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들불축제, 불 대신 '빛'으로 ··· '꽃' 사라진 남도 봄꽃 축제는?

@유지호 입력 2025.03.12. 17:57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겨울의 끝자락, '제철생선'은 부활을 준비한다. 추운 겨울 군것질거리 중 하나인 붕어빵이 그 주인공이다. 1980년대 초, 고향 장터의 추억은 강렬했다. 손 때 묻은 갈고리에 엎치락뒤치락, 팥 앙금으로 배를 불린 뒤 빵 틀에서 튕겨져 나오는 모습은 생경했다. 구경꾼들 사이로 퍼졌던 달큼한 냄새는 아스라하다. 지금도 눈 내릴 때면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몇 놈들을 노란 봉투에 담아 귀가를 서두르곤 한다.

겨울철 별미다. 버스정류장 앞 리어카에서 붕어빵을 굽기 시작하면 옷장 속 패딩을 꺼낸다. 시대 아픔이 녹아 있다. 판매량은 불황의 지표로 연결된다. 노점상 단속으로 사라졌다 90년대 후반 IMF 외환 위기와 함께 돌아왔다. 실직자들이 대거 뛰어들면서다. 요즘엔 인기를 되찾고 있다. 젊은 감각으로 재탄생되면서다. 팥과 호두·슈크림·치즈를 포함한 다양한 앙금 등 신 메뉴로 경쟁력을 높인 덕분이다.

'붕어없는 붕어빵'의 발상 전환

봄의 서막, '갑자기 웬 붕어빵 타령?'하며 뜨악할 수 있다. 여기서 퀴즈 하나. 붕어빵과 칼국수, 곰탕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없다'. 각각 '붕어와 칼·곰'이 없다는 우스갯소리다. 있어야 할 곳에 없다는 풍자·조롱의 의미로 쓰인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으면 웃고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본질적·실질적으로 있어야 할 게 없다면 문제는 다르다. 꽃이 빠진 봄꽃 축제 이야기다.

지자체는 이맘 때면 골머리를 앓는다. 이상 기후의 영향 탓이다. 지난 7일 시작된 광양 매화축제가 대표적이다.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될 만큼 인기가 많아 매년 100만여 명이 찾는다. 섬진강변과 청매실농원 등에 조성된 19만8천㎡ 면적의 매화밭이 주 무대다. 올해는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지난해 30∼40%(3월 첫째 주)에 달했던 개화율이 올해는 10%대에 머물면서다.

일정을 연기한 지자체도 있다. 순천시는 당초 탐매축제를 지난달 22일로 계획했다가 두 차례 미뤘다. 홍매화의 생육 부진 탓이었다. 일조량 부족과 기습 한파의 영향이 컸다. 반면 지난해엔 2월 초에 꽃이 피면서 3월 개최 땐 꽃잎이 대부분 떨어지며 아쉬움을 남겼다. 신안 임자도 홍매화 축제도 비상이다. 고육지책. 나무엔 붉은 방한 비닐을 씌우고 바닥엔 보온 역할을 하는 왕겨도 깔았다. 꽃이 늦게 피면서다.

온난화의 그림자다. 광주·전남은 지난달 3일부터 나흘간 눈을 뿌렸던 '입춘 폭설' 등 '북극 한파'의 영향권에 놓였다. 2월 평균기온이 영하 0.5도로, 평년보다 1.4도 낮았던 이유다.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에너지공학부 교수는 "북극이 따뜻해지면서 찬 공기가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조금 더 춥게 느껴졌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꽃이 피는 시기는 한달 가량 차이가 났다. 날씨가 매년 롤러코스터를 타면서다. '로또픽'이란 말처럼, 날짜를 정하는데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거다. 벚꽃 축제가 그랬다. 2023년에는 너무 일찍 피었다. 1922년 관측 이후 두 번째로 빠른 개화였다. 그래서 지난해엔 평소보다 앞당겼다가 낭패를 봤다. 2년 연속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되면서 홍역을 치른 배경이다.

수확의 계절, 가을엔 먹거리·볼거리를 내세우는 축제가 풍성하게 열린다. 일부는 경기 활성화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문제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독하고 길어진 폭염의 그늘은 깊었다. 여름의 끝이 늦어지면서다. 영광 불갑산 상사화축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9월 폭염이 이어지면서 꽃은 피지 않았다. 신안 아스타꽃 축제는 아예 취소됐다.

바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해안을 대표하는 가을 전어축제가 꼬였다. 해수면 온도 상승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씨가 말랐다. 지난해 10월 남해안 수온은 24.2도였다. 평년(1991~2020년)보다 2.2도 높았다. 한대성 어종인 전어 생산량이 반토막 났다. 며느리 대신 집 나간 전어 탓에 광양과 보성은 계획과 달리 전어잡이 퍼포먼스로 대체했다. 관광객 유치를 통해 모처럼 지역 경제를 살릴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이상기후, 날씨 의존 패러다임 변화 불가피

이상기후는 상수가 됐다. 전문가들은 날씨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콘텐츠 다변화를 주문한다. 꽃과 먹거리 등 기후에만 의존하는 축제는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뚜렷한 4계절이 사라지면서 꽃들의 개화 시기는 어그러졌다. 우리네 들녘과 산·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축제 시기에 맞춰 제철 음식과 꽃이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인디언 기우제' 방식은 맞지 않다는 의미다.

제주 들불축제는 발상의 전환을 택했다. 1997년부터 옛 목축문화 재현 등을 위해 새별오름 일대에 불을 놨던 행사다. 산불 위험과 생태계 훼손 등의 비판이 제기됐던 이유다. 이상기후 시대, 축제의 정체성인 불을 포기했다. 14∼16일 열리는 올해 축제에선 오름 불놓기와 달집태우기 등이 미디어아트와 LED, 즉 '빛'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붕어빵에도 적용된다. 아이스크림 붕어빵인 '아붕'이 등장한 것이다. 한 겨울에만 먹는 음식이란 고정관념은 완전히 깨졌다.

최근 광주 트라우마치유센터엔 불안감을 호소하는 상담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인생에서 한 번 경험하기 힘든 국가적 재난들을 잇따라 겪으면서다. 시국이 어수선한데다 경기마저 얼어 붙어서일까. 3월인데도 봄기운이 전혀 안 느껴진다. 남도 봄꽃 소식마저 여간 더디다. 춘래불사춘.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예년에 비해 늦었지만, 매화에 이어 산수유·벚꽃이 흐드러졌다는 소식이 곧 올라올 테다. 그 게 자연의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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