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아들이 말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다시 또박또박 연명치료 거부에 대해 설명했다. 어머니는 잠시 아들의 눈을 응시하더니 종이를 갖고 오라고 했다. 갱지를 가져다주니 아들이 들고 있는 사전의향서를 가리켰다.
어머니는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에 자필로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6개월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 출근길에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 차를 시골로 돌렸다.
안방에서 마주한 어머니의 모습은 옆으로 누워 잠자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니 가냘픈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름 가득한 얼굴이지만 어머니 얼굴은 평온했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프거나 찡그린 표정이 아니었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6년 동안의 투병 생활 고통 때문에 어머니가 연명치료 거부에 동의했는지 알 수 없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사인했는지도 모른다.
요양병원에 가면 굶어 죽는다고 믿고 살았던 어머니는 생전 요양병원을 지극히 싫어하셨다. 시골집으로 모시기 전 2개월 동안 요양병원에 머물렀다. 주말 면회 갈 때마다 시골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시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셨다.
그런 어머니가 평안한 모습으로 세상과 이별한 것이다. 온화한 얼굴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준 어머니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편안한 죽음을 원한다. 그곳이 병원이든 집이든 상관없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의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8월 연명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300만 명을 넘어섰다. 올해 4월 현재 335만2천183명이 국립연명의료관리관에 등록되어 있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이 도입된 지 7년 만이며 전체 성인 인구의 6.8%에 해당한다.
인구 자연 감소가 고착화되면서 초고령화 및 다사사회 진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생을 지칭하는 에코붐세대의 혼인과 출산 증가로 인해 출생아 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한 사망자 수의 급격한 증가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산업화와 현대화의 주역이었던 베이비 부머 세대의 퇴장과 맞물려 다사사회의 진입이 더욱 가팔라질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조만간 장례식장을 예약해야 하는 임종 대란이 다가올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웰 다잉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전문가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고립에서 벗어나 죽음을 함께 준비하고 고민하는 교육 및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죽음을 개인 문제로 두지 말고 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고 와서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가난과 고립 속에서도 고인의 존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 권리 중 하나다. 삶의 끝자락을 정리하고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돌봄을 주는 제도가 호스피스다.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광주전남에는 호스피스 8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주로 입원형이다.
재가 임종이 가능한 가정형 호스피스는 1곳 밖에 없다.
가족 옆에서 세상을 고별하는 평범한 모습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얘기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전국적으로 8만1천220명이다. 이중 호스피스 이용자는 30%에 불과했다. 나머지 5만7천 명은 요양병원, 응급실을 떠돌다 고통과 불안 속에서 사망했다. 편히 죽을 곳을 찾지 못하고 떠났다는 뜻에서 이들을 임종 난민이라고 부른다.
정부가 최근 요양병원에 호스피스 제도를 도입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3일에는 보건복지부 1차관을 사회적 고립 전담 차관으로 지정했다. 일명 고독사 전담 차관이다. 고독사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사회적 고립의 결과로 인식해 범정부 컨트롤 타워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사후적 고독사 방지 정책에서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시의적절한 대응이다.
고독사를 예방하고 죽음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최우선 복지의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8년 영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일본은 2021년 고독 고립 담당 장관을 신설해 고독사를 정부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품위 있는 죽음은 몸과 마음이 편안할 때 가능하다. 통증이 다스려지고 죽음의 공포가 누그러져야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웰 다잉을 실현하고 고독사를 줄이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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