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중견기업 하나 없는,초라한 친환경 유기농 산업

@이용규 입력 2024.10.23. 17:03
이용규 신문제작국장

지난 2014년 8월 해남에서 풀무치 습격 사건이 있었다. 해남군 산이면 일대 간척지에서 수 억마리의 움직이는 시커먼 물체들이 대규모로 출현해 농민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게 만들었다. 이 곤충 떼들은 논밭의 생명력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전국에서 한 번도 경험치 못한 기이한 상황에 농민들을 비롯한 당국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외토픽으로 접한 뉴스가 눈앞의 현실에 전전긍긍을 하고 있을 때 벤처 유기농업체가 해결사로 나섰다.

10년전 해남 풀무치 습격 퇴치

곡성에서 유기농 방제 약재를 연구 생산하는 '자연과미래'였다. 땅을 살려 새로운 농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박매호 사장은 전남도에 자신의 회사에서 연구 개발해온 친환경 방제 약품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일거에 곤충 떼를 박멸한 박 사장은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농업진흥청은 대규모 곤충떼를 조사 분석해 메뚜기가 아닌 풀무치임을 확인했다.

10년전 극적 드라마극에 비견되는 해남 풀무치 습격사건을 소환한 것은 친환경 방제 산업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갈수록 친환경 농업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차적 물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화학농약시장 대 친환경 유기농 농자재 시장은 다윗과 골리앗에 비견된다. 친환경 농업의 핵심인 병충약제 시장은 300억~500억 정도이다. 유기질 퇴비 분야를 합쳐야 4천500억원 규모이다. 우리나라 농약 시장이 1조5천억원 대에 비하면 30%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다수 다국적 기업이 대주주인 한국 농약시장의 덩치가 크다 보니 친환경 방제 부분은 산업으로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조달청은 농약과 유기농자재가 엄연히 다른 분야임에도, 입찰 공고 또는 수의계약시 살충제 및 농업용 살균제로 포괄하고 있어, 유기농자체업체에서는 좁은문이다. 전국에 유기농업 자재업체들은 800개에 달한다. 이 업체들의 연 매출액은 3억~5억 수준이다. 전국에서 연 10억 이상 매출 업체는 10여곳에 그친다. 중견기업의 반열에 올라 안정된 회사 운영을 하는 업체는 한 곳도 없다. 3년후면 친환경농업육성법이 도입된 지 30년이 되는 현실앞에서 중견기업 한 곳이 없다는 것은 관련 종사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물론, 정부 정책의 문제점도 그대로 드러난다.

기관마다 천연원료 분석 달라 업체 분통

우선 가장 큰 애로 사항은 규제 혁신 보다 더 미비한 국내 원재료 생산 기반 구축이다. 국내에서 친환경 방재 천연 원료는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다. 갈수록 천연 원료 재배업자들의 목소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또한 같은 천연물 재료를 놓고 분석 기관마다 결과가 다르니 제조업체 및 친환경 농가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증기관 및 분석 기관은 뚜렷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농산물품질관리원은 '규정'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제조업체에 해당 일자 제품 판매 금지 및 회수 폐기를 명하는 행정조치 카드만을 뽑고 있다. 납득할 만한 설명도 들을 수없는 제조업체는 동일성을 상실한 불합리한 시험 결과에 따른 행정처분 조치로 잠재적 범법자가 되고 있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분석 시스템은 친환경 유기농자재 산업 전반에 불신이 생기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친환경 약재를 비롯한 자재 업체의 힘을 빠지게 하고 있다. 이사안은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친환경 농산물의 현장 상황을 전혀 반영치 못해 친환경 인증 취소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전국 친환경 인증 면적의 51%를 차지하고 있는 전라남도 친환경 농업 인증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친환경 농가수는 5만632농가로 2020년 대비 14.3%가 감소했다. 인증 면적은 2020년 대비 22.8%가 줄었다. 주요 감소 원인으로 잔류 농업 검출(6천117㏊)도 크나, 농가의 자발적 친환경 인증 포기 면적 또한 4천225㏊에 이른다. 보완 대책이 없을 경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탄소중립시대 친환경 농업은 앞으로 그 중요성과 비중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정부도 지난해 제5차 친환경 농업 육성 5개년 계획을 통해 친환경 농업 인증 면적을 2025년까지 2020년 대비 5.2%에서 10%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분석 오류 입증 책임 업체 아닌 기관이

이러한 목표가 발표에만 그치지 않고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선 현재의 관리방식에 의한 인증 시스템에서 벗어나, 선진국처럼 생산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검증하는 과정 중심의 인증제로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친환경 유기농 자재 시험 분석 오차 해소도 제조업체의 건의 사항을 충분히 반영한 특단의 대책 마련이 절실할 때이다.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는 물론 유기농 자재 제조업체도 당연히 지켜야할 기준이나 절차를 준수하며 적극 협조를 해야 한다.

여기에는 분석 기관마다 다른 분석 오류에 대한 입증은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입증 책임 역시 분석 기관에서 맡게 해 더 이상 억울한 친환경 유기농자재 업체가 발생치 않도록 탁상행정에서 벗어나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발생한 문제를 신속하게 보완 개선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약식동원이라고 하지 않는가. 건강한 먹거리는 생명의 기본이고 병도 고칠수 있다는 얘기다. 초심으로 친환경농업의 구조적 문제를 쫙 펼쳐놓고 지속가능한 생명을 살리는 산업으로 바꿔나갈 좋은 계기이다. 더 늦기 전에 땅을 살리고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내는데 주요 요소인 친환경 유기농자재의 싹들이 피워나도록 국가적으로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30년을 달려온 친환경 관련 종사자들의 자존심이 세워질 것같다. 생명을 살리는 농업은 말로만 되지 않고, 국가가 미래 기간산업으로 육성 의지를 보여줘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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