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외교정치에 포획된 광주비엔날레···누가 예술을 '정치화'했나

@조덕진 입력 2026.09.09. 17:29
조덕진 주필(행정학 박사)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순식간에 양안 갈등의 한복판으로 휘말렸다. 비엔날레 파빌리온에 참여한 국립대만미술관의 명칭 논란에서 촉발됐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참여 기관 영문 약칭 ‘NTMoFA 파빌리온’으로 표기했다는 입장인 반면, 미술관 측은 당초 협의된 ‘대만관’ 명칭을 재단이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진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역 예술인들은 이를 정치적 검열로 ‘규정’하며 비판에 가세했고, 사안이 사회적 쟁점으로 커지자 재단은 대만관 명칭을 승인했다. 그러자 중국이 반발했다. 중국 대사가 광주특별시를 방문해 유감을 표명했고 중국관 작가들은 전시에서 철수했다. 광저우시 대표단의 광주 방문과 여수세계섬박람회 참여까지 취소됐다. 광주비엔날레가 순식간에 외교정치에 포획된 양상이다.

국제 예술행사장의 양안 갈등

주목할 점은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앞세워 국제예술행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02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는 대만 전시에 ‘Taiwan’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경우 중국 작가들을 철수시키겠다고 압박해 주최 측이 명칭을 ‘Taipei Fine Arts Museum’으로 바꿨다. 2003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서는 중국의 압력으로 대만이 정식 국가관 지위를 잃고 병행전시 형태로 참가해야 했다. 2007년 프라하 콰드리엔날레에서는 주최 측이 자신들의 요구를 거부하자 참가를 철회했다.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광주비엔날레가 맞닥뜨린 것은 국제예술계에서 되풀이돼온 양안 갈등의 광주 버전인 셈이다.

이 익숙한 데자뷔를 왜 광주는 뒤늦게 되풀이하는가. 이번 사태를 재단의 ‘검열’로 규정한 지역 예술계와 충분한 검증 없이 확대 재생산된 파장이 만들어낸 여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열이란 권력을 가진 주체가 표현물의 내용을 사전에 심사하거나 사후에 통제해 표현을 제한하는 경우라 할 때 사실 검열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지역 예술계의 ‘정치적 검열’규탄 성명과 일파만파로 확산된 언론 보도, 사회적 압박은 재단을 선택의 자리로 내몰았다. 재단은 협약과 운영 원칙, 대만 측 반발, 지역 여론, 외교적 파장 사이에서 떠밀리듯 결정을 내린 측면이 크다.

문제는 따로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주먹구구식 파빌리온 운영이다. 재단은 국가관과 기관관을 구분해왔다고 설명하지만, 그 기준이 엄격하고 일관되게 적용됐는지는 의문이다. 국가와 도시, 공공미술관과 민간 예술단체가 한 체계 안에 뒤섞여 있고, 심지어 특정 파빌리온은 큐레이터를 고용해 구성하기도 했다. 해당 국가의 대사관이나 문화기관이 직접 운영한 곳은 많지 않았고, 국제적 대표성이나 공신력을 확인하기 어려운 소규모 단체의 전시에도 국가 이름을 부여하기도 했다. 숫자 늘리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가관과 기관관의 기준, 명칭 결정 및 변경 권한, 참가자와의 협의 절차, 외교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적용할 원칙도 분명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파빌리온에 지난 비엔날레의 경우 30억 원가량을 쏟아부었다. 이제 참여 숫자나 외형적 확대가 아니라 사업의 목적과 성과를 따져야 할 때다. 참여 기관이 국제미술계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 지역 작가와 미술 기관에는 무엇을 남겼는지 면밀히 따져야 한다. 왜, 무엇을 위해 파빌리온을 운영하는지 원점에서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재단을 검열의 주체로 단정하는 것과 이러한 운영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재단의 책임은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의도보다 국제행사를 감당할 제도와 판단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데 있다. 설명이 늦고 대응이 오락가락한 점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대만 측의 요구와 지역 여론, 중국의 외교적 반발 사이에서 재단이 처한 곤경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의도를 재단에 씌우고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 외교적 압력뿐 아니라 성급한 낙인과 여론의 압박 역시 예술기관의 자율적 판단을 위축시킬 수 있다.

여기서 발터 벤야민의 ‘정치의 미학화’와 ‘예술의 정치화’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벤야민은 파시즘이 이미지와 스펙터클, 대중의 미적 경험을 동원해 정치 자체를 미학화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후 나치가 이를 가장 극적으로 활용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맞서는 개념으로 제시한 것이 ‘예술의 정치화’였다. 예술이 정치적 현실을 말하고 현실에 개입하는 것과 정치 권력이 예술을 정치의 도구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의 미학화, 예술의 정치화

예술의 자유는 무균실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현실을 말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것 또한 예술의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가 국가와 외교, 여론의 힘에 의해 대신 결정되는 순간 예술은 정치의 도구가 된다. 광주비엔날레가 이번 사태에서 배워야 할 것은 정치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이 아니다. 외교적 압력이나 여론, 성급한 낙인 속에서도 사실과 계약, 표현의 자유에 근거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제도와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저마다의 이름으로 한 공간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광주 정신을 계승한 국제예술행사가 지켜야 할 자유의 얼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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