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실험이 시작됐다. 이 나라의 미래를 건 호남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거대한 항해를 시작한다. K 민주주의의 심장, 독재 권력의 배제와 소외의 땅에서 대한민국 운명을 건 거대한 판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의 관성으로는, 몸체나 불리는 하드웨어식 사유로는 거대한 미래를 담아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형에 걸맞는 ‘인식의 전환’, 도시를 야망하는 담대한 사유의 영토다. 새로운 상상력의 영토에서 21세기적 도시를 야망해야한다.
새로운 사유로 도시를 야망해야
폐허에 구글을 불러들인 도시가 있다. 2000년대 초반, 베를린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가 던진 한마디는 전 세계 도시 정책가들의 심장을 울렸다. “베를린은 가난하다.그러나 섹시하다(Arm, aber sexy).” 당시 베를린은 파산한 도시였다. 뮌헨의 대기업도, 프랑크푸르트의 거대 금융 자본도 없다. 실업률은 20%로 치솟았고, 도시는 분단의 상흔이 어린 폐공장과 흉물스러운 빈집들이 방치된 지경이었다. 이때 클라우스는 자본을 구걸하는 대신, 그 버려진 도시 공간을 전 세계 예술가, 기획자, 뮤지션들에게 전격 개방했다. 도시가 변했다. 날 것의 자유와 창의가 흘러넘쳤다. 낡은 건물들은 밤이 되면 전 세계 테크노 음악의 성지로 변했고, 낮에는 가장 전위적인 실험실이었다. 답을 강요하지 않는 ‘힙(Hip)한 문화 생태계’가 도시의 심장박동이 됐다.
다음 순간 비지니스가 폭발했다. 예술가들이 발산해낸 창의적인 공기를 찾아 전 세계 최첨단의 창업가와 개발자들이 몰려들었다. 낡은 양조장을 개조한 ‘팩토리 베를린’에 구글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고, 팩토리 베를린은 단숨에 글로벌 허브가 됐다.
오스틴의 사례는 좀 더 로컬이 강하다. 주도이면서도 휴스턴에 경제나 스포츠 등에서 압도적으로 밀려 존재감이 없던 오스틴은 현재 애플, 테슬라, 구글 등 실리콘밸리 포식자들이 천문학적인 자본을 들여 제2의 홈그라운드로 삼은 첨단 테크의 메카다. 이 도시는 미국에서 인디 문화와 라이브 음악이 가장 활발한, ‘가장 별나고 역동적인 도시’다. 그들은 자신들이 뉴욕 등 대도시와 같기를 거부한다. “오스틴을 계속 별나게 유지하자(Keep Austin Weird)”는 슬로건을 도시의 모토로 삼았을 정도다. 1987년 시작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SXSW)’는 자신들 음악 선전장으로 작게 출발했다. 언제부터인가 이 ‘별난’ 음악 축제는 기술과 음악, 영화가 경계 없이 뒤섞인 광란의 비즈니스로, 매년 봄 도시 전역을 마비시킨다. 세계 3대 음악 축제이자 최대 음악시장이다. 기술을 담는 육체는 텍사스의 전력과 인프라지만, 빅테크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인 강력한 자석은 오스틴의 독보적인 문화예술이다. 이 ‘음악도시’는유네스코 지정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다. 산업 확장을 위한 외연확장으로 미디어아트를 선택했다.
기술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빅테크와 천재들의 발길을 붙잡는 도시의 매력은 돈으로 급조할 수 없다. 치명적인 미끼이자 차별화된 전략이 바로 ‘문화예술’이라는 걸 세계 많은 도시들이 증언하고 있다.
아시아 변방의 광주특별시는 천상의 카드를 쥐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상징되는 문화예술 자산에 최첨단의 AI 산업, 압도적인 신재생에너지, 광활한 해양 자연 생태계, 여기에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화룡점정까지.
다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많은 부분이 보고서 속에 갇혀 있고, 비엔날레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예술 축제들은 ‘축제를 위한 축제’로 전락해 지루한 관성을 반복 재생하고 있다. 지역민조차 예의로 소비하는 박제된 문화로는 다가올 AI 시대의 빅테크들과 조응하기 어렵다.
산업화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유로 판을 완전히 뒤엎어야 한다. 예술을 세계 몇 위라는 숫자로 기록하는, 허랑방탕한 선전에나 안주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꿈꾸어야 할 진짜 판은 빅테크를 매료시킬 ‘생생한 문화 생태계’다.
이 광활한 대지에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시혜나 호의에 연명하던 변방의 잔치는 끝났다. 우리가 그려갈 도시는 기술과 문화예술이 결합한 전혀 다른, 새로운 종(種)이어야 한다.
산업단지 조성과 같은 하드웨어는 상수다. ‘진짜’는 그들의 발길, 마음을 붙드는 도시의 매력, 유혹의 에너지다. 그 치명적 전략은 ‘문화예술’이다. 복제 불가능한 독점적 무기는 기술이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각, 예술, 인간의 삶이다. 그것은 한가로운 취향의 영역이 아니다. 글로벌 빅테크 전쟁에 살아남기 위한 생생한 생존전략이다.
혹여 광주특별시가 수도권에 버금가는 ‘제2의 도시’ 등이나 구상해선 안 될 일이다. 그런 구차한 복제는 머지않아 수도권 블랙홀에 먹히는 필멸의 길이다.
전혀 다른 단독자의 종 선언해야
광주특별시와 새롭게 출범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의 역할과 하모니가 절실하다. 척박한 역사의 돌바닥 위에 온몸을 밀착한 채, 독자적 기운과 집중력으로 전진하는 단독자(單獨者)의 매력을 발산할 때다. 오직 우리만의, 복제 불가능한, 매혹의 도시를 야망해야 한다. 새로운 종(種)의 탄생을 선언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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