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파면' 외 달리 방도란 없다

@조덕진 입력 2025.04.02. 17:23
조덕진 주필·행정학 박사

4월 4일 오전 11시, 마침내 심판의 날이 도래했다.

자그마치,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킨 지 122일, 국회가 탄핵소추를 가결한 지 111일 만이다. 피가 마르고, 이러다 끝장나는 것 아닌가,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

윤석열이 한밤중에 느닷없이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발동, 중무장한 이 나라 군대가 군홧발로 국회를 침탈하는 것을 목도 해야 했다. 조폭도 아닌, 공당이라는 자들이 대놓고 탄핵을 방해하는 행태도 지켜봐야 했다. 충격과 분노와 비현실감에 국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탄핵'을 명령했다.

한숨 돌리는 줄 알았다. 너무도 명백해서. 국회의원 체포 등 윤석열의 반헌법적 명령이 생방송으로 국민께 보고됐다. 판단이니 평가니 하는 형식적 절차도 필요 없어 보였다.

'심판'과 '신곡'사이에서

또다시, 현실 세계라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악몽이거나, 불안증이어야 했다.

법의 최종 보루, 최후의 심판자가 눈을 감았다. 헌법재판소가 침묵하고, 머뭇거리고, 외면했다.

헌재의 지연은 그 자체로 흉기가 됐다. 그 너머에서 광기와 온갖 병적 증상이 일상을 침탈했다.

'윤석열 이익 카르텔'의 노골적인 준동이 시작됐다. 대놓고 법을 짓밟아 댔다. 극우기독교 집단과 결탁한 국민의힘이 종교 비즈니스 우두머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난동과 폭동을 조장·방조했다. 이들 극단주의자, 폭민(暴民)이 법원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익 카르텔의 법꾸라지가 기승을 부렸다. 경호처는 내란이라도 벌일 행태로 법 위에 군림했다. 그 경호처장을 검찰이 보호하다 방어선이 무너지자, 이번엔 법원이 최종 보호자로 가이드를 쳤다.

그뿐인가. 헌법재판소가 마은혁 재판관 임명 거부가 위헌이라고 판시했지만, 최상목도 한덕수도 헌재 판결을 짓뭉갰다. 행정부가 헌재를 개밥그릇 취급하는 사이, 검찰은 또 다른 법꾸라지 본색으로 내란 수괴이자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윤석열을 석방했다.

법이 무너져도, 헌법이 뭉개져도, 당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헌재는 침묵함으로써 동조했고,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폭력을 연장시켰다. 헌법수호 기관의 도덕적 파산이나 다름없었다.

헌법이 무력화된 그 땅에서 국민은 주권자도 그 무엇도 아닌 상태로, 가혹하고 참혹한 의심의 독배를 홀로 들이켜야 했다.

피가 마르고, 분통이 터지지만 다른 방도가 없다. 프란츠 카프카 '심판'의 주인공 요제프 K의 심정이 이랬을까. 이유도 모른 채 기소돼, 정당한 설명 없이 재판받고, 끝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라지는 존재. 그간 이 나라 국민 심정이 딱 그 지경이다.

헌재는 왜 결정하지 않는지, 권한대행이 헌법을 짓밟아도 어떻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채, 그저 말라비틀어져 가야 했다. 국민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내란범에 시달리다, 하늘같이 믿던 헌재에 짓밟혀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보호자가 더 가혹한 가해자로 안면 바꾼 형국이다. 무법지대가 따로 없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처럼 "오래된 것이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권력의 공백기, 인터래그넘이 덮친 듯하다. 법은 작동을 멈추고, 제도는 정당성을 잃고, 권력은 통제되지 않는다. 행정부는 사유화되고, 검찰은 그들만의 방패 본색을 노골화하고, 카르텔 언론은 뻔뻔하게 아우팅이다.

이 인터래그넘에 침묵은 중립일 수 없다. 죄악이다. 그곳은 '파우스트'의 계약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파우스트는 무한한 지식과 권력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윤석열이 이 나라 헌정질서를 비상계엄이라는 악마적 거래 대상으로 삼은 순간, 헌법의 경계는 무너졌고, 국가는 사유화됐다.

그 계약서에 헌재의 침묵이 조용히 서명된 것이다. 헌재가 침묵의 동조자는 아닌지 끝없는 의심에 신음해야 했다.

지옥의 가장 낮은 자리에 선 자들

이 지점에서 단테의 '신곡'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지옥의 가장 낮은 자리는, 도덕적 결단을 피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중립과 침묵을 선택한 자들을 지옥 바깥 문에 세우고 가장 혐오스러운 자로 그린다. 지하세계 어디에도 들이지 않고, 영원히 지옥의 문밖에 세워 벌 받게 한다. 이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은, 정의의 편에도 악의 편에도 서지 않은 자들이다.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공동체를 방치하고, 파괴에 복무한 자들이다.

국민의 명령, 헌재의 책무는 너무 명료하다. 인간성과 정의 복원의 문제다. 헌법을 위반한 윤석열을 법으로써 단죄하는 일, 그리하여 헌법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내는 일, '윤석열 파면' 외 달리 방도란 없다.

파면은 선택이 아니다. 국가의 마지막 증명이다. 말라 죽어가는 국민을 기사회생시킬 단 하나의 방도다. 이 병든 인터래그넘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헌재가 열리면, 헌법도 다시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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