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그늘을 사랑하는 사회, 꽃 핀 쪽으로

@조덕진 입력 2026.04.22. 16:19

비어있던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가 12년 만에 채워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세월호 기억식에 참석했다. 국민적 참사에 대통령이 참석해 위로하는 일이 당연지사일진대, 12년이 걸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민을 지켜내는 나라,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에 이르러서는 가슴 먹먹하다. 당연지사에 두근거리는 위로를 받는다. 이 나라의 아픈 얼굴이다.

부조리에 맞서는 응시의 정치

화사해서 슬픈 대한민국의 4월이 숨 가쁘게 흘러간다. 잊고 있던, 심장을 후벼 파는 상실의 감각이 봄 바람에 살아 오르고, 한 맺힌 그리움에 심장이 멎어온다. 벚꽃은 흐드러지는데, 꽃들이 흐드러져서 가슴 저린다.

이 나라의 봄은 아리고 아린 제주 4·3으로 시작한다. 세월호( 4·16)를 건너 4·19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아픔을 송두리째 품고 있다. 국가폭력이나 참사의 고통보다 더 가혹한 건 좀비 같은 비인간의 칼춤이다. 뒤틀린 권력, 그에 빌붙어 기생하는 자들의 반복 가해는 참혹하다.

이승만 정권에 학살당한 제주도민들은 상처를 살필 겨를도 없었다. 무도한 정권과 거기에 연명하는 자들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수십 년을 숨죽여 지냈다. 세월호는 어떤가. 보수극단주의자라는 저급한 비인간들의 능욕과, 적극적으로 방조하는 반인륜적 공권력을 감당해야 했다. 4·19라고 온전한가. 반일종족주의 집단을 선두로 학살자 이승만 부활을 획책하며 국민들이 피로 지켜낸 4·19를 짓밟고 있다. 국민을 부정하는 작태다. 그뿐인가. 제주도민을 학살하라는 이승만의 학살 명령을 거부한, 여수13연대를 필두로한 여수·순천 주둔군의 위민정신은 만신창이로 짓밟혔다. 이 과정에서 죄없이 학살당한 여수·순천 지역민들까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에 갇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 척박한 길 위에서 피해 당사자와 유족들이 운영을 달리하는 사이, 꽃은 저토록 화사하게 피고있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똑똑히 응시’하라고 역설했다. 고통받는 인간을 외면하지 않고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눈을 뜨고 견디는 실존적 태도다.

지난 12년, 이 나라 권력은 국민 상처와 아픔을 외면하고 짓밟았다. 국가 잘못으로, 대명천지에, 눈앞에서 자식을 떠나보낸 국민의 통곡에 고개 돌렸다. 심지어 비인간들의 광란의 칼춤을 적극 방조했다. 저들의 칼춤은 이 방조 위에 악랄한 성을 쌓았다. 주범은 누구인가.

이 황량하고 참담한 대한민국의 봄길에 이재명 대통령이 12년 만에 기를 냈다. 끝없이 n차 가해를 일삼던 범죄적 국가를 벗어 던지고 국민의 절망의 그늘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인도주의의 얼굴이자, 훼손된 인간 존엄을 국가의 이름으로 수습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 최근 보여준 전쟁에 대한 인도주의적 발언 역시 연장선에 있다. 전쟁은 국가가 행하는 가장 거대한 부조리다.

토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전 세계의 행복이 무고한 어린아이의 눈물 한 방울만큼의 가치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어떤 명분도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외침은 세월호의 눈물과 맞닿아 있다. 타국의 비극에 공감하는 보편적 인류애를 가진 국가만이 자국민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겸허할 수 있다.

4·3의 동백꽃을 보듬는 마음과 국제 분쟁 지역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도 같은 뿌리다. 12년 만에 채워진 대통령의 자리는 효율과 성장, 혹은 하찮은 이익을 위해 생명을 유예했던 ‘잔학한 봄’과 작별하고,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세우겠다는 다짐이다.

4월의 통증을 안고 건너다 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5월 광주와 마주하게 된다. 4월의 눈물이 5월의 외침이 되었고, 그 외침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면면히 이어지는 인본에 바탕한 민주주의 정신을 매년 반복되는 계절적 행사로나 가둬선 안 될 일이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새겨 넣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우리가 흘린 피와 눈물을 국가의 최고 규범이자 영구적인 약속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오는 46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다짐이 5월 하늘에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헌법 수록은 미래 세대에게 ‘어떠한 권력도 인간의 존엄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명확한 이정표를 남겨주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헌법 조항을 펼쳐 보이며 ‘국가는 너희의 눈물을 닦아주고, 너희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역사의 아픔을 응시하는 약속의 공동체’라고 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영원히 지지 않는 기억의 꽃

대통령의 세월호 참석으로 상징되는 이 치유의 여정은 5·18을 헌법에 아로새김으로써 완성되리라 기대된다. 과거의 비극에 반항하며 기억을 멈추지 않을 때, 우리 공동체가 진정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 대통령이 12년 만에 채운 그 자리는 가장 낮은 곳을 비추는 등불이다. 4월의 눈물이 5월의 희망을 지나, 미래 세대를 지켜주는 단단한 법과 제도의 갑옷으로 피어나길 기대한다.

조덕진 이사 겸 주필·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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