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 발생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사태는 두가지 질문을 남겼다.
사태가 발생한 기업 대표의 부실한 사과와 그의 극우적 정치 성향이 동시에 들어나면서 사과에 진정성 있는지에 대한 시각과 ‘일베’의 희생자 조롱·역사 왜곡·혐오 확산·지역 비하를 어떻게 근절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줬다.
사태 8일 만에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사과는 대체로 말 뿐인, 그래서 값 싼 사과여서 이 순간만을 벗어나면 된다는 생각이었느냐는 비판이다. 정 회장은 과거 자신의 극우적 발언과 행보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도 없었으며, “전국의 매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스타벅스 직원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달라거나,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더 나은 세상을 미래세대에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은 같다”는 등의 발언은 그가 카메라 앞에 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만 남겼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의 사과는 소비자들이 기대했던 수준의 책임 조치나 비용 부담을 수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값싼 말(cheap talk)’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는다. ‘탱크데이’ 사태 이후 스타벅스의 손해는 정 회장의 행보와 신세계그룹의 내부 검증 시스템 미비, 사건 이후 충분히 책임지지 않는 태도 등으로 자초한 경제적 후과일 뿐이다.
◆ 기업의 사과에는 큰 비용이 든다
1982년 9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에서 미국 1위 진통제인 타이레놀을 복용한 뒤 7명이 독극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제조사 존슨앤드존슨의 대응은 신속했다. CEO 제임스 버크는 즉시 소비자들에게 타이레놀 복용을 중단하도록 알리고 정보 공개와 소통에 앞장섰다.
독극물은 소매 단계에서 유입돼 사실상 제조사 책임이 아니었지만, 제임스 버크가 TV에 출연해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이미 판매된 타이레놀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렸다. 이와 동시에 소비자에게 판매된 타이레놀 3천만 병은 전량 회수하고 재고 물량 전부도 폐기했다. 이러한 조치에는 1억 달러가 지출됐다.
4년 뒤인 1986년 유사 사건이 재발하자 제임스 버크는 아예 캡슐 판매를 영구 중단하고 패키징을 ‘캐플릿(Caplet)’과 ‘3중 캡슐’로 변경했다. 진정한 사과와 신속·투명한 정보 전달, 책임 있는 후속 조치에 소비자 신뢰는 금세 회복됐다.
진실된 사과와 발빠른 조치로 경영이 어려워졌던 존슨앤드존슨사는 사건 몇 달 안에 원래의 시장 점유율을 회복했고 이미지도 대폭 개선됐다. 더불어 이 일 덕분에 타이레놀은 급속도로 점유율이 상승해 두고두고 칭송받는 케이스가 됐다. 이후 기업 존립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든 제임스 버크의 대응은 지금까지도 경영 위기 관리의 바이블이자 윤리 경영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
게임이론에서 신뢰할 수 없는 말만의 소통을 ‘Cheap Talk’, 상대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희생과 비용이 수반된 행동을 ‘Costly Signal’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말보다 행동을 믿는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값 싼 말뿐인 사과인지, 사태 수습을 위해 큰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된 진정성이 있는지는 그 혹은 그 기업이 들이는 비용에 달렸다는 의미다.
◆ 값 싼 사과, 그 이면에는 숨겨진 것
넷플릭스 ‘참교육’ 6화에서 촉법소년들은 교권보호국 감독관들에게 “깊이 반성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사과했다. 나화진 감독관은 “진작 반성했어야 했다. 하지만 용서는 피해자에게 하는 것”이라고 일갈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에드윈 바티스텔라 교수의 ‘공개 사과의 기술’에 언급된 내용이 기도 하다. 바티스텔라 교수가 책에서 ‘사과가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의 결정은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달렸다’고 결론지었다. 사과의 완성은 사과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사과는 말하는 순간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가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타이레놀이 지금까지 위기관리의 모범 사례로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들은 사과문이 아니라 기업이 감수한 책임과 비용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과의 가치는 말의 진정성이 아니라 행동의 무게로 증명된다.
◆ 일베, 사라지지 않는 사회의 독버섯
스타벅스는 ‘탱크데이’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오는 22일 전국 매장 문을 닫고 역사 인식과 사회적 감수성 교육을 진행한다. 그러나 몇 시간의 교육만으로 왜곡된 역사 인식과 혐오 문화가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스타벅스의 실수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5·18과 광주를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해 온 ‘일베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일베가 사회적 문제로 지적받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이들의 아픔을 조롱하고, 역사적 비극을 놀이처럼 소비하며, 특정 지역과 집단에 대한 혐오를 반복적으로 생산해 왔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희생자를 조롱하고 공동체의 상처를 비웃는 이러한 폭력이 표현의 자유나 풍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5·18 왜곡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일베의 조롱과 왜곡이 현실 공간으로 확장되고, 기업과 조직, 일상 속으로 침투한지도 오래다. 이번 사태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동안 일베식 사고가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경고장이다.
결국 이번 사태가 던진 질문은 단순히 정용진 회장의 사과가 진심이었느냐에 머물지 않는다. ‘일베’의 혐오가 기업과 사회 곳곳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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