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대해

@강병운 입력 2025.12.17. 18:04


제6대 국회 였던 지난 1964년 4월 20일 당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이었던 김대중이 단상에 올랐다. 야당인 자유민주당 소속 김준연 의원의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서다.

오후 2시 37분에 시작해 저녁 7시 56분까지 장장 5시간 19분간 연설이 이어졌다. 결국 체포동의안 처리는 무산됐다. 대한민국에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를 알린 계기가 됐다.

당시 발언은 국회 속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한 발언에 그치지 않았다.체포동의안을 처리하면 안된다는 본인의 주장과 그 근거를 성실하게 밝혔다. 꼼수를 쓰지 않고 주제에 맞게 5시간을 넘게 연설했다. 원고 한 장도 없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일장연설을 했다. '연설의 전설'이자 '연설의 정석'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때의 필리버스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필리버스터 통해 국민주목 계기 마련

한국 국회의 필리버스터 역사는 1948년 제헌국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리버스터 제도가 명시적으로 규정되지는 않았다. 본회의 발언시간 제한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필리버스터가 가능했다. 그러나 유신 시절인 1973년 국회법 개정으로 필리버스터는 사실상 폐지됐다.

이후 39년만인 2012년 국회법 개정(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무제한 토론'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도입됐다. 이후 한동안 법 조항 으로만 있던 필리버스터 제도를 깨운 것은 바로 지금의 민주당 이다. 19대 국회 말인 2016년 2월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당시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이 뭉쳤다.

국회의원 38명이 참여해 총 9일 동안 192시간 26분에 걸쳐 테러방지법안 반대 필리버스터가 진행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필리버스터'라는 기록을 세우고 막을 내렸다.

당시 3선의원 이었던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의 필리버스터도 역사에 남아 있다. 지난 2016년 2월 25일 밤 이었다. 이날 발표된 당의 전략공천 방침으로 4·13 총선에서 사실상 공천이 배제됐다. 강기정 의원은 의정활동 과정에서 여야간 정쟁으로 인한 몸싸뭄 등 극한 투쟁에서 항상 맨 앞장서 희생해 왔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본회의장 연단에 올랐다.

그는 "이렇게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국민 으로부터 폭력의원 이라고 낙인 찍히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면 저희 이번 4선 도전은 또 다른 의미를 가졌을 텐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 의원은 의연하게 5시간의 필리버스터를 마치며 임을위한 행진곡을 불러 장내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22대 국회 필리버스터 기능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 높아

필리버스터는 19대 1회, 20대와 21대 국회 각 2회에 불과했다. 그러나 22대 국회 에서는 대폭 늘었다. 이번 국회에서 여야가 반복적으로 필리버스터와 강행 처리로 정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심야시간에 진행되는 필리버스터는 사회자와 발언 의원만 있을뿐 참석 의원이 한명도 없는 경우도 있다.

지난 9월 29일 문금주 의원이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찬성 무제한 토론을 했다. 당시 회의장 에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문 의원 외에 한명의 의원도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필리버스터'는 일반적으로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소수당이 활용하는 최후의 합법적 수단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여야간 행태에 대해 국민적 시선이 따갑다.

국민의힘의 경우 필리버스터를 신청 하고 있지만 정쟁의 도구로 활용할 뿐이다. 자신들의 요구로 필리버스터가가 진행되고 있다. 자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는데도 참석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설상가상 으로 의제와 관계없는 정치적 발언으로 논란을 야기 시키고 있다. 이제는 민생법안 까지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에서는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 취지가 왜곡되고 야당의 '시간 끌기'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필리버스터는 여당 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166석인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종결시 마다 조국혁신당 등 최소 13명의 범야권 의원을 개별적으로 설득·독려해야 한다. 필리버스터 종결을 위해서는 재적의원 5분의3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건씩 안건을 의결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의원들의 국회 대기가 필수다. 이로 인해 지역구 활동도 마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사회를 봐야 하는 국회의장단의 업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 소속 이학영 국회 부의장이 나눠 맡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 부의장은 아직까지 필리버스터에서 한번도 사회를 보지 않았다. 민주당이 최근 주호영 부의장 사퇴촉구안을 제출한 이유다.

여야 정쟁 전락 필리버스터-역지사지 압장에서 생각해야

이에따라 민주당이 꺼내든 카드가 필리버스터 요건을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 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국회 본회의 정족수인 재적의원 5분의 1인 60명 이상이 출석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할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현재 필리버스터 중단 요건을 5/3 이상 에서 과반수로 낮췄다.

국민의힘 의석이 107석 이다. 개정안 대로 60명 이상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과반 이상인 56%가 출석해야 자력으로 필리버스터를 유지할수 있다.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파행이 민주주의의 위기인지,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인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 다수당의 힘으로 아예 필리버스터를 가능하지 않토록 하는 민주당의 일방통행도 문제다. 그러나 필리버스터 본연의 수단 보다는 정쟁으로 얼룩지게 만드는 국민의힘 책임론도 크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여야 모두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필리버스터의 품격에 대해 생각해볼 시점이다.

서울=강병운기자 bwjj238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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