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끊임없이 발전한다고 한다. 이론에는 논거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헤겔의 정(正), 반(反), 합(合) 변증법을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의 변증적 사고를 끌어들인다.
'역사는 발전한다'는 것이 하나의 명제라면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헤겔은 갈등 해결과 조화의 과정을, 들뢰즈는 갈등 자체가 지닌 변화와 창조의 힘을 강조했다.
역사는 '시간'을 전제로 한다. 시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의 갈등을 등장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화, 변화를 통해 극복하는 과정을 돕기도 한다.
시간 안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시간의 힘을 믿는다면 아마도, 갈등은 짧을수록 좋을 것이다.
경직된 시위 문화서 축제형으로
누군가는 '응원봉의 혁명'이라고 했다. MZ세대가 시위 문화를 주도한다는 것은 기성세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K-팝에 열광하고 휴대전화에만 집중할 것으로 생각했던 젊은 세대가 시위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과거의 진지하고 결연했던 현장의 문화는 '축제형'으로 바뀌었다.
MZ세대는 촛불 대신 응원봉을 흔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공연에 사용했던 각양각색의 응원봉에는 팬덤이 녹아있다. 응원봉은 공연장에서 연대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응원봉들은 로제의 '아파트'에 맞춰 춤을 추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에 맞춰 떼창을 즐겼다. 응원봉을 흔드는 젊은 시위대는 다른 참여자들에게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즐거움을 제공했다. 단순한 저항이나 주장을 넘어, 콘서트 문화, 축제 문화로 승화시킨 것이다.
하늘 높이 흔드는 깃발에는 강한 구호와 주장이 담긴 문구 대신 독특한 상징이나 단체명을 새긴 이미지가 실렸다. 유행이나 패러디 요소를 활용한 '민주묘총' '범야옹연대' '전국양배추취식연합' 등의 센스 깃발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열린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응원봉들에게 한겨울 추위는 장애요인이 되지 못했다. 되레 눈 내리고 칼바람이 불수록 에너지가 넘쳤다. 기성세대는 MZ세대 방식의 '행동하는 양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현장에서는 MZ세대와 어깨를 겯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MZ세대에게는 선행학습이 있었다. 지난 2016년 10월 말부터 불붙기 시작한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에 부모님과 함께 촛불을 든 것이다. 서울의 집회에서 한 초등학생이 "내가 이러려고 초등학교에서 말하기를 배웠나, 하는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잠을 못 이룬다"고 말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MZ세대들은 국민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위정자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방관하지 않고 언제든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커피와 우유, 빵, 떡 등 식음료부터 핫팩, 무릎담요 등 보온 물품, 재능 기부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호부조하는 행렬이 촛불을 더욱 뜨겁게 달군다는 것도 알았다.
광주·전남지역의 MZ세대가 갖고 있는 독특한 DNA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의 선배들은 역사의 변곡점마다 그 중심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기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펼쳤고 1980년 5월에는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도 불의에 맞섰다. 진저리 쳐질 정도로 공포스러운 계엄령, 군인들의 무자비한 군홧발이 주는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다. MZ세대는 소설 '소년이 온다'의 중학교 3학년 동호가 나의 이야기이고 친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타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동호의 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옛 전남도청을 돌아보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MZ세대의 행동하는 양심은 엄동설한에 '은박'을 덮고 밤샘 시위에 나서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장에 동참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각종 기부행렬에 참여하는 것으로 달랬다. 뜨거운 커피를 쏘고 담요나 핫팩 등 방한용품을 제공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응원봉은 서울 한남동과 광화문, 헌법재판소에서 춤을 추었고 남태령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름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갈등의 시간을 겪고 있다. 정-반이 아닌 찬(贊)-반(反)의 시간이다. 이것이 찬반의 문제인지, 옳고 그름의 문제인지는 새겨볼 일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한다면 양보나 타협으로 해법을 모색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름은 척결의 대상일 뿐이다.
누군가는 한국사회에서 최근 수십 년 동안 가장 부족한 점은 '성찰'이라고 했다. 성찰이 사라진 한국사회의 빈 자리를 메운 것은 자신의 이익에 대한 셈법이다. 오직 이익을 내세워 욕망과 욕망이 대립하는 세상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사회'를 불렀다.
원칙이 없는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사회적 가치와 규범마저 흐릿해지고 있다. 건강한 이성과 판단으로 대한민국의 내일을 걱정하는 국민도 근거 없는 프레임에 가두고 순수성을 의심하기 일쑤인 세상이다. 잘못된 신념으로 괴물이 되고 물색없는 확증편향으로 편가르기를 부추겨도 눈곱만큼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보면 절로 손사래가 쳐질 지경이다.
모름지기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기성세대는 MZ세대에게 부채의식을 가져야 마땅하고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오늘 MZ세대가 흔드는 응원봉은 염치없는 일을 벌이고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자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다.
역사는 갈등을 치유하는 '시간의 힘'을 바탕으로 발전한다. 이때 척결의 대상은 고려 요소가 아니다. 갈등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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