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김호석은 시대의 예술 양식을 만들어 내는 작가"

입력 2023.05.11. 18:33 김혜진 기자
[수묵거장 김호석과 철학자 박구용의 예술산책]
“시대의 전통을
만들어가는
표준적 그림의 길을
만들고 싶다”
한국회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가고 있는 김호석(왼쪽) 화백의 광주 전시에 실천적 철학자 박구용 전남대 교수가 예술과 미학에 관해 대담을 나눴다.대담은 광주시립미술관 관장접견실에서 이뤄졌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서구 현대미술의 거센 흐름 속에 한국 미술의 현대적 계승과 가치 구현, 수묵 리얼리즘으로 세계 평단과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수묵의 거장 김호석 화백 첫 광주 전시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무등일보는 깊은 탐구와 사유, 독보적 화풍으로 세계 미술계에 한국미술의 예술지평을 확장해 가는 김 화백의 예술세계를 살펴보는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특별대담은 학문과 현실을 열정적으로 넘나드는 실천적 철학자 전남대 박구용 교수가 진행했다.


'먹', 근본에 대한 성찰과 원칙

-박구용(이하 박) 교수=이번 전시 제목이 '검은 먹 한 점'이다. 먹을 강조한 이유가 있나.

-김호석(이하 김) 작가=먹 점 한 점은 출발이면서 종국에 마지막이다. 근본에 대한 성찰, 근본에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 검은 점이 어떻게 변모하고 해석되는지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먹을 강조했다.

-박=붓으로 그리지만 작품에는 붓은 남지 않고 붓을 만나 스스로 구현하는 먹의 세계가 남는다. 그간 작가노트에는 점에 대한 사유가 담겨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점은 첫 번째 명제다. 점은 넓이가 없는 위치다. 없는 방식으로 있는 것이다. 점은 부분을 가지지 않는 것, 곧 순수한 순 위치다. 수묵화의 점은 선이면서 면이면서 운동이 되는 것 같다.

-김=내 작품 중에 먹 한 점을 그림으로 형상화한 '아르가르의 향기'라는 작품이 있다. '점이 곧 모든 것이다'를 이야기한 작품이다. 박 교수가 말하는 점은 던져지는 순간에 실체가 있다. 실체가 없는 실체인데 화가 입장에서 드러난 형상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잡혀있는 것이다. 바람의 숨결조차 보지 못하면 진정한 의미로 공간을 운영한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김호석 작 '아파트'. 대학생 신분으로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2등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큰 주목을 받으며 화단에 데뷔했다.

단순할수록 뜻은 확장되고 사유는 깊어져

-박=수묵화는 가장 고전적 재료로 가장 현대적 예술 양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현대 회화의 출발점인 바우하우스나 디터람스는 뺄수록 진짜가 많아진다고 했다. 힘과 깊이가 커진다. 선생님의 작품이 딱 그런 지향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김=공감한다. 단순하고 줄일수록 뜻은 확장되고 사유는 넓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낮과 밤처럼 극단적 두 가지가 섞이고 반대로 되며 수없이 많은 변주를 만들어 낸다. 고전적 재료일지언정 가장 현대적 재료인 것이다.

-박=독일미학자 크리스토프 뱅케가 말한 작가 힘과 능력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조형에 대한 지배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힘을 주지 못한다. 힘은 작가의 삶 자체에서 온다. 선생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김=힘이 빠진 가운데 힘을 어떻게 나타내느냐가 중요하다.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강한 것을 이긴다. 그림을 그리는 도중 무의식적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맺고 풀리는 부분의 접점을 작가가 찾아야한다. 가장 계획돼 있어야 하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 철저한 계산이 있어야 한다.


단호와 담백, 낯설게 하기

-박=선생님의 작품은 '이렇게 봐야 해'하는 것이 없다고 보인다. 이것이 강력한 힘이다. 힘을 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나.

-김=하나의 작품을 이끌어가는 힘은 모든 사물에 대해 작가가 양심 있게 밀착하며 압착해 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관찰하는 힘이다.

-박=군중화에서 두가지를 주목한다. 양식상으로 동양 수묵화의 서사를 응축하는 점이 있고, 다른 하나는 등장인물들이 한 공간에 있지만 하나로 휩쓸리지 않는다. 작가가 공간속으로 들어가 고발하는 것 같다.

-김='민주화운동사'를 그리며 시대에 대한 보편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했 다.??내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석하길 바랐다. 시대에 대한 최소한의 보도자, 감시자로 작업했다. 시대의 아픔 공유는 기본이라 생각한다.? 전 과정을 압착시켜 과정을 하나로 만들어내는 서사구조를 이끌어간다.? 그림속에 들어가 있는 화가는 낯설게하기 위한 것이다.?

-박=낯설게하기는 대개 단호하고 담백하지 않다. 선생님 작품은 단호하고 담백한 조형양식과 낯설게하기가 충돌하면서 화해되지 않은 상태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사유하게 한다.

-김=동의한다. 왜 단호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림에 대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붓을 칼이라고 생각한다또 먹은 금처럼 애낀다. 붓은 칼처럼, 먹은 금처럼. 그러다보니 그림이 텅텅비워져서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서당 훈장하시던 우리 할아버지가 내게 왜 그림을 그리냐고 물었을 때 그림 그려서 성인이 되려고 한다고 했다. 그림 통해서 사람들이 맑고 투명한 사회 속 이렇게 사는 것이 서로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했다.

김호석 작 '광주민주화운동사'. 제3회 광주비엔날레 미술기자상을 받은 작품이다.

무의미한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박=선생님의 칼, 붓은 무의미하게 버려진 많은 존재, 사람들이 무의미하다고 하는 것의 의미를 살리는,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김=칼을 갈지 않으면 사람이 다친다. 그림 통해 그런 책임감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정신적 영향을 주면서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하게 만든다면 그림이 가진 폭력성이라고 생각한다.

-박=이번 전시의 작품을 관통하는 두가지가 손과 눈이다. 해겔은 조각보다 그림이 많은 정신을 표현한다고 했는데 조각은 회화만큼 '눈'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번 전시의? '손' 작품은 충격적 감흥을 준다. 괭장한 애정을 갖고 있다. '기원'이란 작품의 손은 수묵화로 가능한 것인지 싶어질 정도다.

-김=그 그림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 모습이다. 바늘 한톨 들어갈 수 없는 어머니의 손을 생명의 존귀함, 어머니의 지극함과 숭고함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고민했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숨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살아왔는가 삶에 대한 편린이 손에 농축돼 있다. 손을 장악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마추어다. 로댕은 평생 손만 그렸다. 손은 곧 감각이다.

-박=암각화 연구대가시다. 한국의 바위그림 연구를 위해 세계 돌아다니셨다. 암각화에는 신석기 시대부터의 세계관이 있다. 선생님 논문에서 선생님은 수만년전 선조들의 느낌을 느끼셨다고 봤다.


전통을 버리기 위해 전통을 공부한다

-김=언제나 본질, 원형, 근거를 자꾸 파고 들어가는데 전통을 버리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암각화의 시작은 우리 핏 속의 장엄한 유목민의 피다. 장엄함과 생명력 넘치는 유목민의 미학은 무엇일까. 암각화는 인간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철학의 표현이다. 이런 부분에서 동의한다.

-박=암각화에도 손이 많다. 가장 중요한 세상과 연결된 신체적 기호가 손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우리나라는 암각화 자료가 거의 없다.? 학자들 의견은 내가 이 땅에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본다.암각화는 처음으로 손으로 만지면서 가꾸었던 터전, 신과 만났던 장소를더럽히지 말자는 표현이다. 나는 그것을 '거꾸로 흐르는 강'으로 표현했다.

김호석 작 '한용운-파리'(왼쪽), '황희'

동서양 예술 경계를 뛰어넘는 김호석 수묵의 힘

-박=서양 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선생님 작품에는 동양적 회화의 느낌이 전혀 없다. 특히 '거꾸로 흐르는 강'과 '빛 1' '빛2'는 하루 종일 보고 싶은 작품이다.

-김='거꾸로 흐르는 강'은 역사를 살아간다는 사람이 내가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이 된다는 것은 치욕이라고 생각하며 그린 작품이다.

-박=선생님 작품은 보는사람마다 시대마다 다 다르게 생각하게 한다. 그게 진짜 살아있는 작품이다.

-김=그게 예술의 힘 아닌가. 문화에 대한 가치는 수직적이라 아는 이상 해석이 안된다.아는만큼 보인다

-박=선생님을 동양의 수묵화가로 칭하는건 안맞는다.?

-김=1970년대 '나는 동양화니, 서양화니, 채색이니, 수묵이니 이런 말에 갇히고 싶지 않다'고 쓴 글이 생각난다.

-박=전통을 잇는다기보다는 전통을 살아있게 하고 싶은 것 같다.

-김=지금 시대의 전통으로 만들어가는, 표본이고 길이되는 표준적인 그림, 길을 만들고 싶다.

-박=선생님의 대표적 조형 기법을 두 가지 정도 설명해준다면.

-김=대표적 기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상에 대한 끝없는 탐구, 끝없이 관찰하며 대화하다 보면 어느 지경에 내가 대상이 되고 대상이 내게 걸어오는 때를 만난다. 내 모든 그림은 그렇게 대상이 나를 부른 경우다. 그리고 거기에 맞게 붓을 쓸 뿐 기법은 없다.

-박=헤겔이란 철학자는 예술은 정신의 감각적 표현이라고 했다. 뜻을 그리는 것이 선생님의 모토인데 정신이 응축되는 눈, 눈을 이야기할 때 황희정승의 작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사람을 눈빛으로 먼저 느낀다. 사회가 좋지 못했을 때 사표(師表)가 되는 인물이 누굴까 생각 할 때 황희였다. 험학한 시대에 황희 힘을 빌려, 사방시가 되어 사납고 악한 눈이 한국사회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강한 바람을 담았다. 뉴욕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황희', 대상화 넘어서기, 서양미학의 최고점

-박='황희'는 선생님을 대표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의도했든 안 했든 대상화를 못하게 한다. 거꾸로 황희 정승이 우리를 심판하는 듯 하다. 서양미학자들이 수없이 '대상화를 거부하고 심문하는 눈'을 구현하고자 했는데 단 한사람도 구현해낸 사람이 없다.?

-김=맞다. 그것을 읽어내다니 놀랍다. 자기가 보이지 않고 남만 보일 때가 있고 자기만 보일 때가 있다. 남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고 결국 그것이 나의 눈으로 환원될 때부터 남과 내가 경계가 없어진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며 곧 예술로 진입할 수 있는 경계다.

-박=선생님 작품 중?‘거꾸로 흐르는 강’과 ‘빛1’ ‘빛2’, ‘황희’는 대체불가능한 작품이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다.'관음'이라는 작품은 정신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선생님은 고양이 그림을 그렸는데 카프카식으로 하면 동물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가장 낮은 것, 가장 버림받는 것이 되어서. 우리 역사로 보면 한용운 선생의 작품이 그렇다. 쥐, 파리, 모기처럼 하찮은 존재들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김=무가치하다, 가치있다는 것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미물이지만 이 미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파리는 모든 사체의 눈에 알을 낳는다. 4~5일만 되면 구더기는 파리가 된다. 한용운은 이 미물들을 동등한 개념으로 환원시킨다.

김준기(오른쪽 두번째) 광주시립미술관장과 이태호(맨 오른쪽) 교수가 대담장을 찾아 대담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동서양 양식을 넘어선 양식

-박=오월 관련 작품의 경우 서사를 응축시키려 하고, 수십만의 관점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림을 관통하는 힘이다. 또 양식은 서양 포스트모던에 가깝다. 양식을 넘나드는 것은 표현에 적합할 때 그런 것인가.

-김=그렇다.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눈 하나만 그리는 것이 최 극점이라 생각했다. 양식 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대상이 주체가 되어 말하는 것을 내가 찾을 뿐이지 새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박=미학적으로 선생님 작품은 상징, 메타포, 알레고리 세가지 기법이 들어있다.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을 맥락을 이탈시켜 결합하는 것, 단상들의 결합. 발터벤자민이 위대한 역사화라고 이야기한 부분과 딱 맞는다.

-김=수없이 많은 내레이터를 등장시키려고 노력한다. 상징은 초월을 전제로 하지 않는가. 진짜 소리는 보는 것이고 빛은 듣는 것이다.


무등, 인류 고차원의 복원력 뛰어난 에너지

-박=광주시민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오월 관련 작품 전체를 흐르는 힘은 무등(無等)이다. 무등에 대해 한 말씀해 달라.

-김=무등은 등급이나 차별이 없는 평등이다. 인류 고차원적 영역이다. 있고 없음이 똑같은 세상이다. 복원이 뛰어난 에너지다. 사랑을,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정신이기에 무등은 사랑이다.

한국 사회가 무등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의롭지 않은 것에 들불처럼 일어나는 무등은 한국사회의 활력이 될 것이고 광주 사람의 자부심인 정의감이 우리 생명력이라는 것을 느낀다면 휘둘리지도 않을 테다.


김호석

1979년 학생 신분으로 중앙미술대전에서 수상( ‘아파트’)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1999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미술기자상(‘광주민주화운동사’)을 수상했다. 치밀한 연구와 독창적 화법의 그의 작품 115점이 교과서에 실렸다. 10만권을 보유한 독서광이자 한국 암각화로 동국대에서 박사를 받은 연구자로 ‘모든 벽은 문이다’ 등 많은 저서를 냈다. 정읍 독립운동가 후손이다.


박구용

전남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를 받았으며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정치철학과 미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시민자유대학을 이끌며 세계시민적 관점의 학문과 예술 운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 안의 타자’, ‘자유의 폭력’ 등 저서를 통해 우리시대를 철학적 관점으로 사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한편 현실과 학문을 넘나드는 실천적 철학자다.


정리=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김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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