를 최소화한 대표적인 사례다.유관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도 한몫했다. 31사단, 전남경찰청 직원들이 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상주하며 집중호우 당시 교통 통제 인력과 군 장비·병력 투입을 발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방류 시기를 협의하고, 방류에 앞서 주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방류 시기를 사전 통보할 수 있었다.전남도는 도민안전실 자연재난과 직원들은 지난달 26일부터 24시간 비상근무를 했으며, 1천200여 명의 도청 직원 역시 지난 주말부터 지난 18일까지 밤샘 근무하며 긴박한 상황에서 만일의 사태에 곧바로 처리할 수 있는 체계를 실행했다.김영록 전남지사 역시 지난달 24일부터 10차례 이상 호우 대책회의를 진행하며 철저한 대책을 마련한 한편 보성과 함평, 곡성, 해남, 여수 등 현장 방문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김영록 지사는 "산사태 위험 지역을 미리 파악해 대비하고, 주민들을 발빠르게 대피시켜 인명 피해가 단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사고 발생 후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 늦는다. 과도하게 미리미리 점검하고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선정태기자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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