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광장을 지킨 시민들, 폭싹 속았수다

@강동준 입력 2025.04.09. 09:55
강동준(총괄상무·사업협력국장)
강동준(총괄상무·사업협력국장)

광장을 지킨 시민들, 폭싹 속았수다

"분노는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무엇에 열정적인지에 대해 뜻밖의 단서를 준다… 친화적이고 접근 지향적인 감정들보다 회피 지향의 부정적 감정들에 훨씬 많은 뇌 '부동산'이 할애된다." 예를 들어 나쁜 기억은 좋은 기억보다 다섯 배 빠르게 생성되며 다섯 배 오래간다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그런 것 같다. 항상 부정적인 사건이 긍정적인 사건보다 더 크게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그 상처는 질기고 오래간다. 돈 문제도 마찬가지다. 나쁜 게 좋은 것보다 몇 배는 강하다. 예를 들어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기쁨은 금세 사라진다. 그러나 그만큼의 돈을 잃었을 때 고통은 훨씬 질기다.

나쁜 기억은 다섯 배 오래간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산하 국제예술마인드연구소 창립자인 수전 매그새먼과 구글 하드웨어 제품 개발부의 디자인 부총괄인 아이비 로스가 쓴 책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허형은 옮김. 윌북)에 나온 한 대목이다.

심리학자 존 M 카트먼이 연구한 5대1의 법칙과도 비슷하다. 한번 부정적 상호작용의 악영향을 씻어내려면, 적어도 5번의 긍정적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부관계도, 우정도 마찬가지다. 수년간 쌓아올린 우정이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나쁜 기억을 쫓아 다시 탄핵의 과정을 되돌려보자. 느닷없는 12·3비상계엄부터 122일, 넉 달간 우리 국민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던가?

"이게 장난입니까? 실실 웃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사안입니까?…온 국민이 밤을 새우고 지금도 다시 그들이 되돌아올까 두려워서 정신과 병원 드나들면서 불안증 겪는 그 수없이 많은 국민들은 아무런 피해자가 아닙니까? …국민이 위대해서 다행이었습니다.…단 한 발의 총성이라도 들렸더라면, 단 한 번의 주먹질이라도 시작됐더라면 이 나라는 완벽한 암흑사회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굳이 이재명 대표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상상하기 힘든, 지금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159명의 젊은이들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를 북의 지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선동과 혼란을 부추기던 세력들의 법원 난입 폭동에 이어 급기야 광주까지 몰려와 5·18을 희화화하려는 그 저의는 무엇인가?

눈보라 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서 탄핵을, 민주주의를 외칠 때, 탄핵심판이 11차 변론까지 하염없이 이어질 때 법원의 구속취소와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윤석열이 풀려나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던가? 요새화된 용산 관저에 숨어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체포를 거부했던 그가 아닌가.

반성과 책임은 없고 거짓과 거짓선동, 궤변과 말장난으로, 아니 그 부끄럼 없는 뻔뻔스러움에, 다리에 쥐가 나고 악몽에 시달렸던 시민들의 분노는 수십 번씩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탄핵 표결에 조직적으로 불참하고 극우세력에 동참해 내란을 비호하던 정당의 국회의원들, 아니 그 중심에 선 인물들이 이제와서는 너도나도 대선출마라니,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참 뻔뻔함의 극치다. 하루빨리 내란동조 세력들의 단죄와 스멀스멀 올라오는 잔불까지 싹 다 정리하고 사회적 대개혁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중은 언제나 분노했고 민중은 언제나 승자였다. 비록 한때 좌절은 있었지만 그것은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아무 것도 아니다.…"는 DJ의 교훈처럼, 시민의 승리였다. 위대하고 현명했다. 국회 진입하려는 군인들과 장갑차를 막아서고 버스상경에 가두행진에, K-야간봉에 천막과 철야농성, 남태령 고개 트렉터 시위 등 수많은 시민의식이 파면의 원동력이었다.

가수 시인과 촌장이 부른 '풍경'노랫말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국회 대리인단 장순욱 변호사가 탄핵 최후 변론을 하면서 인용했던 말로, 탄핵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가진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고 정의가 제자리를 되찾길 희망하고 염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연 탐험' 위로와 힐링 선물

탄핵의 강을 건너 깨닫는다. 소쩍새는 산 속에서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우리들은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탄핵의 과정에서 숨죽인 넉달, 매일매일 달력을 보면서, 뉴스를 보면서 양극단으로 치닫는 이념대립과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정치, 사회적 불안과 분열에 몸서리를 치고 밤잠을 설쳤던 시민들, 혹시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상처난 대한민국에 화가 나서 탄핵의 거리로, 광장으로 뛰쳐나간 시민들, 폭싹 속았수다(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는 위로와 힐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책에서 저자들은 트라우마로 얼룩진 세상, 뇌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제안한다. 음악의 향연도 좋고 미술관도,박물관도 좋다. 미학처방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뇌의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딱 20분만 낙서하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즉시 신체와 정신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고. 꼭 예술적 향유가 아니더라도 '오늘은 시간을 내 자연을 탐험해보자'고….

떠오르는 해, 나뭇가지에 앉은 붉은 홍관조,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바람, 수선화의 노란 상큼함. 이 모든 것이 걸음을 붙들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흠뻑 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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