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서울의 아이히만들, 이 나라 사법부에 弔鐘(조종)을

@조덕진 입력 2026.01.28. 16:58
조덕진 이사 겸 주필·행정학 박사

“차후에 (비상계엄이)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2024년 12월4일 아침, 조희대 대법원장이 출근길에 한 말이다. 내란에 대한 대법원장의 첫 공식 발언이다. 전후 맥락을 아무리 뒤집어봐도 계엄의 위법성을 즉시 판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일반 국민은 윤석열의 반헌법적 불법 계엄에 분노해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의 총칼에 맨몸으로 맞섰던 다음 날 아침의 일이다.

해묵은 법기술, 부역의 DNA

저 대법원장, 2023년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역사에 남을 법기술을 박제했다. “‘증거인멸·도주 우려라는 구속 요건 판단’이었다”. 대표적 공안사건 중 하나인 1989년 ‘인노회(인천지역 노동운동 조직) 사건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그에게 다시 청구했고 이를 발부한 것이다. 또 저 내란의 밤에는 조희대 대법원이 “계엄사령관 지시와 비상계엄 매뉴얼에 따라 향후 대응을 마련”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했다. 언론에 보도까지 했다. 내란 청문회와 언론추적을 통해 밝혀진 일이다.

그러나 대명천지에 법원이 폭도들에 공격당했을 때는 쥐 죽은 듯, 일언반구 입장 하나 내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 재판과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전광석화처럼 대거리하던 것과도 대비된다.

조희대 대법원의 법기술은 내란 재판 과정에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대법원장이 지정한 서울중앙지법 판사 지귀연이 현란한 막을 열었다. 2024년 3월 7일, 내전을 불사하며 공수처에 저항해 구속된 윤석열을 석방시켰다. ‘날’로 계산하던 구속기간을 ‘시간’으로 바꾼 신통술이었다. 바로 다음 날 검찰과 법무부가 “구속기간은 종전대로 날 기준으로 계산하라”는 지침을 일선에 내렸다.

신묘한 법기술은 영장전담판사들에 이르러 만개한다. 조희대가 파견한 정재욱·박정호·이재욱·남세진 등 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은 내란 주요임무 종사 등 내란 부역자들에 대한 영장을 줄줄이 기각시켰다. 기각 사유들은 국민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수준으로 일일이 거론하기도 불가하다. 이들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장관, 추경호 전 국민의힘 대표, 최상목 전 대통령권한대행의 대행 등 내란 핵심 인물들에 대한 영장을 적극 기각했다. 지금까지도 내란 부역자들은 국민 보란 듯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토록 관대한 저들의 잔혹사가 최근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우리나라 대표적 사법살인 사건 중 하나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 고(故) 강을성씨가 최근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사후 50년 만이다. 당시 법원은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국가 전복혐의로 기소된 이들 인혁당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에 사형을 선고했다. 이들 중 일부는 사형당했다.

우리나라 사법살인, 법원의 독재 복무는 뿌리가 깊고도 험하다. 이승만이 독립운동가 조봉암 당시 농림부장관을 사법 살인한 것을 시작으로 군사정권 시절 사법살인과 사법적 ‘처단’이 정점을 찍었고, 그 조작과 음모의 DNA는 윤석열까지 이어졌다. 그 전 과정에 법원은 권력에 ‘충실히’ 복무했다. 그게 국민 생명을 찬탈하는 일일지라도. 2000년대 이후 저 모든 사법살인과 무도한 판결에 무죄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껏 사법부 차원의 공식적 사과는 단 한마디 없다. 그런 사법부가 내란 세력을 적극 엄호나 하고 말일이지, 사법 정의니, 법관의 양심이니를 논하는 작태는 목불인견이다.

이들의 저 기괴한 충실성,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공직자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했던, 유대인 수백만 명을 가장 체계적이고 합법적으로, 성실하게 살해했던 나치의 공직자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전쟁 후 이름과 얼굴을 바꿔 해외로 도망쳐 너무도 평범한 이웃으로 살았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체포돼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됐다.

“명령에 충실했을 뿐”. 그가 재판정에서 한 설명이다. 세계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 정체를 알기 어려웠다. 한나 아렌트가 그 평범한 성실함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합법의 얼굴을 한 범죄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령에 충실했던 아이히만과 법기술로 독재와 권력에 합법을 부여해 온 자들을 디케의 저울에 달아볼 일이다.

더 끔찍한 일은 당최 내란 재판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판 지연은 우연이 아니라 전략으로 비친다. 절차는 진행되지만 어떤 것도 달라진 게 없고, 결론도 나지 않는다. 죄목은 흐릿하고 책임은 사라진다. 내란세력에게는 결집의 힘을 주고, 무죄도 유죄도 아닌 지연은 기다리는 국민에겐 또 다른 형벌이다.

침묵과 지연이 울리는 조종

저 수법, 어딘가 익숙하다. 일찍이 카프카는 소설 ‘심판’에서 이를 고발했다. 주인공 ‘요제프 K는 느닷없이 잡혀가서 지리멸렬한 재판에 끝없이 내몰리다가 제풀에 지쳐 저항할 힘도 잃은 채 처형에 이른다.

허나 저들이 간과한 게 있다. 이 나라 국민은 요제프 K가 아니다.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낸 국민들이다. 서울의 아이히만들은 아직 현실 법정에 서지 않았지만, 저 침묵과 해묵어 부패의 냄새가 밖으로까지 퍼지는 법기술, 지연은 그 자체로 자백이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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