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예산 1조원 시대, 지방자치는 안녕하신가요?

@강동준 입력 2024.09.04. 15:05
강동준(상무·마케팅국장·전 편집국장)

"100m 달리기를 하는데, 누구는 50m 앞에서 달리고 누구는 이제 출발선이고…. 이게 무슨 경쟁이고 형평이냐?"

지난 1996년, 민선1기 전남도지사였던 허경만 지사의 얘기다. 1995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로 민선시대가 시작됐지만, 광주와 전남은 지방재정의 열악으로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하위여서 예산부족에 따른 푸념이 늘상이었다. 도로건설 등 현안사업도 대부분 국고에 의존하던 시기라 도청 간부와 관련 공무원들은 수십 차례, 아니 수백 차례에 걸쳐 중앙부처를 오고가야만 했다. 허 지사의 이런 불만은 못 사는 지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선행된 뒤 자치시대 출발선에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자치 30년, 예나 지금이나 예산 탓

96년 당시 전남도의 예산규모가 처음 1조원을 넘어섰다. 신문 1면 머리기사에 올랐다. 1986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광주가 떨어져 나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되고, 전남도 자체로써 10년만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1조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잠깐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매일 2천700만원씩 100년동안 쓸 수 있는 금액으로, 하루에 1천만원씩 쓸 경우 270년이 걸린다. 1조를 연2% 이자로 예금을 한다면 세금 다 떼고 매일 3천만원의 이자가 발생하고, 1년으로 따지면 110억원의 이자수입이다. 은행장이 발벗고 뛰어나와 환영해도 모자랄 판이다. 가히 일반 서민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니, 취업난에 허덕이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겐 "이게 뭔 소리?"할 수도 있겠다. 단순 계산으로 월 100만원씩 30년을 모으면 3억6천인데, 30년을 매달 꼬박꼬박 모아도 집 한 채 구할 수 없는 형편이니 말이다.

30년 전과 비교해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1조원의 규모는 2017년 광주도시공사가 249억원(이자 포함)에 매입한 광주 금남로 10층짜리 건물, 전일빌딩245로 따질 때 40개 정도를 살 수 있다. 광주에 위치한 웬만히 큰 건물을 다 매입하고도 남을 정도다.

그런 1조를 빗댄 사례도 즐비하다. 전남의 경우 2006년을 전후해 사회복지 예산 1조시대를 맞았다. 현재는 3조 7천억원에 달한다. 또 2010년 전남 수산물 수출 1조시대에 이어 올해는 전국생산량의 80%에 달하는 김생산액과 김수출 1조시대를 달성했다. 2020년 2월, 직불제 예산을 포함해 농업예산이 첫 1조시대에 들어갔고, 2023년과 2024년에는 전남 지역사랑상품권 1조 어치를 발행했다. 전남도는 현재 13조 예산 규모에 부채규모가 1조3천억대다. 전남 기초자치단체 예산의 경우 2017년 순천시가 첫 1조를 돌파한 뒤 현재는 여수시가 1조7천억원 등 광양·목포·나주 등 5개시가 1조를 넘어섰고, 군단위에서는 해남과 고흥이 1조를 넘나든다.

광주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으로, 2015년 개관한 문화전당의 경우 건립에 투입된 국고가 1조1천억원이다. 또 지하철 3호선 고민거리중 하나인 상무역에서 광주역까지 7.78㎞구간을 잇는데 예상비용만 1조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의 예산 총규모는 7조 7천억을 넘어섰고, 지방채 규모도 1조5천억대다. 자치구 중에서는 북구와 광산의 예산규모가 1조원대다.

그렇게 보면 예산이 넘쳐나는 세상 같기도 하지만, 모든 지자체의 한결같은 고민은 '예산 부족'이다. 왜일까?

95년부터 지방자치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적 재원배정 탓이다. 국세편향적 조세체제와 중앙의존적 지방 세입구조가 자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무늬만 지방자치, 말뿐인 재정분권인 셈이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74%대 26%, 전문가들은 지방세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자감세 등 지난해 세수펑크만 56조원으로, 이같은 국세의 거듭된 감소는 지방교부금과 국고보조금의 축소로 이어져 사업차질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전남 한 지자체의 경우 300억 정도가 줄었다며 볼멘소리다. 여기에 지방세수의 감소까지 겹쳐 국비·지방비 매칭 포기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국회와 지방자치단체간 '줄탁동시' 지혜를

지방세와 세외수입으로 정리되는 재정자립도는 광주전남 시·군·구가 모두 10%대이고, 지자체의 자주적 재량권으로 사용가능한 재원비중인 재정자주도는 광주와 전남이 40∼50%대 수준이다. 지방재정의 취약은 중앙정부 의존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니 지방에서는 중앙정부 예산을 따오는 것이 대단한 능력이 되는 세상이다. 지방자치의 역설이다. 예산권을 틀어쥔 중앙정부는 차치하더라도 재정분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은 지방자치 30년에 부끄러운 일이다. 1990년 평민당 총재시절 지방자치제 전면실시를 주장하며 13일간의 목숨 건 단식투쟁에 나섰던 DJ나 여러 반발에도 세종으로 정부청사 이전과 함께 전국에 혁신도시를 건설하며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목매달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30년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본다면….

'지방소멸'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정부 의존적 세입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국세의 과감한 지방세 전환이나 국고보조사업의 지방이양 등 강력한 재정분권이 선행돼야 한다. 22대 국회에서 지방출신 의원들이라도 팔을 걷어 부치고, 지자체장들의 절실한 변화가 뒤따른다면 밖에서 쪼고 안에서 쪼는 '줄탁동시(口+卒啄同時)'의 지혜가 아닐까?

강동준(상무이사·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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